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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6년 0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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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용량 | EPUB(DRM) | 28.16MB 파일/용량 안내 |
| ISBN13 | 9791130674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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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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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살아있는 지성이라 불리는
줄리언 반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의 이름은 내게 늘 조금 부담스러운 숙제 같았다.
지적 허영심을 채워보려
몇 번이고 그의 책을 집어 들었지만
매번 어렵고 따분한 문턱을 넘지 못한 채
겨우 마지막 페이지까지 꾸역꾸역 읽어내거나
중간에 멀어지곤 했다.
그래서 이름은 익숙하지만
정작 마음은 깊이 닿지 않았던 내게
줄리언 반스는 ‘가깝고도 먼’ 작가였다.
그런 그가 절필을 선언했다.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는 말에
이끌려 다시 한번 그의 책을 펼쳤다.
(정확히 말하며 이끌렸지만
읽고 싶은 도서목록에 올리기만 했는데
독서 모임의 4월 지정도서였기에
결국 집어 들었다.)
커버를 넘기자마자 마주한
한국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 책이 픽션과 논픽션,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가 모호하게 섞인
작품이라는 설명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기록이라는
고백도 함께 적혀 있었다.
(그가 왜 집필을 중단하게 되었는지도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
기억에서 시작해
죽음으로 흐르는 이야기
책은 프루스트의 마들렌과 함께
‘기억’에 관한 이야기로 문을 연다.
사소한 기억은 이내 관계로 확장되고,
삶을 돌아보더니 죽음을 응시하다가
다시 기억으로 돌아온다.
하나같이 무거운 주제들이지만
신기하게도 책장은 가볍고 경쾌하게 넘어갔다.
곳곳에 스며 있는 반스 특유의
유머와 위트 덕분일 것이다.
읽다가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며 웃음이 터진 순간들.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무슨 책인데 그렇게 재밌어?"
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런데 반스의 책이 이렇게 재미있었나?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의 유머를 이해하게 된 것일까?
이번 책이 유독 쉽게 위트를 담아낸 것일까?
암튼 다른 반스의 책을 도전해볼 용기가 생겼다.
영국의 지성인다운
박학다식 줄리언 반스의 위트
책을 읽으며 기억에 남는 위트 중
얼른 하나만 적어보면
병원에서 '하지만 나는 부커상을 받았습니다'라고
적힌 상상을 하는 대목
읽어야 웃음난다. ㅋ
그 외에 곳곳에 담겨 있다.
수많은 다른 작품들, 클래식은 물론
정치와 스포츠까지 그의 박학다식 분야는
어마어마 하다.
옛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 이야기를 하며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를 틀어놓는 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작품 번호가 131번인지 127번인지
추측하는 대목에서는 묘한 호기심이 생겨
직접 음악을 찾아 들으면서 책을 읽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127번이 더 마음에 와닿았는데
마치 브리저튼의 한 장이 연상되는 듯한 음악이었다.
담담해서 더 먹먹한 작별의 문장들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쓰였다는
이 책의 후반부에는 삶을 정리하고
작별을 준비하는 문장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한다.
오랜 시간 자신의 세계를 사랑해 준 독자들에게
작정하고 건네는 마지막 인사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기쁘게 여겼기를 바란다.
나는 분명히 그랬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즐거웠다.
사실 당신이 없었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 ?
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
나는 슬쩍 사라지겠다."
조용히 손을 얹었다가 슬쩍 사라지겠다는
그의 마지막 인사.
담담해서 오히려 더 먹먹하게 다가왔다.
Departure(s) vs.
What has left will not return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반스는 한국 독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책을 가리켜
"What has left will not return"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정작 책의 원제는 'Departure(s)'다.
아마도 'Departures'라는 단어가
함축적인 ‘떠남’을 의미한다면
편지 속 문장은 그 의미를 다정하게 풀어
설명한 문장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 관계, 시간, 그리고 죽음.
우리 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들에 대한 이야기.
반스는 그 의미를 조금 더 분명하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짧은 제목과 긴 설명.
두 표현 모두 이 책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울린다.
이제야
나는 줄리언 반스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고백하자면 줄리언 반스의 책을 지금까지 딱 한 권 읽었다. 가장 유명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이다. 하지만 이 하나의 소설은 나의 마음 속에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번에 줄리언 반스가 새로운 책을 냈다고 하자, 그 동안 궁금했던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와 「연애의 기억」을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두었다. 이 두 책을 읽고 이번에 새로 나온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읽자고 생각했는데, 두 책을 읽기 전에 신작을 먼저 읽을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역시나..「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만큼 인상 깊게 책을 읽어갔다.
이번에 새로 나온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은 줄리언 반스가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라고 말한 책이다. 지금 쓰는 소설이 유작이라는 것을 정할 수 있는, 정한 소설가는 몇 명일까. 반스도 이 책에 "늘 소설을 쓸 때 마지막 소설을 쓰는 마음가짐으로 쓴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이번 소설은 아예 "마지막 소설이다"라고 정해버렸다. 한글 제목이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인 것은 그의 이전 작품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에 맞춘 듯 하다. 하지만 영어 제목을 보면 Departure(s)이다. '떠나다'의 명사형. '떠남(들)'이라고 할 수 있다. 괄호에 복수를 나타내는 s가 있는 게 인상 깊다. 반스는 이 소설에서 그가 이제는 작가로서 떠남을 말하기 위해 Departure라는 이름을 주고, 그가 떠나는 일뿐만 아니라 인생에 떠나는 많은 것들-사람, 감정, 기억-을 이야기 하기 위하여 (s)를 붙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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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이것이 줄리언 반스의 마지막 소설이어서가 아니다. 그의 명성과 '마지막'이라는 이름표보다, 이 소설 자체가 훨씬 빛이 난다. 이것인 소설인가, 자전적인 이야기인가 헷갈릴 정도로 반스는 이 소설에 작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선을 걸으면서 어디까지 소설이고 어디까지 자전적인 이야기인지 독자들을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는 인터뷰에 "이 이야기는 나의 가장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개인적인 이야기이다."라고 한다. "가장 자전적인 이야기(most autobiographical work)는 아니다"라는 표현은,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말도 된다. 그의 모든 소설에 그의 경험이 조금씩 담아 있었고, 더 많이 담긴 소설이 있어서 '가장'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뿐, 분명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줄리언이고, 혈액암이 있고(줄리언 반스는 실제로 혈액암을 진단 받았다), 옥스퍼드대학교를 나왔고(진짜라고, 검색해보라고 소설에서 이야기한다), 그의 아내는 뇌종양을 진단 받고 37일 후 사망했다(그의 아내 이야기와 일치한다.) 이름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서 그의 삶과 일치하는데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면 곤란하다.
이 중에서 허구라고 의심할 수 있는 이야기는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 책은 분명 '스티븐과 진'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떠난 것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은 스티븐과 진이 처음 연애 했을 때의 사랑은 떠나서, 다시 노력을 해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 하지만 스티븐과 진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인공처럼 나왔지만 사실은 상징이었다. 잊어버린 것, 잃어버린 것, 알지 못했던 것, 오해했던 것, 오해한 부분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그대로 기억으로 가져가는데 이 기억조차 왜곡되었다는 것의 상징이었다. 실제로 스티븐과 진은 줄리언 반스가 알던 좋은 두 친구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허구가 있다면 이 두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는 모두 줄리언 반스, 그의 이야기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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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이야기의 마지막을 읽고, 예상치도 못했는데, 울었다. 이야기는 마치 철학자가 인생과 시간의 흐름, 기억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는 듯 했다. 소설보다는 한 사람의 생각을 내 머릿속에 옮겨와 받아들이는 기분이었다. 슬픈 이야기는 없었다. 반스 역시 죽음과 상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에 눈물이 나왔다. 내 무의식 속 상실을 건드렸을까, 혹은 이렇게 나의 마음을 울리는 책을 쓴 작가가 마지막 소설을 발표한 일이 슬펐을까(후자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의 소설을 한 권만 읽었고, 더 읽을 그의 소설이 있어 기쁘다). 혹은 마지막, departure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오히려 슬펐을가. 여운이 있는 소설이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듯, 그의 담담함이 나의 슬픔을 건드렸던 것일까.
재미있는 책을 많이 읽었다. 재미있는 책을 많이 만났다. 더 읽고 싶은 작가의 책도 자주 만났다. 하지만 나의 마음을 울려서 '애정하는 작가'는 많지 않다. 줄리언 반스의 책은 이제 겨우 두 번째지만, 그는 이미 나의 '애정하는 작가님'이 되었다. 이 애정의 시작에 '떠남의 슬픔'이 가득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그의 책을 만날 것이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지만, 그의 마지막 소설은 내가 읽을 그의 많은 소설의 시작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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