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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4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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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수, 무게, 크기 | 1,951쪽 | 2,741g | 153*224*140mm |
한강 스페셜 에디션 『작별하지 않는다』+『흰』+『검은 사슴』& 필사노트
전3권+필사노트, 친필 인쇄 사인본 , 양장
한강 저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10일
42,120원 (10%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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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여자, 그, 그녀 그리고 나.
나의 주변 인물 'R', '요하임 그룬델' 그리고 '란' 1장(무제, 남자): 보르헤스 그리고 '서슬 퍼런' 칼 2장(침묵, 여자): '희랍어 시간' 3장(무제, 남자): 보르헤스의 문장 '세상은 환이고, 산다는 것은 꿈꾸는 것입니다', '그 꿈이 어떻게 이토록 생생한가. 피가 흐르고 뜨거운 눈물이 솟는가.' 4장(무제, 여자): 침묵 속에서, 어어, 우우, 분절되지 않은 음성, 처음 몇 개의 단어들 5장(목소리, 남자): R, 사랑 그리고 어리석음. 보이는 세계가 썰물처럼 밀려가 사라지는 동안, 우리의 침묵 역시 서서히 온전해졌을 겁니다. 6장(무제, 여자): '희랍어 시간' 7장(눈, 여자):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8장(무제, 남자): 그러나 피가 흐르고 눈물이 솟는다. 9장(어스럼, 남자): 란, 그리고 아버지 10장(무제, 여자): 흑판에 씌어진 모국어 단어들이 육각 연필의 매끈한 표면에 으깨어져 있다. 11장(밤, 여자): 제논과 세슘137, 방사성 요오드131 12장(무제, 여자): 신과 인간과 혼 13장(무제, 남자): 점자 편지, 꿈 14장(얼굴, 남자): 요하임 그룬델 15장(무제, 여자): 몸이 없는 단어들 16장(어둠, 여자와 남자): 박새17장(어둠, 여자와 남자): 박새
18장(무제, 여자와 남자): 먼저 // 병원으로 // 가요 19장(어둠 속의 대화, 여자와 남자): 카타콤베 묘지, ..... 희랍어는 왜 배우는 건가요?20장(흑점, 여자와 남자): 어둠을 향해 두 눈을 뜬 채 그는 아직 그녀의 어깨를 안고 있다.
21장(심해의 숲, 남자): 우리
0장(무제, 여자): 나에게서 나에게로
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다. /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인다. / 가슴 앞에 모은 두 손이 조용히, 빠르게 뒤치럭거린다. / 두 눈꺼풀이 떨린다, 곤충들이 세차게 맞비비는 겹날개처럼. / 금세 다시 말라버린 입술을 연다. / 끈질기게,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 마침내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
나는 의문했다. 소설의 주인공에게 고유명사로 인격을 부여하지 않고 ‘그’나 ‘그녀’의 3인칭 대명사나 ‘여자’와 ‘남자’의 보통명사로 일반화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1장부터 시작한 소설은 왜 0장으로 끝이 나는지. 1장부터 21장까지 일관되게 남자를 ‘나’로 지칭하더니 마지막 장인 0장에서는 왜 ‘그녀’가 ‘나’가 되었는지.
세상과 나 사이에 놓인 서슬 퍼런 ‘실명失明’의 위기에 처한 남자.
갑작스럽게 두 번째 실어失語를 경험한 여자. 첫 번째 실어失語는 희랍어의 중간태 문장처럼 수천 개의 바늘로 짠 것 같은 언어의 옷을 그녀 스스로 벗어 버리듯 말을 버린 것이었다면, 두 번째 실어失語는 - ‘그것’이 왜 다시 찾아왔는지보다는 - 모성애로 인해 바늘로 짜여진 그 옷을 다시 꺼내서 입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이 본능적으로 바늘에 찔리는 고통을 회피하듯 그녀의 몸은 말이 흘러나왔던 길에 새겨진 바늘 자국과 핏자국을 모두 지워버렸고, 여자는 그 자국들을 다시 찾아야만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남자와 말을 할 수 없는 여자.
남자가 낭떠러지로 향해 걸어가고 있지만 그 위험을 알려줄 수 없는 여자.
낭떠러지를 향해 걷고 있는 여자의 위험을 볼 수 없는 남자.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태로움이 이보다 더할까.
그녀의 실어失語와 그의 실명失明이 만나지 않았다면, 박새로 인한 위태로움을 피할 수 있었을까. 고작 1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새의 퍼덕이는 소리에 겁을 먹고 휘청거려 안경알을 밟고, 깨어진 안경 유리 조각에 손바닥이 찔리는 상처를 입었을까.
하지만, 앞이 보이고, 말을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들 삶에서 고통을 피할 수 있을까. 여자는 말을 잃지 않았던 시절에 모친상을 치르고 이혼을 당하고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는 고통을 당했다. 남자는 박새를 보고 놀랄 정도는 아닌 정도의 시력을 유지하고 있을 때 어리석은 말로 R에게 상처를 주었으며 그 상처는 자신의 왼쪽 뺨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작가는 마치 삶이 위태로운 것은 말을 할 수 없어서 또는 앞을 볼 수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력을 잃을 것이 두려웠던 남자는 ‘우리는 언젠가 함께 살게 될 것이고, 나는 눈이 멀 것이며 내가 보지 못하게 될 때 그때는 말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에’ R에게 말을 해 보라고 했다. 남자의 처지에서는 참으로 현실적이고 절실하였을 물음이었을 테지만 R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필요의 대상일 뿐이라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광기로 타올라 나무토막으로 남자의 얼굴을 내려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남자는 ‘옛 여자’에게 보였던 그것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는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느끼는 침묵은 빛이 가득 고여 일렁이는 것 같았던 R의 것과는 전혀 다른, 얼음 밑에서 두드리다 굳어버린 손 같기도 하고 피투성이 몸 위로 쌓인 눈더미 같은 침묵이었지만 남자는 이번에는 말해 달라고 침묵을 깨 달라고 조르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는 빛도 소리도 없어 서로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곳에서 함께 누웠다. 소리와 빛을 느낄 수 없으니 심해처럼 느껴졌겠지만, 그들이 누워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남자 방의 ‘짙은 청색 매트리스 커버에 싸인 철제 싱글침대’ 위이다. 여자의 떨리는 검지손가락 끝으로 남자의 손바닥에 또박또박 글을 쓰듯, 어두운 곳에서 글을 쓸 때 윗문장과 아랫문장을 겹쳐쓰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넓게 간격을 두는 것처럼 문장과 문장 사이에 긴 사이를 두듯 그렇게 쉼표와 마침표 그리고 입맞춤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희랍어 수업 시간에는 곤충들이 세차게 맞비비는 겹날개처럼 떨리는 눈꺼풀을 힘주어 감았다 뜨면서 눈을 뜨는 순간에는 다른 장소에 옮겨져 있기를 바랐던 여자는, 이제는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면서 힘주어 눈을 뜨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여자는 ‘나’가 된다.
‘편지나 고백, 회상이나 일기 등의 형식으로 나타나는 남자의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남자는 말을 할 수 있으니까. 반면 이탤릭체로 적힌 그녀의 심리상태는 난해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었다. 그녀는 말을 할 수 없어서일까’라고 처음엔 생각했었다.
내 생각은 틀렸다.
이탤릭체는 여자의 심리상태를 표현할 때만 쓰이지 않았고, 일상을 적은 것 같은 남자의 글들은 철학적 사유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보르헤스의 불꽃과 화엄을 시작으로 하여 흑점, 카타콤베 묘지 등 너무나 생소한 상징이나 비유들은 책을 읽는 내내 책장을 넘기는 것을 머뭇거리게 하였고,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는 희랍어 알파벳과 희랍어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듯한 ‘모국어’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선득한 입술에 입을 맞출 때 섭씨 수천 도의 흑점들이 폭발하듯,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 뭍으로 거세게 쓸려왔지만 두려워하지 않듯, 나는 그들로부터 ‘서슬 퍼런’ 칼날을 보고 싶다.
여수에 내려오면서 한강 작가님의 책 ‘소년이 온다’를 가지고 왔다. 기차 안에서도 오후 시간 카페에서도 숙소에서도 이 책을 읽었다. 한강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어보는데 ‘작가’는 정말 글을 쓰는 게 다르구나를 느끼며 문체에 감탄하며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갔다. Eius est parere, qui ad imperandum ius non habet!
20대 초반, 라틴어교재에서 본 내용 중 특별하지 않은 이 문장에 마음이 끌렸다. 이후로 나는 이 문장을 애지중지하며 사용했고, 책을 살 때마다 첫 장에 이 문장과 서명을 해놓았다.
“복종한다는 것은 명령하기 위한 법을 소유하지 않은 자에게 속한(eius) 것이다.”
이 문장에 무언가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문장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것도 아니고, 내 삶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들어준 것도 아니다. 그냥 라틴어 공부를 위해 교재를 보면서 한 눈에 들어왔던 그런 문장일뿐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작가의 작품들은 이미 오래전에 듣고 있어서 알고 있었다. 다만, 이번 수상을 기회로 ‘희랍어시간’이란 책은 처음 알았다. 한강 작가가 이슈되기도 했고, 그래서 한강이란 작가가 있구나 정도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채식주의자’는 너무 유명했기에 익히 알고 있던 작품이지만, ‘희랍어시간’은 전혀 알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20대 초반에 전공 때문에 고대 그리스어(헬라어, 희랍어, 신학을 전공하거나 관련된 사람들은 대부분 ‘헬라어’라고 불렀다.)를 몇 년간 배웠기 때문에 궁금하기도 했고, 제목 자체에 반가움도 있었다. 어떤 내용일까?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던 그 밤에 한강 작가의 ‘희랍어시간’을 주문했다. 책은 갑자기 예약 대기로 모두 바뀌면서 제때 출고되지 못했다. 한참을 기다려 한강 작가의 ‘희랍어시간’을 받아 들었다.
‘희랍어시간’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아주 상세한 묘사와 묘사가 이어지는 글이었다. 특히 한강 작가가 선택한 희랍어는 중간태 형태의 단어가 중심이다.
헬라어에는 능동태 수동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간태라는 것이 있다. 형태는 수동태와 비슷하게 변형되지만, 뜻은 중간태로 해석된다. 대표적인 중간태 변형은 ~ομαι 동사다. 중간태는 주어가 어떤 면에서 그 주어 자체에 관계하거나 또는 주어 자체에 속한 무엇에 대해 동작하는 것을 묘사한다. 예를 들면 αρχω(내가 지배하다)란 동사가 중간태가 되면, αρχομαι(내가 시작하다)란 뜻이 된다.
한강 작가의 ‘희랍어시간’ 초반에 나오는 단어는 διεψθαρθαι(손상되었습니다, is corrupted)다. 이 단어의 뜻이 ‘희랍어시간’ 전체에 흐르는 주인공 여성의 시각과 생각을 사로잡고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열입곱살에 만난 인연, 한국과 독일, 그리고 아들, 사설 희랍어 아카데미에서의 시간들, 주인공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노선들이 얽히고설켜서 사건의 실타래를 풀 듯이 이야기는 흘러간다. 가끔 희랍어의 기본 단어와 변형에 대해서도 기록이 되어 있지만, 한강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단어를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어쩌면, 자신이 끌어나가고 싶은 이야기를 위해 희랍어 단어를 선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독자(讀者)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고 생경한 표현의 작품처럼 보일 수 있다. 대화는 거의 없다. ‘희랍어시간’에는 주인공을 따라서 모든 동작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이어지고, 심지어 그에 따른 생각까지도 묘사로 그려진다.
한국어에 ‘생경하다’란 말이 있다. 영어로 ‘It's strange’라고 표현되는 것보다 ‘생경하다’가 얼마나 더 정감이 가도록 느껴지는지, 어느 날 어떤 장관은 ‘생경하다’란 말을 사용해 그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한강 작가의 ‘희랍어시간’은 생경한 표현으로 한국인 독자들에게는 매우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첫 번째 생각은 “이 글을 영어나 프랑스어 등으로 옮기면, 외국인 독자들에게는 매우 신선하고, 그들의 감성에 충분히 깊게 호소할 수 있는 문장력이 되겠다”싶었다. 한글로 쓰인 ‘희랍어시간’보다 영어나 프랑스어로 쓰인 ‘희랍어시간’을 읽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졌다. 심지어 그리스어로 쓰인 한강 작가의 ‘희랍어시간’은 어떤 느낌일까 싶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것 또한 생경함의 연결 선상이 되겠다.
고통 3부작으로 불리는 책을 읽었다. 꿈을 꾼 이후 채식을 하게 된 '영혜'를 중심으로 이뤄진 세 장편은 그의 남편과 동서와 언니의 시선으로 서술된다. 내가 읽기에 화자 셋의 고통이라기 보단 영혜, 영혜의 주변, 언니의 고통이라고 생각된다. 직접적인 고통과 간접적으로 겪게 되는 고통의 느낌을 표현한 것만 같다. 실제로 없을 법한 것도 아닌지라 이해가 가는 것과 동시에 불쾌하다. 개중 두 번째 소설인 몽고반점은 한 번 읽고서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작가가 무엇을 적고자 했는지 전달은 되지만 그렇기에 다신 보고 싶지 않다.
채식주의자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눈이 번쩍였어.
20p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끔찍하게 이상한 느낌을.
21p
문장 하나하나, 글자 하나하나 읽고 또 읽었다. 마치 내가 꾼 꿈 같아서, 내가 겪은 실제 일만 같아서. 그 감각과 두려움이 너무나 생경해서 구토를 할 것만 같았다. 영혜는 이러한 꿈을 겪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온전히 자신만 느끼고 두렵기 시작한 꿈을 어떤 사람이 멀쩡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삼분의 일 가량은 영혜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을까. 극단적이지 않았더라면 영혜가 정상의 범주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영혜의 변화는 이 문장에서부터 시작되고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날고기를 씹던 것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짐승이었을까. 내가 그랬나. 나는 그럼 사람인가 짐승인가. '채식주의자' 속에서만 바라본다면 영혜가 변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독자인 나조차도 저순간만큼은 내가 역겨웠다. 그리고 알고 싶었다. 나는 결국 무엇인지.
한번만, 단 한번만 크게 소리치고 싶어, 캄캄한 창밖으로 달려나가고 싶어. 그러면 이 덩어리가 몸 밖으로 뛰쳐나갈까. 그럴 수 있을까.
아무도 날 도울 수 없어.
아무도 날 살릴 수 없어.
아무도 날 숨쉬게 할 수 없어.
72p
영혜는 숨쉴 수 있게 되었을까? 그렇다면 영혜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적어도 영혜 자신만으로 본다면 결코 영혜는 미치지 않은 것이다. 숨쉬고자 하는 마지막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몽고반점
십여년 동안 자신이 해온 모든 작업이 조용히 그에게 서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것은 더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98p
외골수인 형부가 무엇을 찍고 싶었는지, 무수한 꽃과 잎들 속에서 어떠한 장면을 담고 싶었는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것을 벗어난 형부의 욕망은 더욱 더럽고 추악하다. 어쩌면 전부 내던질만큼 모든 것을 얻고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은 형부는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내에게 들키지 않았더라면, 예술을 앞세워 채운 성적 욕망은 계속 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나무 불꽃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그런 순간에, 이따금 그녀는 자신에게 묻는다.
언제부터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을까. 아니, 무너지기 시작했을까.
198p
영혜를 이해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잘 표현되었다. 미친 사람이 영혜였기에 더욱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런 영혜로부터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겪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인 지아가 방어기재가 되지 않았더라면 언니도 영혜처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언니 또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두려운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었을지도 모르는 영혜의 모습이.
그녀는 이미 깨달았었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있었다는 것을. 그녀의 고단한 삶은 연극이나 유령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의 곁에 나란히 선 죽음의 얼굴은 마치 오래전에 잃었다가 돌아온 혈육처럼 낯익었다.
242p
주변으로부터 온갖 멸시와 환멸, 더러운 것을 보는 듯한 시선과 극단의 조치를 받으면서도 영혜는 자신의 원하던 것의 답을 찾았다. 해방의 길을 얻었다. 그와 반대로 언니는 혼돈 속으로 집어던져졌다고 생각한다.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읽고 나면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누가 가장 '고통'인가. 그건 아무런 해답을 얻지도 표면적인 방어기재로 인해 찾지도 못하는 영혜의 언니이지 않을까.
고통에 찬 확신이 마치 오래 준비된 것처럼,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앞에 놓여있었다.
241p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242p
영혜의 언니가 '정상'이라는 범주 속에서 답을 찾았으면 좋겠다. 고통이라는 숲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길 바란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만났기에 개정판인 이 도서를 만났다. 작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기에 다소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작품을 읽었던 시간이었다. 가족이라는 집단을 구성하는 우리들은 얼마나 서로를 알고 있을까? 부부, 부모와 자식, 형제들은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는 집단일까? 이 작품의 친정아버지가 결혼한 딸에게 빰을 때리는 장면은 영혜라는 딸에게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베트남 참전용사인 친정아버지. 그의 자랑하는 모습과 딸들에게 보여준 폭력성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뺨을 맞고,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었던 두 자매를 계속 부여잡으면서 작품을 다시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게 한 소설이다.
영혜의 긴 시간들을 차분히 떠올려보게 한다. 성장기와 결혼생활, 그녀의 표정과 말까지도 우리는 떠올려보게 한다.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 남편이 아내인 영혜를 타인처럼 거리를 두기 시작한 병원에서의 모습까지도 기억하게 한다. 사건이 일어나서 병원으로 실려간 그날 영혜는 철저하게 혼자였음을 작품은 짚어준다. 부모도, 남편도, 형제들도 영혜의 식습관에 이해보다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강요하며 억압하는 모습이 폭력적으로 일어나는 날이었다.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것에, 이유에 대해서도 사회가 보는 시선은 부드럽지 않았다는 것을 자주 만나게 된다.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도 자기중심적인 모습이었다. 사랑하니까, 함께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결혼이 아닌 결혼생활이 얼마나 건조한 것인지 이 작품의 부부을 보면서 느끼게 한 작품이기도 했다. 언니 부부의 모습에서도 놀라움과 실망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편의 무책임한 행동들은 아내와 자식에게도 서슴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감정을 끝없이 숨기면서 인내하는 아내의 모습도 위태롭기까지 했다. 아들이 꿈을 꾸고 나서 엄마품에서 우는 날 그녀가 아침에 보여준 모습들. 두 자매의 외줄타기 곡예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 작품이었다. 영혜의 모습이 곧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한 언니의 삶도 아프게 그려지는 소설이었다. 아이가 아빠가 집에 있냐는 질문에 그녀가 아이에게 대답하는 대화도 결코 가볍지가 않았던 장면이었다.
우리집에 아빠 있어? 아이가 아침마다 던졌던 질문.
없어. 아무도 없어. 너랑 엄마만 있는 거야. 언제까지나 그럴 거야. 196
자신의 삶을,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과 견뎌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짐작해 보게 된다. 두 자매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생각하게 한다. 썩어서 문드러진 시체 같은 꿈속의 얼굴이 곧 자신이었다는 영혜의 말은 큰 웅덩이가 된다. 육체만 있을 뿐 영혜는 이곳에 있지 않다. 그녀가 꾼 꿈들의 얼굴들과 언니가 꾸는 꿈속의 자신의 얼굴도 상징적으로 전달된다.
썩어서 문드러진 시체 같은, 피투성이일 때도 있고, 아주 낯익은 얼굴, 낯선 얼굴... 달랐던 꿈속의 얼굴 171
유독 꿈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들과 인물들의 눈이 자주 등장한다. 작품은 사회가 강직하게 보여주는 문화와 규율, 규범, 당위성, 타인의 시선과 시기와 의심, 혐오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촘촘하게 등장시켜준다. 무책임하고 방관하는 가족들의 모습들도 놓치지 않는다. 이해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고, 정신병원에 넣은 사람이 가족이었다는 점도 놓치지 않는다.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치료하는 모습이 최선이었는지도 질문하게 된다. 육식을 강요하는 가족의 모습들, 채식을 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은 호의적이지는 않는 모습이 작품에 흐른다. 나와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배타적인지 사회인지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텅 빈 두 눈 129
사막같은 얼굴 127
정신병원 가지요? 버스 승객들 시선. 의심과 경계, 혐오와 호기심이 얽힌 그들의 시선 181
오랫동안 혼자여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시선 181
눈에서 빛이 꺼진 것 228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268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선. 어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모든 것이 담긴,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 177
주변의 시기와 험구 160
꽃, 나무, 숲, 비. 물구나무를 서는 영혜의 세상은 동물의 세계가 아닌 식물의 세상이었다. 뿌리가 되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비를 맞고 땅으로 흡수된 것이 나무에 흡수되는 순환의 세상이었던 영혜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아프게 그려지는 고통이었다. 누구도 영혜를 헤아려주지 않았고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그녀의 아픔은 긴 시간 속에 새겨진 가족이 그려낸 것들이었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자두, 복숭아, 수박까지도 거부한 그녀의 고통과 분노, 아픔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병원에서도.
'새로 쓴 작가의 말'을 연거푸 되새기면서 읽었던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들만큼이나 이 작품을 기억할 것 같다. 믿고 읽었던 작가의 소설이었다. 수위가 높아서 다소 놀라웠지만 한글이 그려내는 문장의 전달력에 또 한 번 감동하면서 마지막까지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노력한 시간들과 작품성에 놀라워하면서 읽은 소설이었다.
잔인한 무책임의 죄. (아이꿈. 엄마새. 그날의 새벽.남편의 무책임 ) 266
(남편) 전부를 걸고, 전부를 잃었다 264


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이
한 줄기 빛이 되어 우리에게 온다
한강, 《소년이 온다》(창비, 2014.)를 읽고
한강은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통해 우리나라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로, 일찌감치 ‘한국 현대문학의 기수’로 손꼽히던 인물이다. 이렇게 촉망받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이번 기회에 그녀의 작품이 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하게 했는지 알고 싶었다. 이렇게 잘 나가는 소설가가 왜 굳이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 새롭고도 위태한 도전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1970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80년 5월 광주는 쉬이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이자 광주 태생으로서의 한강은, 이 책을 쓰기로 마음을 먹고 책을 쓰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녀의 생동감 있는 묘사와 섬세한 표현력에 담아내려 한,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목적을 지니고 책을 읽으니 더욱 가슴에 와닿았다. 이 책은 장마다 시점과 주인공을 달리 하여 80년 5월의 광주를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했다. 또, 평상시 우리가 5.18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관점과는 완전히 다른 미시적 관점에서 이를 재조명한다. 무엇보다도, 현장감 있는 묘사와 살아있는 듯한 표현은 책을 뚫고 나올 것만 같이 뚜렷하면서도 가슴이 아린 것들로 가득하다.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41년전 광주의 봄을, 작가는 충분히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소설적인 요소를 가미해, 독자에게 박진감과 감동, 그리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명저를 남겼다. 나라를 위해 두렵고도 장엄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하나둘씩 쓰러지던 시민들의 존재만 잊지 않는다면, 이 책은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줄 귀중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17쪽.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이 문단을 읽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쫘악 끼쳤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한번도 열사들의 시신을 태극기로 감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로 이것은 열사들이 목숨바쳐 지켜내려한 나라가 결국 그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바로 이어져 나오는 ‘은숙 누나’의 명쾌한 대답이다.
17쪽.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이 지점에서 나는 다시 한번 탄복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명징한 표현에는 작가가 진정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함축적으로 담겨있는 듯했다. ‘은숙 누나’가 말했듯이, 당시 군인들은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라의 일부가 아니라, 권력욕에 눈이 먼 장교의 졸개들이었을 뿐이다. 이 장면에서 군인들이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역설함으로써 나라를 위해 투쟁하는 애국열사들의 존엄성과 위대함을 더욱 부각하는 작가의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76쪽. 바닥에 떨어진 유인물을 주웠다.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 그 순간 억센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유인물을 뺏고 그녀를 의자에서 끌어냈다.
학생들의 강한 민주화 요구에도 사복경찰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탄압하였다. 이 장면을 찬찬히 읽어내려 가며, 문득 KBS 〈대화의 희열 2〉이라는 토크쇼 8화에서 80년 ‘서울의 봄’에 관한 자신의 경험과 소회를 밝히던 유시민 작가가 생각났다.
“근데 11시 반쯤인가 됐는데 라디오에서 비상계엄 확대 조치가 딱 발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왔구나. 이제는 덮치겠구나. 이제는 도망가야 해.’ 그래서 우리가 한 대엿 명 정도 있었는데, 남자들, ‘야, 도망가자. 이제 여기도 들어올 거야.’ 그러고 문을 타 여니까 밖에서 쇠사슬을 뜯고 있는 거야. (중략) 근데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리는 거야. (중략) ‘여기도 왔어요, 빨리 도망가세요.’ 그러고 끊고 나오는데 딱 잡혔지. (중략) 그냥 이단 옆차기 바로 날아오고, 권총 딱 대고. ‘너 누구야. 이름 뭐야.’ 그냥 유시민이라 그랬지, 뭐라 그래.”
이 소설과 유시민 작가의 이야기는 같은 시기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일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똑같은 일이 전라남도 광주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졌던 것이 80년 5월이었다.
“제가 스무살 때 학생운동 이런 걸 하고, 유인물을 뿌리러 다니고, 데모를 하고, 이렇게 시작했을 때, 저는 될 거라고 생각 안 했어요. (중략) 그때 ‘이길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하면 못 해. 해야 되니까 하는 거지. 근데 왜 해야 된다고 생각하냐면, 너무 못나 보이잖아, 그냥 있으면. (중략) 못 이길 거 같은데, ‘에이 못 이겨.’ 그러고 그냥 가면, 너무 비참한 거야. (중략) 세상을 이렇게 해서 못 바꾼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걸 한다고요. 나를 지키려고요. 내 스스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비천하다, 비겁하다 이런 느낌을 안 가지고 살고 싶은 거지. 아니, 내 책임이 아니에요, 유신 체제 이런 거. 나는 그냥 그런 세상에 왔을 뿐인데.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근데, 그냥 가면 그런 감정을 계속 느낄 거 같애, 자기 비하의 감정을.”
군부독재국이었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에 쓰여진 대로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변모하는 데에 있어서, 그 공을 민주화 운동에 몸소 뛰어드셨던 분들께 돌린다.
종이도 네 귀를 들어야 바른 이유
114쪽.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 양심. / 그래요, 양심.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중략) /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지난 9년간 학교에서 배운 ‘5.18 민주화 운동’은, ‘박정희 정권이 10.26 사태로 허무하게 막을 내린 이듬해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으로, 1979년 12.12 군사 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 세력의 주도로,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참극’이다. 이 말만 들으면 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잘 요약해 놓은 듯하지만, 사실 저 문장에는 광주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학교에서 흔히 배우는 거시적 관점이 아니라, 이 소설에서 제공하는 미시적 관점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재해석한다면, 곧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광주 시민들이 ‘독재 타도’를 외치며 일제히 봉기한 민주화 운동으로, 이때 시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거대한 민중의 한 지체로서 참여했으며, 이는 양심과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에서 비롯된 시민 불복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앞서 언급한 소설의 본문을 통해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한 개인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 개인은 어찌 보면 나약하고 불안한 인간일지라도, 그들이 모여 하나가 되었을 때 창조해내는 시너지 효과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정의를 례찬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사회의 변혁이나 개혁을 통해 바꾸고자 하는 것은 어렵고 힘들다. 또, 그렇기에 용감하고 대담하다. 그렇기에 위대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답을 찾지 못한 질문도 더러 있다. 가령, 한강이 왜 이 책을 집필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감히 추측컨대, 작가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본인의 삶에 대한 태도나 생활 속 행동에 변화가 있기를 바라고 이 책을 집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작가 자신이, 한강이라는 사람이 80년 5월 고향에서 어떤 비극이 일어났는지, 또 그 비극의 주인공들은 얼마나 미약하면서도 강인했는지를 알리고 싶었기에 이 책을 저술했다고 생각한다.
자칫 잘못하면 무거운 시대극으로만 치부되어 고리타분하고 읽기 힘든 책이 될 수도 있었으나, 작가의 탁월한 표현력과 묘사력은 이 책을 논픽션 보고서가 아니라 소설 그 자체로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주었다. 일례로, 제2장 〈검은 숨〉에서 ‘나’는 자신이 죽어가는 과정을 혼이 되어 묘사한다.
57쪽.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이 장면에서 한강의 거침없는 표현력을 엿볼 수 있었고, 또 그녀의 상상력에 감동받았다. 죽은 육의 살아있는 령이 자신의 주검을 빠져나와 그것을 보면서 본인의 죽음을 기억한다는 것은 보통 소설의 전개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또, 앞서 2문단과 3문단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소설은 독자에게 근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였고, 개인이 섣불리 하기 어려운 행동을 민중 속에서는 그들 각자가 어떻게 실현하는지를 생생히 표현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 장마다 시점과 주인공이 다르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고, 그러면서도 인물 간의 관계가 복잡하지 않아서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당시 광주의 모습과 개인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퍽 사실적이어서 책을 읽는 내내 가슴 한켠이 아플 정도였다.
평소에 당신이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와 관계없이, 이 소설은 당신을 푹 빠지게 만들만한 매력이 흘러넘친다. 시대극으로서도, 소설 자체로서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기에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표현이 다소 거칠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소설의 사실성을 더욱 드러내기 때문에 오히려 소설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제1장 〈어린 새〉에서 ‘너’라고 불리는 주인공 ‘동호’는 군인의 총에 맞아 중학교 3학년 16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말 그대로 ‘군인들의 총칼에 으스러진 소년’임에 틀림없다. 제2장 〈검은 숨〉에서 서술자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정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요절한 청년으로 불쌍히 여겨야만 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들은 광주의 민주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누구보다도 강한 양심과 행동력을 갖추었던, 우리나라 민주화의 주역들이다. 그런 그들이 2021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큼성큼 걸어온다. ‘한 줄기의 빛이 되어’.
한강의 소설을 읽기로 결심했을 때 <소년이 온다>는 되도록 나중에 읽고 싶었다. 주로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해 온 작가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루기로 마음먹기까지 일련의 과정의 있을 것 같았고 그 과정이 무엇인지 알고 나서 <소년이 온다>를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로 시작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을 부지런히 읽었고 이제 드디어 <소년이 온다>를 펼쳐들 시간이 되었다.
1980년 5월 광주, 열다섯 살 동호는 친구 정대를 찾아 합동분향소가 세워진 도청 상무관에 갔다가 그곳에 먼저 와있던 수피아여고 3학년 김은숙, 미싱사 임선주의 부탁을 받고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얼마 후 도청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 계엄군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지고, 이들은 시신을 두고 밖으로 나갈지 아니면 안에서 계엄군을 맞을지 고민한다. 계엄군의 총소리가 도청을 중심으로 온 도시에 울려퍼진 그 날이 지난 후, 은숙은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게 되지만 검열에 걸려 경찰에게 피멍이 들도록 뺨을 맞는 폭행을 당한다. 선주와 진수는 체포 당시 총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극렬분자', '빨갱이'로 분류되어 성기 고문, ‘모나미 볼펜’ 고문 등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특별하게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다. 처음 자료를 접하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연행할 목적도 아니면서 반복적으로 저질렀던 살상들이었다. 죄의식도 망설임도 없는 한낮의 폭력. 그렇게 잔인성을 발휘하도록 격려하고 명령했을 지휘관들. (p.206)
젊은이들을 죽인 것은 다름 아닌 동족의 군인들이었다. 작가는 집필에 앞서 5.18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읽으려 했지만 두달 여가 지나자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아무 것도 읽지 않고 5.18 관련 자료만 읽다 보니 밤마다 군인들에게 쫓기거나 그들이 들이민 총검에 찔리는 악몽에 시달렸다. 꿈이라도 이렇게 공포스러운데 현실에서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들을 유린한 군인들은 과연 어떤 낯짝을 하고 있을까. 작가는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었던 군인들이 한 해 전 부마항쟁을 잔혹한 방식으로 진압했던 이들, 베트남전에서 몇백만 명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이들이 아닐까 암시한다. 그리고 이들의 핏줄이 2009년 1월 용산에서, 2014년 세월호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럼에도 작가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라고 적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p.212) 작가는 인간의 잔인성을 의심하지 않지만, 잔인성을 강요하는 권위 앞에 굴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는 인간도 있다는 믿음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 1980년 5월의 광주를 작가가 재조명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p.134)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에 이어 <소년이 온다>를 읽으니 작가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싶은 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작가는 이토록 잔혹하고 폭력적인 사회를 다름 아닌 인간이 만들었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그런데도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지 갈등했던 것 같다. 이로 인해 <채식주의자>에선 육식을 거부하다 못해 스스로 식물이 되기를 택한 영혜를 통해, <바람이 분다, 가라>에선 짐승마냥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들 속에서 바로 살 수 없었던 두 친구 정희와 인주를 통해, <희랍어 시간>에선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빛을 일어가는 남자를 통해 잔인한 세상에 순응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을 그렸다.
그렇다면 <소년이 온다>에선 어떨까. 이 소설은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만 외려 작가의 문제 의식이 가장 극대화된 듯하다. 사회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 만큼 폭력적이다. 사람들은 집문을 걸어 잠그고 두 귀를 틀어막고 점점 그 사건을 외면하고 잊어버린다. 그런데도 사회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다. 차마 저항하지 못했어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저항했던 사람이나 저항하지 않은 사람이나 이 사회에 거대한 악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한 죽어도 죽지 못하고 살아도 살지 못함을 그림으로써 간접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인간이 존엄하다는 믿음은 스스로 증명하지 않는 한 미신(myth)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러니 스스로 자신의 존엄성을 증명하라는 것을. 벼른 끝에 이 책을 읽은 마음이 가볍지 않고 무겁다.
한강 작가님의 책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으로 인해 서점과 출판계가 들썩인다.
포털 기사에서 소식을 접한 순간 뭉클했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한 사람으로서 그 기쁨이 오롯이 전해진 것 같다.
한국 문학계가 사실 불미스런 일들로 인해 침체기였는데, 한강 작가님의 수상 소식은 그래서 의미 깊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콩쿠르상과 더불어 3대 문학상의 하나인데 문학상을 수상한 전례가 없는 우리
나라이기에 더욱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고 생각든다.
다른 문학상과는 다른 맨부커상은 작가와 번역가가 공동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게되어 더 가치있는 상이며, 최대한 원문의 의미를 되살려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 문학의 해외 수상이 흔해질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 이유다.
그러고보니 한강 작가님 책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구나.
이런 기쁨 처음 맛보기에 한강 작가님의 책들을 지금에서야 읽게 된다.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시선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먼저 구매했다.
그리고 카트에 넣어둔 <희랍어 시간>, <바람이 분다, 가라>도 꼭 읽을 예정이다.
냄비 근성의 민족이라 하지만 어떤가? 이런 계기로 책에 관심 없었고, 잘 읽지 않았던 사람들도 책 읽는
기쁨을 알게 되고, 책 잘 안 읽는 나라 사람들이라고 낙인 찍힌 것 조금이나마 희석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한강 작가님 하면 생각나는 책이 <소년이 온다>이다.
이 책을 먼저 읽고나면 한강 작가님이 어떤 문체와 어조로 이야기를 끌어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구매한 3권의 책 중 <소녀이 온다>를 먼저 읽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이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다.
내 나이 5살...... 기억하는 순간들이 있기에는 너무 어렸다. 신문을 읽기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이해하기엔 또 얼마나 어려운 나이일까? 부산과 광주. 거리감이 느껴진다.
같은 나라에 같은 하늘과 땅인데 이런 거리감은 지금도 계속 진행중이다.
이야기는 시, 공간적 배경만큼이나 잿빛, 우울, 먹먹함으로 다가왔다.
겪어보지 못했지만 생생함으로 그 시간 속에 있었던 너, 그, 그녀, 그들의 이야기가 무자비한 폭력으로
얼룩진 그 곳을 상기시켰다. 앳되고 순수한 젊은 청년과 무고한 시민들이 이유도 없이 잡혀가고 죽어갔다. 더 이상 그들을 구할 대한민국은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권력자라 불리는 자들이 그들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지키기위해 그들의 백성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단지 민주주의와 자유를 갈망했을 뿐인데........
그 댓가치고는 너무 가혹했다.
사진을 보는것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해서 읽기가 힘들었다.
새삼 1970년대, 민주화의 불꽃이 피어올랐던 그 곳 광주에서 태어난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참 많이도
자료를 모으고 배경이 된 현장을 갔다왔을 터 그 마음이 칼로 베인 듯 얼마나 아리고 아팠을까?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이며 후세에도 길이 전해져야되는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그 때 피지도 못한 채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목숨과 맞바꾼
것이기에 진정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다. 참 고맙고 감사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 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많이 아프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인간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인간의 역사는 그동안 전쟁와 살륙으로 점철된 피의 역사였기에 그럼 그것으로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정당성이 부여되는가? 어떤 대답을 받기 위한 질문은 더욱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난 잔인함 이면의 인간의 존엄과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는 것
같다. 계속 고민해야 될 부분이 아닌가싶다.
80년 5월의 광주는 과거의 시간 속에 묻혀져 서서히 잊혀져갔지만..... 그럼, 그 때 이후 남은 사람은?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참혹함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5월은 어쩌면 가장
잔인한 달일런지 모른다. 육신이 죽어야만 진짜 끝나는 전쟁임을 알기에 지금 이 땅에서 숨 쉬고 있는
자신들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 세월이 한참 지나 이 좋은 날들이 펼쳐졌건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에 더욱 몸서리치도록 아프고 힘겨운 나날들. 그들의 상처와 고통은 언제 즈음 아물어질 수 있을까?
새삼 지금 맞이하고 있는 5월의 빛이 참 역설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 때의 어둠과 그늘, 폭력과 광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니깐....... 먹먹함이 가슴팍 깊이 박혔다.
자꾸 생각이 날 것 같다. 한강 작가님의 문체가 이렇다면 다음번에 읽을 <채식주의자>도 부담감으로
다가올 것 같은데..... 얼마남지않은 5월이란 시간이 후딱 지나가야 될 것 같다.
아직 내 시계는 5월 그 <소년이 온다>에 멈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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