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에 대하여
카프카의 환상적이고 초현실적인 난해한 작품들은 어찌 보면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선고」에서는 주인공이 조국에서의 상황에 절망하여 외지로 떠나는 모습,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파경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화부」에서는 주인공이 조국에서 불미한 일을 겪고 3등 선실에 몸을 실은 채 외국으로 이주하게 되지만, 거기서도 살아가는 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변신』에서는 실직하여 경제 능력을 잃은 가장에 대한 가족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결국 한 마리 바퀴벌레가 되어 차라리 죽음을 갈망하게 된다. 나중에 히틀러가 유태인을 〈갑충Ungeziefer〉이라고 부르며 카프카의 여동생들을 강제수용소에서 처형한 것을 보면 카프카의 예지적 능력에 섬뜩한 느낌이 든다.
「유형지에서」에서는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정의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독재 시절의 암울한 현실이 보이고, 『시골 의사』에서는 예술가와 시민, 자기구원과 안락하고 건강한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길 잃은 예술가〉의 모습이 보인다. 18개의 짧은 산문들이 수록된 『관찰』에서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낯설지 않은 인물들과 그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카프카의 독특한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출구를 찾다가 결국 출구도 자유도 잃어버리지만 이를 알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 그리고 가치가 모호한 임무에 극단적으로 헌신하는 모습은 「유형지에서」뿐만 아니라 『단식 광대』에서 다시 등장한다.
『관찰』(1913)
18개의 짧은 산문 모음으로 이 중에는 1908년과 1910년 사이에 두 개의 잡지에 이미 실린 작품들도 있다. 친구들과의 교제,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 제2의 자아, 자신의 본연의 모습, 유령, 불안과 고독, 독신 생활과 상인의 어려움, 가족 내에서 자신이 처한 위치, 의지할 데 없음, 버림받음, 불행, 말을 타고 달리기와 같은 이후 작품들의 모티프들이 카프카의 독특한 문체로 표현되고 있다.
「선고」(1913)
1912년에 완성되고 1913년에 발표된 「선고」는 카프카의 일기에 따르면 9월 22일 밤 10시부터 23일 새벽 6시에 걸쳐 8시간 만에 단숨에 쓰였다고 한다. 카프카가 펠리체 바우어와 편지 교환을 하면서 처음으로 그녀에게 구애하고 이틀이 지난 후였다. 노벨레(Novelle)의 성격을 지니는 이 작품은 『시골 의사』와 함께 드물게 그의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리고 이 노벨레는 카프카의 작품 중에서 여러 가지 문학 이론으로 가장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이때부터 카프카는 글쓰기와 평범한 시민적 삶이 같이 양립하지 못한다고 보고, 둘 중에 어느 한쪽이 희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게오르크의 약혼녀 프리다 브란덴펠트가 펠리체 바우어와 똑같은 F. B.라는 머리글자를 지니고 있다. 또 장래의 전망에 불만을 품고 러시아로 떠나버린 친구의 모습은 문학을 지향하는 작가의 모습은 문학을 지향하는 작가의 모습과 여러 모로 닮아 있다. 게오르크의 아버지가 결혼하려는 아들 게오르크보다 멀리 러시아에 있는 아들의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 또한 역설적이다. 카프카의 아버지 또한 아들의 문학 작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들의 시민적인 결혼을 바라기 때문이다. 게오르크에게 물에 빠져 죽으라는 아버지의 선고는 펠리체와 결혼하는 것을 순수 자아가 단죄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 선고를 통해 러시아에 있는 또 하나의 자아는 결혼으로 인해 예술적 존재가 침해받을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선고」야말로 카프카의 예술적 명제를 가장 핵심적으로 요약한 단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부」(1913)
카프카는 1913년 6월 10일 그의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편지와 함께 「화부」를 보낸다. 「변신」, 「선고」, 「화부」는 모두 그 자신이 곧 문학의 소재임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화부』의 주인공 카알은 부모 곁을 떠나 낯선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배 안에서 정의를 주장하다가 오히려 내몰리는 곤경에 처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관철하려는 카알의 행동 방식은 현실 극복 의지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카프카의 소망의 투영이다. 이제 카알은 더 이상 작품 내에 머물지 않고 카프카의 또 다른 자아를 지닌 형태로 펠리체를 찾아가는 것이다.
「변신」(1915)
「변신」은 1913년 11월 후반부에 시작되고 12월 초에 완성되어 1915년에 출간되었다. 이 중편에서는 주인공 그레고르의 의식의 흐름이 내면 독백의 형식으로 서술되며, 어떤 화자도 끼어들지 않고 그레고르의 생각들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선고」, 『시골 의사』와 함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다룬 이 작품은 현대 사회에서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살아?는 소외된 인간 모습을 형상화한 표현주의적 소설이며, 실존의 문제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실존주의 소설로 간주되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일상적 시간과 모험적 시간이 교대로 반복되고 있다. 이 작품은 종교적, 심리학적, 사회학적인 해석 등으로 다양하게 분석되고 있다. 영화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이런 카프카적인 불안을 〈비디오 드롬〉같은 작품을 통해, 스티븐 소더버그는 영화 〈카프카〉를 통해 카프카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을 노동자를 억압하는 권력으로 드러내고 있다.
「유형지에서」(1919)
「유형지에서」는 1914년 10월 4일과 18일 사이에 완성되고 1919년에 쿠르트 볼프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1916년 11월에 뮌헨의 한 독회에서 이 작품을 소개했을 때 청중과 언론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카프카를 〈공포의 난봉꾼〉으로 불렀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쓰인 이 작품은 중세의 고문 장면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여기에는 외적인 정치적인 사건들뿐만 아니라 카프카 개인의 사도마조히즘적인 경향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고통스러운 강요이자 깊은 만족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단편의 주제는 비인간적이고 전체주의적 권력제도가 부르짖는 정의라는 게 극단적으로 왜곡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시골 의사』(1919)
1917년에 쓰인 〈시골의사〉는 여러 단편들을 묶어 1919년 단편집『시골의사』로 출간되었다. 카프카의 전기적 사실을 살펴보면 시골의사는 트리쉬에서 실제로 시골의사로 일했던 카프카의 외삼촌 지그프리트 뢰비의 특징을 닮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쓰인 1917년에는 펠리체와 다시 가까워져 7월에 그녀와 두 번째 약혼을 했고, 8월에는 결핵으로 인해 처음으로 각혈이 있었다. 12월에 들어서 카프카는 재차 파혼을 하게 된다.
1917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1919년 『시골의사』에 수록되어 출간된 「학술원에 보내는 보고서」는 E. T. A 호프만의 『개 베르간차의 최근 운명에 관한 보고』와 빌헬름 하우프의 『젊은 영국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장기 흥행에 성공한 추송웅의 『빨간 피터의 고백』은 바로 이것을 원작으로 한 모노드라마였다.
『단식 광대』(1924)
1922년 봄에 완성된 〈단식 광대〉는 1922년 10월 〈〈노이에 룬트샤우 Neue Rundschau〉〉 지에 실렸다가, 카프카가 죽은 지 8일 후인 1924년 6월 11일 다른 세 개의 단편과 함께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것은 관중에게 자신의 뛰어난 단식법을 보여주는 광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흥행주는 그에게 40일까지만 단식하라고 허락하지만, 그는 그 이상 단식하다가 대중의 외면을 당해 쓸쓸하게 죽고 만다.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한 예수보다 더 오래 단식하려는 그의 오만함에는 신을 모독하는 요소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