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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5년 10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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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
| 파일/용량 | EPUB(DRM) | 52.98MB 파일/용량 안내 |
| 글자 수/페이지 수 | 약 6.3만자, 약 2.1만 단어, A4 약 40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
| ISBN13 | 9791160896572 |
1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아주 가끔은 책의 제목만 보고 구입을 결정할 때가 있다. 또 아주 가끔은 책의 표지 사진이나 그림 같은 디자인만 보고 책을 구매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렇게 즉흥적으로, 아무 정보도 없이 구매한 책의 만족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이번에 만난 책도 마찬가지. 오직 제목에 끌려서 책을 구입했다. 물론 작가인 정혜윤 PD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으며 결은 분명히 다르지만 박웅현 작가를 떠올렸다. 물론 박웅현 작가는 지적이고 정서적 측면에서 책에 대한 접근과 느낌을 소개하고 정혜윤 작가는 현실적이고 일상 속에서의 책에 대한 만남과 느낌을 소개하는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책을 정말 사랑하고 삶을, 사람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책이 더 좋기도 했다.
사실 에세이류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기에 잘 읽지도 않는다. 뭔가 '이게 삶의 정답이고 표준이야. 그러니 따라야 해'와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그럼에도 에세이류의 책이 꾸준히 나오고 베스트 셀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책의 내용으로부터 위안을 받고 삶의 지침을 바로잡기도 하고 공감과 연대의 의식을 나누기도 하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유는 나 역시 이 책으로부터 꽤나 큰 위안을 얻기도 하고 부러움과 감탄의 정서도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삶의 자세와 열정, 공감과 연대의 태도가 마음에 다가왔다. 그리고 많이 부끄러웠다.
책의 제목이 이 책이 지향하는 바를 상징한다. 사실 책 읽기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삶이 열린다. 언제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책장을 넘기는 순간이 아니라 책 이후의 삶이다. 책을 덮은 뒤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떠올려야 한다. 이 질문은 책 읽기를 끝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덮고 비로소 삶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나와 너, 우리의 삶이 새롭게 열리는 것이다.
책의 내용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 것은 사실 문체다. 엄청나게 많은 반점(쉼표). 상황과 대상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세밀한 설명을 위해서이겠지만 그 반점들은 사실 유사한 의미의 꾸밈새이다. 그래서 많은 반점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다만 정혜윤의 문장은 과장되거나 감정에 과도하게 호소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사유의 리듬을 통해 독자를 설득한다. 나 역시 그녀의 문장에 설득당했고.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단순히 책을 읽는 사람, 다른 사람보다 조금 많이 읽는 사람에 만족하고 또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하지만 정혜윤 작가가 바라는 독자는 책을 읽은 뒤 이전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 혼자에만 머물지 않고 연대의 시선과 어깨동무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견고한 세상을 직시하고 그 세상을 올바로 바라보는 시선을 나누고 행동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결국 세상을 바로 바꿀 수는 없지만 책 읽기를 통해, 타인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통해 우리는 세상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꿀 기회와 희망을 찾는 것이다.
책의 첫 부분에 야마오 산세이의 시가 인용된다. 사실 여기서부터 책이 이미 좋았다. 시시포스의 신화를 새롭게 보는, '굴러 떨어진 바위를 짊어지고 오르기 위해 천천히 산을 내려갈 때 주변 풍경이 주는 짧지만 깊은 위로(10쪽)'란 시구. 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이렇게 삶을, 세상을 달리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각. 벗어날 수 없는 질곡이자 형벌로만 여겨지는 행위가 기쁨과 위로가 될 수 있다니. 이래서 배워야 하고 이래서 더 읽어야 한다는 자각을 다시금 가지게 해 준 시구였다.
예술에 대한 다양한 작가들의 견해를 소개하고 정혜윤 작가 스스로의 생각을 말하는 부분도 좋았다. '예술은 사랑하는 것을 재료로 삶을 만드는 것(31쪽)'이란 말. 사랑과 삶은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란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타르콥스키의 '예술은 삶을 이해려는 시도(31쪽)'란 말이 가장 쉽고 직설적으로 다가와서 좋았다. 삶을 이해하는 방식과 태도가 사람마다 다 다르기에 예술은 다양하고 다채롭게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이리라.
이번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변신의 여행'이란 장이다. 내용이 좋았다기보다는 오래 전 과거의 경이로운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좋았다. 멜빌의 '모비딕'을 만난 것은 고등학생 때. 내가 읽은 책의 제목은 '백경' 그리고 주인공의 이름은 아마도 '에이해브'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10대 후반의 나는 백경을 쫓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그 광기와 열정에 감탄과 놀람을 느꼈다. 그리고 제발 백경이 무사하기를, 죽지 않기를 순진하게 바라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다르게 바라본다. 에이해브를 통해서 인간의 잠재력과 한계를 동시에 바라보기도 하고 자연과 인간의 역전적 지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 되었다. 어찌보면 지극히 순수하고 세상의 험난함과 각박함을 몰랐던, 아름다웠던 시절. 바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서 참 좋은 읽기 경험이었다.
제프 다이어의 '그러나 아름다운'이란 책은 내용을 전혀 몰라도 이미 제목만으로도 아름답다. 더구나 '내 '존재의 순간'의 절반이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는 순간들이었다(90쪽)'란 문장은 숨막히도록 아름다웠다. 그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나눔봉사단의 이야기. 끝모를, 바닥이 없는 슬픔을 겪고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과 비슷한 슬픔을 가진 이에게 향하는 나눔과 봉사.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나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는 문장들을 많이 발견한 것도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다. '에이드리언 리치는 우리가 어떤 문장에 끌린다면 그것은 그 문장이 "나를 표현해줘서가 아니라 나의 소망과 요구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145쪽)' 실로 그렇다. 어떤 문장이 내 안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나의 소망과 요구의 대리적 반영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나의 결핍, 나의 부족함을 누군가 대신 말해주고 대신 채워주는 것만큼 기분좋은, 행복한 상황도 없다. 책을 읽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라고 생각돼서 기분이 좋았다. 또 '읽기는 스스로에게 '기회 주기'이자 '씨앗 뿌리기'다.(176쪽)'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기회이자 내가 나아닌 타인으로서 간접적으로 살아가는 기회, 내가 진정 나답게,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씨앗 뿌리기. 이것이 내가 읽는 이유이자 다수가 여전히, 책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나의 읽기가 극단적인, 편향적인 읽기가 아니라 세상 어느 곳 누군가도 느끼고 생각하는 읽기라는 생각에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사실 따로 있다. 그것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의 다음 구절.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 너는 사라진다-그러므로 아름답다.(136쪽)’ 이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슬프고도 아름답다. 그래서 좋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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