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북부 요크셔의 작은 마을에 찾아온 젊은 이방인과
소박하고 노련한 마을 사람들이 빚어낸 희망과 회복의 시간들.
그 풍경을 마음에 담고 다시 길을 떠나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
“영원한 나의 여름날들”이라고 불러 마땅한 그해 여름날의 추억을 영국의 작가 J. L. 카가 매혹적으로 담아낸 소설이다. 시대적 배경은 1920년이고,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군인으로 안면 경련증을 얻은 채 전장에서 귀환한 톰 버킨이 주인공이다. 그는 대학에서 중세 벽화를 복원하는 수련을 받은 전문가로, 교회에 오랫동안 방치된 14세기 벽화의 복원 작업을 위해 어느 여름날 영국 북부 요크셔의 작은 마을 옥스갓비에 도착한다. 역에서 벌써 북부 지방 특유의 낯섦이 느껴지고 비도 세차게 내리고 있었으나 버킨은 교회에서 목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한 터라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비를 흠뻑 맞으며 교회를 향해 걸어간다.
옥스갓비에서의 시작은 그리 수월하지 않다. 그에게 벽화의 복원 작업을 의뢰한 교회의 목사는 버킨을 첫 대면에서부터 냉담하게 대한다. 형편이 좋지 않은 버킨이 교회의 종루에서 기거하겠다고 하자 탐탁지 않아 하고, 방치된 낡은 난로조차 선뜻 빌려주려 하지 않는다. 작업비의 지급도 산뜻하게 처리해주지 않고 버킨의 속을 태운다. 그럴수록 “신경이 너덜너덜하고, 마누라는 도망갔고, 땡전 한 푼 없는” 톰 버킨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신을 단절시킬 이 외진 시골에서 자신을 잊고자 한다. ‘오로지 시간이 나를 정화해 줄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견디기에 이보다 더 맞춤한 장소와 적합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절은 빠르게 지나간다. 그는 한여름의 풍경에 둘러싸인 교회의 종루에서 오래전에 벽화를 그린 이름 모를 화가와 매일 마주하며 복원 작업에 고군분투한다. 분명치 않은 이유로 군데군데 석회로 덮어진 부분들로 인해 작업의 진행은 더디고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런 단조로운 일상에 소소한 재미를 더해주는 건 버킨을 호감으로 대하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다. 크지 않는 마을임에도 주민들은 종교적으로 나뉘어 있고, 웨슬리교파 신도인 마을 사람들은 목사를 중심으로 한 국교회를 은근히 경멸한다. 그런 정서를 가졌음에도 웨슬리교파 사람들은 국교회 교회를 위해 작업하는 버킨을 식사에 초대하고, 버킨 역시 그들의 소소한 일상에 참여하며 옥스갓비의 변화무쌍한 풍경 그 자체에 마음이 끌려간다.
“매일 동이 터오면 들판에서 안개가 피어올랐다. 울타리와 헛간, 숲이 서서히 형태를 갖춰가고 마침내 구릉의 구불거리는 기다란 등이 평원으로부터 또렷해졌다. 매일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교회의 문에 몸을 기댄 채 첫 담배를 피우며 이 근사한 배경막에 경탄을 했다. 아니 그랬을 리가 없다. 나는 경탄하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 그때는 그런 인간이었나?”_ 255p
1980년에 이 작품을 발표한 J. L. 카는 두 차례나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를 만큼 문학성 짙은 소설을 발표해온 작가다. 이 소설의 개정판에 서문을 실은 작가 피넬로피 피츠제럴드는 J. L. 카와의 인연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마이클 홀로이드의 〈받아들여지지 않은 의견들〉에 실린 글에서 J. L. 카를 처음 알게 되었다. 홀로이드는 케터링에서 집안 대대로 정육점을 하는 조지 엘러벡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그 편지에는 홀로이드에게 최고의 스테이크 고기 일 파운드를 살 수 있는 양도 불가 상품권과 카의 소설 『하폴 리포트』를 부상으로 주는 엘러벡 문학상을 수여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상은 부정기적으로 수여되며 귀하는 세 번째 수상자입니다. 어찌 된 일이고 하니, 글쓰기로 생계를 이어나간 카 씨는 저의 고객 중 한 분이며 고깃값 일부를 ‘재고’로 알려진 팔리지 않은 소설로 지급하십니다.’ 그 전으로도 후로도 나는 정육점에 줄 고깃값을 설령 일부라도 재고 도서로 지급하는 사람을 들은 적이 없다. 합리적이고 유익한 발상이지만, 제임스 카가 아니라면 이런 발상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으리라.”
J. L. 카는 이 소설에 주인공 외에 세 명의 이방인을 더 등장시킨다. 그들 중 한 사람은 고고학자 찰스 문으로, 그 역시 전장에서의 후유증으로 밤마다 근육의 경련에 시달리고, 발굴 작업 중인 묘지 옆에 전쟁터의 참호인 양 파놓은 구덩이 속에 텐트를 치고 지낸다. 그렇게 있어야 안전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버킨은 마을의 누구에게도 자신의 병증을 말하지 않았지만, 같은 고통을 겪는 문은 이심전심으로 그의 상태를 알아차리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은 그곳에서 각자의 일을 수행하며 여름 한 달을 함께 보낸다.
나머지 두 이방인은 교회의 키치 목사와 그의 부인 앨리스다. 목사는 사무적이고, 버킨의 작업을 계속 못마땅하게 여기고, 고집스럽고, 차가운 사람이다. 그는 버킨의 안면 경련에 익숙해졌을 즈음에도 여전히 버킨의 왼쪽 어깨 뒤에 서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듯 말한다. 반면, 목사의 아내 앨리스는 보티첼리의 그림 속에 등장할 것 같은 봄의 환영이다. 마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남편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내면의 미적 욕구에 갈증을 느끼는 그녀는 목사관 정원의 장미나 갓 딴 사과를 들고 버킨의 작업장에 와서 복원 작업에 관해 기탄없는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이 앨리스를 향한 버킨의 감정은 누구나 예상한 대로지만, 그것은 단순한 사랑의 차원보다 훨씬 고운, 마음속으로 간직하는 ‘은밀한 연정’이다.
J. L. 카는 이야기 곳곳에서 진실의 울림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조상이 대대로 살아왔고 본인 또한 성장했던 고향에서의 기억을 불러와 소설 속 옥스갓비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묘사했다. 가난하지만 당당하고, 원칙에 충실하면서도 타인에게는 열린 마음으로 대하고, 거창한 형식보다 꾸준한 믿음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소설에 담긴 그들 삶의 단면을 읽으며 북부 요크셔의 문화와 전통을 만나고, 그들에 대한 작가의 진심 어린 헌사를 느끼게 된다.
버킨은 농촌의 평화와 아름다움, 소박하고 진정한 마을 사람들과 그들 일상의 변치 않는 리듬에서 희망이라는 새로운 감각과 믿음을 경험한다. 또한, 햇살 가득한 여름 내내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 그 자신이 삶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얻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여름이 끝나가고, 복원 작업도 마무리되면 버킨은 마을을 떠나야 한다.
“지옥을 믿으시나요, 버킨 씨?
음, 그건 상대적이죠. 지옥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시대에 따라 또 다르니까요.” _ 176p
이제 나이가 든 주인공 버킨은 시간의 흐름과 예술의 힘을 되돌아보면서, 잃어버린 모든 것에 대한 위로를 기억 속에서 발견한다. 전쟁이 초래한 내면의 혼란과 상처를 이겨내고자 하는 두 젊은이의 바람이 벽화의 복원과 무덤의 발굴이라는 모티프를 통해 매우 짜임새 있게 펼쳐진 이 소설에서. 그들이 ‘복원’하고 ‘발굴’하고자 했던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희망과 삶에 대한 의지가 아니었던가. 우리가 결코 가지지 못한 것, “소중한 순간은 이미 가버렸고 우리는 더는 그 순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먹먹한 마음”을 향한 노스탤지어가 물씬 느껴지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