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 슬프고도 아름다웠던 한 여자의 새로운 기록
일본을 떠나기 전에 신주쿠 부근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신주쿠 공원을 끼고 있는 한적한 산책로 모퉁이에 있는 헌책방을 들르게 되었다. 나는 『장길산』을 쓸 때에도 몇 번이나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자료’를 찾아내는 이상한 감이 있었다. 어쩐지 서점의 왼쪽 구석진 통로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내가 그리로 다가서자 책꽂이에서 무슨 빛 같은 게 보인 듯했다. 역시! 그 안쪽에서 나는 오키나와 그리고 나가사키의 풍속 여속 기녀 개항사 등의 아주 귀한 자료들을 건져냈던 것이다. 이들은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지방 사학자나 단체들이 자비로 또는 지역 출판사에서 찍어낸 한정판들이었다.
자료가 많으면 이야깃감이 풍부해져서 좋을 것 같지만 작가에게는 흔히 또다른 족쇄로 작용할 확률이 커진다. 그것은 상상력을 제한 받게 되는 흠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역시 후반부로 가면서 자료에 눌린 감이 없지 않았다.
늘 그에 관해 얘기하면서 오히려 한 권짜리로 압축해볼 수 없을까 궁리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국 체류 시절부터 틈틈이 이곳 저곳을 빼고 잘라내면서 다이어트를 해보았지만 기본적인 서사의 틀이 있어서 파격적으로 줄이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보였다. 그래도 이만큼 압축해놓고 보니 좀더 깔끔해 보이기는 한다.
채만식 선생이 『심학규전』을 새로 썼을 때의 시각과 내가 ‘심청’을 다시 쓴 계기와 시각은 각자 당대의 현실 인식에 근거한 것이리라.
사람 사는 얘기란 예나 지금이나 물량만 커졌을 뿐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이것은 요즈음의 내가 다시 확인하게 되는 세계의 모습이다.
― 개정판을 내면서
또다시 태어나는 ‘여자’ 심청
‘효녀’ 심청이 아닌, 황석영의 ‘청이’는 처절하고 안타까운 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한, 피와 살이 뜨거운 여자였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 세상과 사람을 품을 줄 알았던 그 여자 심청은 몸으로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을 겪어냈던 여인이었다.
2003년 겨울, 황석영 선생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던 여인 ‘심청’은 사 년 만에 또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이제 그런 그녀 심청을 만나야 할 시간이다.
*
『심청, 연꽃의 길』은 재미있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이 아닌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려 하는 청이가 겪게 되는 사건들은 거장 황석영의 손에서 어떤 드라마보다 더욱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심청, 연꽃의 길』은 아름답다. 소설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성애(性愛)의 묘사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해부학적이지만 또한 그지없이 아름답기도 하다. 달빛이 내리비치는 거룻배 위에서 동유와 첫날밤을 치르는 장면은 더욱 그러하다. 두 사람의 움직임에 맞추어 비파가 차르릉거리고, 한쪽에 대어진 작은 배 역시 물결 위에서 찰랑거린다. 호궁과 비파의 연주에, 너른 평원 위를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힘찬 폭포의 움직임에 비유되는 두 사람의 사랑의 장면은 그윽한 음악에 귀를 열어두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하다.
『심청』은 처절하고 안타까운 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한 한 여자의 일대기다.
은자 삼백냥에 중국 선상들에게 팔려갈 때가 열다섯. 아직 달거리도 시작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 '청'은 풍랑을 잠재우는 제물이 되어 굿을 치른 후 중국의 한 부잣집에 팔려간다. 황해 바다를 건너 중국 진장을 거쳐 그네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은 난징. 중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렌화(연꽃)'라는 이름을 얻은 후 차 장사로 부자가 된 첸 대인의 어린 첩실로 팔려간 것이다. 첸 대인의 보약 노릇을 하던 청은, 첸 대인이 죽은 후 그 집 막내아들 구앙을 따라 그가 운영하는 진장의 기루(妓樓) '복락루'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청은 처음으로 자기의 의지로 자신의 몸을 판다. 그후 떠돌이 악사 동유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둘만의 혼례를 치른다. 복락루에서 도망친 두 사람은 만두집을 열어 평범한 삶을 꾸려나가고 싶어하지만 운명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청이 다시 창녀가 되어 팔려간 곳이 타이완의 지룽 섬. 하룻밤에 열두세 명의 사내를 상대해야 하는 밑바닥 창녀의 삶이 그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기녀들의 대모 격인 샹 부인을 만나고, 그녀 아래 들어가 일하던 청이는 영국인 제임스의 눈에 들어 그의 첩이 되어 싱가포르로 가게 된다. 이 년여 로터스라는 이름으로 살며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던 그녀는 제임스가 본국으로 들어가게 되자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로 떠나게 된다. 제임스에게서 받은 얼마간의 전별금으로 류큐에서 요정 용궁(龍宮)을 열어 운영하던 중 렌카는(렌화의 일본식 이름) 오키나와의 우에즈(王子)인 가즈토시를 만나 그의 두번째 부인이 된다. 그의 아내로 살기를 몇 년. 사츠마 번의 정권이 바뀌면서 옥에 갇히게 된 남편 가즈토시를 만나러 나가사키로 갔던 렌카는 남편이 사사(賜死)되고 나자 그대로 나가사키에 정착, 요정 '렌카야(蓮花屋)'를 차리게 된다. 이곳에서 다시 기아보호소를 열어 아이들을 돌보던 렌카는 남편 가즈토시를 꼭 닮은 센신 스님을 만나게 되고, 그와 마지막 사랑을 하게 된다. 하지만 개화파였던 센신 스님 역시 자객의 칼에 죽음을 당하게 되고, 홀로 남은 렌카는 연화옥에 함께 있던 기리와 아라이를 데리고 제물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는다.
아무것도 모르던 열다섯 살 어린 여자아이가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여든의 노파가 돼 있었다. ‘연화 보살은 눈을 감고는 한 번 빙긋이 웃었다. 오물조물한 입이 조금 움직였을 뿐, 실컷 울고 난 사람의 웃음처럼 그건 아주 희미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두고 황씨는 스스로 흡족하다고 했다. “예전에 나는 불상의 웃음이 한없이 풍요롭고 다사롭기만 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지극한 고통을 겪은 뒤에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희미하지만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미소였다.” 작가는 그 미소가 소설의 주제라고 설명했다.
제물포에서 난징으로, 기루로, 지룽으로, 싱가포르로, 다시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로, 나가사키로, 또 제물포로…… 청이에서 렌화로, 로터스로, 다시 렌카로……
이 기구한 여인 청/렌화/렌카의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이 여자의 일생은 19세기 동아시아의 벌거벗겨진 역사이기도 하다. 그 역사는 청이라는 가냘픈 여자의 몸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황석영 선생은 이 작품을 두고 "동아시아의 근대화를 문학적인 장치를 통해 상징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동아시아는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타의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었으며, 이는 여성의 몸이 팔리면서 사물화?객체화하는 과정과 겹쳐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작품 속에서 이러한 의미들을 찾아내려 애쓸 필요는 없다. 이미 말했듯이 이러한 역사는 그네의 몸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그저 그네의 삶의 행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