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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09년 08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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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수, 무게, 크기 | 300쪽 | 452g | 153*224*20mm |
| ISBN13 | 9788936433710 |
| ISBN10 | 8936433717 |
17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1980년대와 2000년대를 걸친 한 운동권 출신의 지식인의 좌절과 체념을 허무의 비관으로 일관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허무상' 은 '허무'하고 '무상'한 인물이다. 허구의 인물이 실제의 인물을 대변하는 허수아비라 할 때 그는 현대를 펜으로 읽어가는 작가의 가치관이 반영된 또 다른 실재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는 이 소설을 '실패와 절망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하고 있다. 허무상을 통해 80년대와 2000년대의 사회상과 그 사회를 관통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여지없이 고발하고 있다.
80년대 열혈 청년 허무상은 전두환 군사독재에 맞서 고군분투하지만 검거와 무자비한 고문으로 인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배신자로 전락한다. 잔인한 육체의 고통 앞에 온전한 정신은 없다. 돌아갈 곳 없는 허무상은 가해자의 주선으로 일본유학을 떠나고 대학교수라는 신분으로 이 사회에 복귀한다. 그를 고문했던 김일강은 정치검사였고 수구 보수이론을 강변하는 인물이다. 그를 통해 오늘날 보수 진영의 이데올로기를 읽을 수 있고 그들이 다수 대중을 지배하는 통치 방식을 알 수 있다.
운동권 출신과 지배 계층과의 타협은 8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이루어진 386들의 정치계 입문과 우파 전향을 통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고, 실제 허무상의 고문에 의한 고발로 검거됐던 다수의 동료들은 투옥이라는 감투를 쓰고 국회의원이라는 훈장을 달고 재등장 한다. 작가는 사회를 변혁하고자 했던 그들이 도리어 사회에 의해 변화된 사실에 주목한다.
대학교수로 복귀한 허무상은 2000년대 캠퍼스를 배경으로 80년대와 다른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저항과 비판 보다 소비와 물질중심.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의 습득보다 취업에 목숨을 걸고 있는 오늘날 대학생들을 비판하고 그들의 가치관에 논쟁을 벌린다. 때론 연극대본처럼 허무상과 학생들간의 주고받는 대사는 일체의 배경과 심리표현을 제하고 뚜렷한 가치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신자유주의로 넘쳐나는 소비 지향적인 사회와 양극화의 문제, 포르노와 같은 정보 쓰레기로 넘쳐나는 인터넷의 맹독성과 대학생들의 책임없는 섹스의 문제까지 거론한다. 대학교수 허무상이 오늘날의 지식인들의 주의주장을 대변하는 양심적인 인물이라고 볼 때 다소 배신자의 낙인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변신한 개연성이 부족한 측면이 있다. 허무상은 대학생들과의 설전을 통해 청년 정신을 상실한 그들에게서 실망감을 느끼고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낸다. 사학과 교수로서 시대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그는 우울과 고립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사회 조직 속에서 실패자의 모습이었고 가정 생활 또한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결혼 생활은 사랑과 배려가 없는 기계적인 한 집 살림이었다. 결국 이혼이라는 실패의 결과만 남고 그는 방황한다.
허무상의 주변인물도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마치 처절한 절망과 패배의 경연장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
대학시절 운동권 동료였던 그이 아내는 자식을 잃은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반미치광이가 되어 결국 인도로 떠나버린다.
그의 유일한 술 친구였던 차호진 이라는 약사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의 아빠이고 이로 인해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
약국 앞에 있는 모텔보다 손님이 적은 약국에서 혼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그 또한 대학시절 사물을 두드리던 광대출신이었다. 또한 허무강의 친구는 한 때 사회 운동가로 활동하다 말기암 진단을 받고 노숙자로 전락하고 만다.
어둡고 우울한 80년대 인물들의 자화상이다.
반면 정치검사였던 김일강은 국회의원되고, 지배 세력에 투항한 동료 운동권들은 금배지를 달았으며 다른 이들은 교수가 되었다. 순수와 지조를 잃은 자는 호의호식과 성공의 명예를 얻었고, 저항과 비판의 삶을 살았던 자들은 사회의 낙오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작가는 '절망과 실패의 기록'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작가는 오늘날 사회에 등장하는 각종 병리현상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비판한다. 수구 보수 언론의 여론호도의 병폐, 특정 종교 집단의 무차별한 선교 활동, 우리 이웃에 대한 무관심, 묻지마식 이유없는 폭행과 폭력 등을 백화점식으로 보여준다.
허무상이 87년 6월 항쟁에서 경험했던 다수 대중에 대한 믿음은 오늘날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군중은 이기적이며 우매할 뿐이다. 그것은 이 소설에서 2002년 월드컵의 열기를 통해 보여준다. 수십만의 인파들이 시청광장에 모여 붉은 색으로 외쳤던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은 집단적 최면에 걸린 히스테리 현상일 뿐이며, 구조 조정 당한자, 취업 난에 빠진 청년 백수들. 하루 하루 먹기 살기 힘든 자들의 힘겨움을 풀어 헤치는 살풀이 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우매한 군중들의 열기 속에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미순이의 비명은 들을 수 가 없다.
따라서 더 이상 80년대 변혁에 대한 로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허무상은 군중에 대한 무상을 느끼고 급기야 노숙자로 전락한다.
작가의 말대로 완전히 밑바닥으로 내려가 자신의 해체한 후에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 최고의 인테리에서 노숙자로 추락한다는 설정 자체가 다소 비약적 설정이라 설득력이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가의 설정의도는 아군에 비해 적군은 강하고 우리가 뭔가 새로운 각성 속에 새로운 대오를 형성할 수 없다면 이 싸움은 계속 패배할 수 없음을 역설한지도 모른다.
결국 허무상의 모습은 소위 민주와 통일을 위해 투쟁했던 80년대 청춘들에게 고하는 죽비와 같은 역할을 한다.
당신들은 왜 그렇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한 번이라도 800일이 넘도록 남편과 자식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용산 철거민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아름다운 이 산하가 삽질과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고 있는 이 어처구니 없는 현실을 왜 묵인하고 있는 것인지.
당신들이 이룩한 민주화의 성과들이 하나둘씩 적들에 의해 파괴되고 있음을...왜 모르는지....
이토록 실용으로 포장된 경제지상주의자들의 꼬임에 빠져, 소유의 욕망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전직 운동권들에게 작가는 '허무상'을 통해 일갈한다. '당신들은 적어도 허무상이 만큼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고 살고 있는지', '당신은 허무상이처럼 자신을 버리고 밑바닥으로 내려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모든 희망을 ‘누란(楼蘭, Loulan)’처럼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2002년을 기억한다. 입시지옥에서 탈출해 처음으로 얻은 스무 살의 자유를 기억하고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의 아련한 감정을 기억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붉은 물결. 시청과 광화문 광장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던 그 뜨거웠던 군중을 기억한다.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홍위병같이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너도 나도 머리와 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짝짝짝~짝짝 박수를 쳐댔다. 독일전이 열리던 날에는 나도 그 군중 속에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텔레비전으로만 경기를 시청한 사람들보다 더욱 더 그 열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Be the Reds. 꿈은 이루어진다! 광장에 나와 있는 수십만의 사람들, 아니 대한민국 전체가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있었다.
그때 그 군중 속에 한 남자도 서 있었다. 허무성. 나이 마흔의 중년 사내. 붉은 티를 입고 태극기를 휘감고 무리 속에서 환호하는 그들과 달리 허무성 그는 내내 고독하고 쓸쓸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붉은 팥죽이 펄펄 끓는 가마솥’처럼 들끓는 군중을 그는 연방 텅 빈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것이 숭 빠져나가버린 것처럼 휑한 눈이었다. 뜨겁게 끓어대는 붉은 물결. 그의 조부모와 어린 삼촌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한 사건, 피투성이가 된 그의 아버지, 대학시절 남산 기슭의 지하실로 끌려가 개처럼 묶여 받던 잔혹한 고문…… 시뻘건 피처럼 꿈틀거리는 그 색이 그에게 다시 핏빛 기억들을 떠오르게 했다. 트라우마. 십오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 두려움의 기억. 386 운동권의 막내 학번이었던 그는 달리는 버스를 세우고 그 위에 올라가 두 팔을 불끈 쥐고 연설할 만큼 용감한 청년이었으나, 그날 지하실에서의 그 짐승 같은 시간 이후로 절망과 무력감에 휩싸이게 된다.
군중들 속에서 그가 본 것은 생각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오는 핏빛 기억들만은 아니다. 길가는 대중을 향해 힘 있게 외치던 자신의 연설을 회상했고, 최루탄 가스의 매운 연기 속에서도 어깨를 맞대고 화염병을 던지며 ‘민주’를 외치던 군중들을 떠올렸다. 십오년 전 가두투쟁에서의 군중, 그리고 2002년 그 붉은 물결의 군중. 전자는 신념과 이념을 가진 개개인의 집합으로서 군중 전체가 ‘참여자’였고 ‘자기 운명의 창시자’였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았다. ‘똑같은 표정의 얼굴 수십만 개를 가진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 ‘수십만의 촉수를 가진 거대한 해파리’. ‘지능이 낮고 영혼이 없는, 어리석은 생각의 집합’일 뿐이었다.
<누란>에서는 행복한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다들 실패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린다. 독재에 맞서 열심히 싸운 386세대 덕에 대한민국에도 자유와 민주화가 온 듯 했지만, 자유를 찾은 이들은 이전 시절을 새까맣게 잊어버렸고 신자유주의의 망령에게 영혼을 바쳤다. 사고하길 거부하고 귀찮아하며, 책을 보는 대신 텔레비전을 숭배하고 포르노를 찬양했다.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겠다는 신자유주의 망령의 꼬드김에 너도나도 소비하지 못해 안달 났으며, 성추행을 당한 여성이 쓴 호소문이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고, 길에서 죽은 노숙자가 무관심 속에 며칠씩 방치되다 쥐에게 귀를 뜯겼다. 미군 장갑차에 깔린 여중생들의 비명소리도 시청과 광화문을 가득 메운 군중들의 함성소리에 묻혀 버렸다. 신자유주의의 노예가 된 군중들 속에서 허무성도, 문정선도, 이종구도 옛 왕국 누란처럼 돼버렸다. 고비와 타클라마칸, 두 사막 사이에 한때 크게 번창했으나 모든 것이 소멸되고 죽어 모래 속에 묻혀버린, 인광이 날고 흰 뼈들이 뒹구는 곳. 누란. 십오년 전 가두투쟁을 함께 한 그들을, 신자유주의에게 점령당한 군중은 기억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야말로 새로운 파시즘이다. 세계화란 이름으로, 자본이란 이름으로 인간을 복종시킨다. 군중에게서 생각을 빼앗고 영혼을 갈취한다.
그리고 수구세력은 그런 우둔한 군중들을 이용해 다시 한 번 파콜리지(박정희주의)를 부활시키려 든다.
모든 관계를 끊고 과감하게 추락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 구조조정을 당할 게 아니라 스스로 그 구조, 그 체제에서 탈퇴하는 것이 필요했다.
시민권 포기, 서울을 버리는 것,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 다시는 재기할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느껴지지 않는 철저한 추락, 최종적인 실패자가 되기 위해서 그는 우선 이종구처럼 노숙자 생활을 경험하기로 했다. 이전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철저한 추락을 경험하지 않는 한, 새로운 변신은 불가능해 보였다.
깊은 절망과 체념, 무력감과 상실감에 사로잡힌 허무성이 택한 방법은 신자유주의의 모든 굴레를 벗어버리고 체제 밖으로 도망가는 것이었다. 처음엔 노숙자 생활로, 그리고 마침내는 지리산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조부모와 어린 삼촌이 살았을지도 모르는 그 폐가를 찾아 홀로 살아가는 것이다.
허무성이 아직 지리산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를 찾아내 말해주고 싶다. 2002년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2009년의 군중은 많이 똑똑해졌다. 6월항쟁의 뜨거운 물결 속에서의 당신과 그 동지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10년간의 자유와 권리를 다시 빼앗기고 신자유주의의 망령에게 된통 당한 군중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당신들을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지난해의 그 뜨거운 촛불집회를 당신도 보지 않았는가. 그러니 아직 포기하지 말라. 체념하지 말라. 부디 우리와 함께 해 달라. 허무성을 붙잡고 그가 흘린 눈물처럼 뜨겁게 울면서 간절하게 부탁하고 싶다.
작가의 말에서 현기영 선생이 말했다. “희망을 말하면서 낙관론을 펼치려면 나 같은 비관주의자의 목소리도 조금은 경청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비관론은 적어도 우리의 타격대상이 얼마나 완강한 철벽인가를 일깨워준다. 지피지기의 전략이 없는 싸움은 패하기 마련이 아닌가.” 물론이다. 철부지 어린애처럼 마냥 낙관적인 것 보다는 비관론이 더 현실적이고 객관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본 그 희망…… 어둠 속에서 반짝이던 작은 촛불들. 조금은 달라진 군중.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군중들.
스스로 비관주의자라 칭하는 선생께서도 부디 그 실낱같은 희망만큼은 믿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에게 386은 항상 경외의 대상이다. 그들이 제도권 밖에서 싸워 이룬 숭고한 의미와 가치들을 존경한다. 이젠 시대가 흘러 제도권 안에도 386은 많이 진출해 있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은 수많은 386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들이 이룬 것과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신문과 방송을 도배한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행적 대부분을 이해하며 경외한다. 그 이해와 경외의 전제에는 80년대로 대변되는 한국 민주주의의 격동이 있다.
80년 광주와 87년 서울에서 386이 이룬 성과는 과히 기념비적인 것이었다. 당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였던 내게 그들은 한없이 큰 존재였다. 옳은 것을 향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던 그들의 용기와 양심은 젊은 시절의 나를 변화시켰다. 오 386이여. 찬란했던 선배들이여. 이 한 사람의 '포스트386'은 비범한 386 선배들의 역동을 기억하며 감상에 젖는다.
그렇다. 내게 386은 그런 존재다. 동시에 '80년대 한국'은 항상 경외의 시대였다.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국민의 손에 가져온 시대였다. 그것이 형식에 국한된 것이라 할지라도 자유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싸워온 386과 80년대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이승만 정권을 시작으로 1차원의 선으로 늘여뜨려 보자. 한 눈으로 보자는 얘기다. 지난하고 굴곡지지 않은가. 동족상잔의 비극, 군사 쿠테타, 독재 정권, 자유의 억압, 민중의 봉기 등 참으로 고생이 많은 역사였다. 서구에서 수백년 이상 겪으면서 달성했던 것들을 한국의 현대사는 불과 50년 안에 이루었다. 그만큼 아프다. 그리고 역동적이다. 그렇기에 경외스럽다.
항상 뼈아픈 글을 쓰는 문단의 거목 현기영은 신작 『누란』을 통해 박정희 이후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우리에게는 남산의 어느 지하실에서 반인간적인 고문이 자행되었던 바로 그때 그 시절이 있었다. 한 사람의 인권이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억압되고 파괴되었던 시절이다. 소수의 죽음은 곧 다수의 삶으로 치환되었다. 개인의 자유는 국가의 통제로 조절되었다. 인간의 기본을 유지하는 그 모든 것들이 경제발전이라는 호도된 '선善'에 의해 희생되었던 바로 그 시절의 어두운 단면을 작가 현기영은 소설의 시작으로 삼는다.
허무성은 386이다. 독재 권력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던 대학생 허무성의 삶은 항상 투쟁의 연속이다. 그의 행동이 특별한 건 아니다. 보다 인간답고 보다 상식적으로 살고자 소원했던 그 시대 젊은 열정의 원형이다. 어느날 쥐도 새도 모르게 남산의 지하실로 끌려간 그는 혹독한 고문의 대가를 치룬다. 고통스럽다. 견디기 힘들다. 고문자 김일강은 허무성을 고문의 소용돌이 속에서 뺑뺑이 돌린다. 반은 죽었을 정도의 고문의 클라이맥스에서 허무성은 동료들의 이름을 불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다. 인간은 고문에 약하다. 인내는 한계가 있다. 고문은 너무 고통스럽다.
허무성의 배신은 지독한 고문이라는 타자적 의지, 즉 국가의 힘에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힌다. 허무성은 외롭다. 하지만 국가의 일에 힘을 보탵 이유로 고문자 김일강은 허무성의 앞날을 책임지는 '은혜'를 행사한다. 김일강의 배려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다. 또한 귀국 후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학 교수가 된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허무성과 김일강의 동거는 소설의 시공간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관통하는 데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참 지난한 악연이다.
이 소설은 허무성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통해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다. 현기영의 글에는 수사나 기교가 없다. 실제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묵묵히 서술할 뿐이다. 철저하게 건조한 문체로 일관한다. 또한 희망을 얘기하지 않는다. 절망과 실패라는 어두운 스케치로 허무성의 삶과 평행하는 한국의 현대사를 그리고 있다. 그렇기에 읽는이의 마음은 쓰라리다. 과연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것일까.
2002년 6월 10일 시청 앞 광장. 한국과 미국의 월드컵 16강전을 향한 예선 2차전이 열린 날이었다. 수십만의 군중이 광장을 점령했다. 현기영은 15년 전에도 수십만의 군중이 동일한 시공간을 점령했었다고 외침한다. 하지만 두 시공간에는 본질적인 괴리가 있다. 물론 진정성의 차이는 아니다. 둘 다 진정성은 있었다. 여기서 진정성은 비본질이 된다. 두 군중의 차이는 본질에서 상치된다. 내용과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축구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강렬한 쇼비니즘 젊은이들이 과연 15년 전 6월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 현기영의 무미건조한 질문은 우리 세대에게 거울을 들여다 볼 것을 주문한다.
현기영이 소설의 제목으로 선택한 '누란([樓蘭, Lou-lan)'의 의미를 사유하자. 오래전 중앙아시아 고비와 타클라마칸 두 사막 사이에 존재해 한때 크게 번창했던 누란 왕국은 황사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왜 소설가 현기영은 무겁고 굴곡진 한국의 현대사를 직선적으로 조명하면서 잊혀진 왕국 '누란'을 소설 전면에 배치한 것일까. 그것은 현기영 자신이 절망과 실패의 기록이라고 고백한 뼈아픈 '과거'의 회상과 쓰라린 '현재'의 응시를 상징화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아픈 현재상에 대한 목도를 외롭고 심각하게 토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기억될 때 빛난다. 과거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하지만 그 정지됨 자체만으로도 현재를 일깨운다. 그리고 미래를 추동한다. 인류가 위대한 것은 역사성에 있다. 역사를 통해 인과관계를 학습하는 인간의 지성은 더 좋은 미래를 진취한다. 현기영은 '작가후기'에서 이 소설을 절망과 실패에 대한 기록이라고 고백한다. 절망과 희망, 실패와 성공은 결국 시간차의 문제다. 현기영이 소설의 말미에 그린 절망적 스케치는 어쩌면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희망의 기대로 치환될 수 있다는 내밀한 역설逆說이 아닐까.
소설의 형식을 갖추었으면서도 소설처럼 쓰지 않은 현기영의 『누란』은 무겁고 건조하며 직선적이다. 사실이 가진 힘은 강력하다. 사실은 사실과 어울리는 방법으로써만이 그 힘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 사실이 픽션적 구성을 갖출 때 에너지의 양은 은밀하게 방전된다. 그렇기에 현기영은 그저 묵묵하게 직선적 서술을 고집했는지 모른다. 그 역사는 아팠기에, 위대했기에, 그리고 현재 또한 너무 아프고 쓰라리기에.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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