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산문
거짓말, 엄살, 극단적 나태, 자기방기, 또 뭐가 있을까. 무능력, 이기심, 허세, 윤리적 우월감, 독선, 의지박약……그리고 이제 몰염치! 초등학생 시절 이래의 기억을 더듬으며 내 악덕의 목록을 꼽아본다. 그 악덕들의 발현 순간을 떠올리면 낯이 달아오르지만, 어떤 건 용서가 되고, 어떤 건 ‘할 수 없지. 그렇게 생겨먹은걸’ 고개를 저으며 받아들인다. 극복할 수 없는 건 몰염치의 순간들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내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는, 아아, 내가 저버린 존재들! ‘저버리다’라는 말은 뇌는 것만으로도 가슴 아리다. ‘저버림’은 원초적 감각이며 존재적 감각이다. 저버린다는 행위에서 주체와 대상이 꼭 상관있지는 않다. ‘저버림’의 주체가 되는 건 그 대상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인데, 대상은 주체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차가운, 고적한 포기를 생각하면 울음이 차오른다. 저버린다는 건 ‘보고’ 외면하는 것이다. 어떤 한 생명의 존재의지를 거절하는 외면. 삶의 기반이 허술한 사람들과, 아예 그 기반이 없는 동물들. 내가 외면한 순간, 내가 저버려서, 절벽에서 떨어진 그 몸뚱이들……
시인의 말
매사 내가 고마운 줄 모르고 미안한 줄 모르며
살아왔나 보다. 언제부턴가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렇게 됐다.
인생 총량의 법칙?
그렇다면 앞으로는 시를 끝내주게 쓰는 날이 남은 거지!
2016년 가을 황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