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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4년 09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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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334g | 132*225*15mm |
| ISBN13 | 9788937464508 |
| ISBN10 | 8937464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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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이 한마디 때문에 오랫동안 책을 집어 들지 못했다. 8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주인공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하는 소설이라면 얼마나 어려울까. 미리 겁을 먹었다.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바틀비는 단순히 ‘하기 싫다’는 것도 아니고, 일을 ‘못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난감하다.
바틀비 군이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은 채 유난히 차분하고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했던 것입니다.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전 잠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충격받은 정신을 추슬러야 했으니까요. 당장에는 제가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바틀비 군이 제 말을 완전히 잘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낼 수 있는 최대한 명확한 목소리로 다시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말만큼이나 명확한 어조로 이전의 대답이 되돌아왔습니다. “전 안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p.24)
숱한 평론가들이 바틀비를 자본주의 사회의 고독이나 소외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그를 시대와 사회를 초월해 어디에서든 불가피하게 마주치는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받아들였다.
그렇기에 바틀비의 소극적인 저항보다 그런 그를 대하는 화자이자 고용주인 변호사의 태도에 더 마음이 갔다. 따져보자면 바틀비로 인해 가장 직접적인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화자 자신이 아닌가.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손익을 따지지 않고 오직 바틀비를 이해하려 애쓰며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의 성숙한 배려는 바틀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는 결함이 있는 터키, 니퍼 같은 직원들에게도 단점을 탓하기보다 장점을 크게 보고 특기를 제대로 발휘할 기회를 주고 효율적인 운영을 고민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사실 바틀비가 아니라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화자인 변호사라고 생각했다.
맨 처음 저의 감정은 순수한 우울함과 진지한 연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바틀비 군의 외로운 처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면서 그 우울함은 서서히 공포로 바뀌었고, 연민은 혐오로 변해 갔습니다. 비참한 정황을 직접 목격하거나 그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 그 정도가 일정 선을 넘지 않는 한에서만 애정을 느끼게 되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더 이상 애정이 우러나지 않게 된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실망스러운 말이기도 합니다.
(p.41)
저는 그날 아침 트리니티 교회에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제 눈으로 목격한 사실로 인해 당분간은 예배에 참석할 자격을 상실한 것 같았습니다.
(p.42)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끝까지 존중과 배려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바틀비처럼 기존의 질서를 깨뜨리려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 변호사는 갈등하고 번민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가장 현명한 답을 찾아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시혜나 동정이 아닌 한 인간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화자. 그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알면서도 그 속에서 가능성을 찾아내려는 지성인이었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p.76)
인간에 대한 짜증, 부조리, 그리고 연민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화자의 절규이자 작품의 마지막 문장이다. 우리는 짜증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연민을 보이며 인간성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미일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바틀비 같은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바틀비처럼 알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그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존중과 배려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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