심리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를 방문해 어떤 조언을 듣고 나올 때, 그것에 동의하고 신뢰하면서도 우리는 마음속으로 사실 이렇게 속삭인다. 하지만 당신들은 겪어보지는 않았잖아. 자기비난, 해리, 무력감, 불안, 우울, 분노, 유기 공포, 갖가지 중독, 그 모든 것을 뒤에 업은 채 괴물처럼 다가오는 트라우마가 얼마나 생생한 실체를 지녔는지, 그것이 얼마나 우리의 일상을 통제하고 뒤흔드는지 직접 언어화해 줄 사람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 같다.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없을 만큼 때론 잊고 싶은 기억과 감정을 건져 올리고 “어째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될 수 없는 걸까” 하는 물음 앞에 함께 무너지지만 이 책은 분명한 희망이다. 듣고 판단하는 이들이 아니라 매번 상처의 근원으로 다이빙하는 이가 이제 두려움에 떠는 어린 아이가 아닌 “어른의 것”이 분명한 우리의 “손”을 향해 힘껏 던져주는 구명 튜브. 그것에 의지해 ‘나’라는 심연의 깊이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괴물들과의 거리를 “재조정”해 안전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저자가 말하듯 “이 책은 해피엔딩”이다. 당신의 삶도 당연히 그렇다.
- 김금희 (소설가)
이 치유기는 “뒤집어 보지 않은 돌은 없다(leave no stone unturned)”는 표현이 한 권의 책이 된 것만 같다. 저자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발견한 뒤 치유와 회복을 위해 시도하지 않은 방법은 없다. 학대당한 어린 시절 문을 열어 아직도 벌어진 상처의 안쪽을 후벼 파고 새너제이의 모범 소수자 아시아계 가정을 방문한다. 실망만을 안겨준 아버지를 만나고 말레이시아로 돌아가 뼛속에 새겨진 선조의 역사를 돌아본다. 심리학과 뇌과학과 유전자학을 탐구한다. 그뿐인가? 회복 요가 수업, 숨 치료 워크숍을 다니고 감사 일기를 쓴다. 실수하고 반성하고 기록한다. 이 모든 숨 가쁜 과정을 거치며 스테파니는 나아졌을까? 해답을 얻었을까? 가까스로 희미한 통찰을 얻고 반짝 기운을 내지만 언제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만 같다. ‘마침내’는 없고 ‘그러나’만 계속되는 여정 속에서 헤매다 지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일하고 사랑하고 책을 뒤지고 새로운 상담사를 찾는다.
그 사이, 우리는 실감 나는 일화와 대화로 구성된, 때론 유머러스한 저자의 글에 빠져든다. 생소한 듯 익숙한 복합 PTSD라는 괴물에 대해 서서히 파악하고 나 또한 이 괴물에 속할지 모른다는 사실 앞에서 잠시 당황해 과거를 뒤적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책이 말하는 건 아침에 어김없이 눈을 뜨는 우리 또한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 위해 저자처럼 내가 닳아지도록 애써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야 삶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던져주는 행복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나를 구원하는 것이 오로지 나 혼자만을 구원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 가능성으로 가득한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 노지양 (번역가)
성장기에 누적된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고, 작은 실수에도 자책하며, 무슨 일을 해내도 충분하다 느끼지 못한 누군가가 진료실 문을 두드린다면, 나는 정말 애썼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휴식과 주변의 지지임을 강조하며 치료를 권할 것이다. 물론 치료적 관계를 맺는 것조차 그에게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는 ‘내가 증상을 너무 과장한 건 아닐까, 정말 쉬어도 되는 걸까’와 같은 자기검열과 불안에 휩싸일 수 있고, 치료자의 말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도 크며, 의지하고 싶다는 욕구와 신뢰의 어려움 사이에서 혼란을 경험할 수도 있다. 복합 트라우마가 자아상, 대인관계 패턴, 스트레스 대처 방식에 남긴 광범위한 영향으로 인해, 말들은 무력하거나 앞서가고 감정은 흩어지거나 억압된다.
스테파니 푸의 이 용감한 치유기는 무력한 말과 흩어진 감정을 그러모으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려 복합 PTSD의 정서적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 자체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과 그 주변인들에게는 엄청난 지지와 사랑이 담긴 행위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단숨에 두 번 읽었다. 스테파니가 함 박사와 함께 상담 내용을 재분석하고 솔직하게 대화하는 장면에서는 일종의 통쾌함마저 느꼈다. 두 사람의 치료동맹은 ‘회복은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나의 믿음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자신에게 슬픔과 불안을 포함한 모든 감정을 허락하며, 사람들을 믿고 사랑하고 돕는 스테파니의 삶에 진심 어린 축복과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상담실에서 좌충우돌 실수하고 오해하고 사과하고 또다시 노력하는, 사랑하는 치료자와 내담자들 모두와 함께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솔직하고 엄밀하게 과거에 다가가는 책. (…)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며 우리를 빠져들게 만든다.
- 〈뉴욕타임스〉
이 책의 해피엔딩은 구원과 다름없다. 풍성하고, 유쾌하고, 세심하다. (…) 어린 아이는 거부당하지만 (…) 그 아이의 시선 언저리에는 여전히 빛나는 가능성이 보인다.
- 〈USA 투데이〉
연구자의 예리한 시선과 다큐멘터리 제작자의 가혹함으로 많은 이들이 겪는 비밀스러운 고통을 주저 없이 파헤친 책.
- 〈NPR〉
PTSD는 많은 이들에게 익숙하다. 그러나 스테파니 푸의 강렬한 데뷔작은 장기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트라우마에 의해 발생한 ‘복합 PTSD’에 주목하게 만든다. 부모로부터 상상할 수도 없는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경험한 스테파니 푸에게 복합 PTSD란 고통스러울 만큼 익숙한 것이다. 스테파니 푸가 특히 대단한 점은, 자신이 겪은 정서적 상처의 영향을 완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저자에게 복합 PTSD란 다각적인 전선에서 맞서 싸워야 하는, 계속되는 전투였다. 『괴물을 기다리는 사이』는 내면의 “괴물”을 죽일 수 없다면, 최소한 다스리겠다는 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도한 다양한 치료들을 담고 있다. 트라우마의 맥락을 아는 것은 치유에 도움이 된다. 부모의 역기능을 깊이 파고든 저자는 다음 세계로 전해지는 문화적 트라우마라는 매혹적인 발견에 도달한다. 이해를 위한 탐구에는 공감이 따른다. 그러나 『괴물을 기다리는 사이』가 가진 가장 매력적인 점이자,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이야기가 되는 까닭은, 이 책이 인간의 영혼이 지닌 탁월한 회복탄력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는 점이다.
- 에린 코디첵 (아마존 편집자)
트라우마 생존자들 중 많은 이들이 내면에 뭐라 말할 수 없는 날카로운 것?있지만, 동시에 없는?무언가를 지니고 다니는 것 같다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설명하려 애쓴다. 그러나 『괴물을 기다리는 사이』에서 스테파니 푸는 그 감정을 더욱더 자세하게 풀어낸다. 뛰어나고 가슴 아픈 이 회고록은 우리를 복합 PTSD의 여정 속으로 데려가 자기 발견을 향한 저자의 분투를 보여주며, 치유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 진정한 희망을 가져다준다.
- 로리 고틀립 (《마음을 치료하는 법》 저자)
재미있고도 비극적이며, 주저 없이 솔직한 동시에 가차 없이 희망적인 이 책은 보석 같은 책이다.
- 에드용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저자)
『괴물을 기다리는 사이』는 뛰어난 승리다. 스테파니 푸의 이 아름다운 회고록은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인해 타인과의 연결, 사랑, 그리고 목적을 좇을 능력을 영원히 잃은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한 빛이고 치료제다. 희망을 간절히 바라는 모두가 반드시 읽어야 할 책.
- 크리스티 테이트 (《지나친 고백》 저자)
저자의 단단한 결의를 증명하는 이 책은, 되찾는 행위인 동시에 “내가 여기에 있다”라는 대담하고 도전적인 선언이기도 하다.
- 캣 초우 (《Seeing Ghosts》 저자)
트라우마 연구를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인 동시에, 장르를 뛰어넘는 대단한 예술적 성취다. 스테파니 푸의 영리한 스토리텔링, 그리고 강력하고, 유쾌하고, 공감 가는 목소리는 복합 PTSD를 읽고 싶은 주제로 만들어 준다.
- 캐슬린 해나 (뮤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