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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5년 10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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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수, 무게, 크기 | 720쪽 | 446g | 145*215*65mm |
90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서동욱 교수의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의 부제는 '삶의 무의미를 건너는 연습'이다. 무언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거나 특정된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다 허무하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저자의 전작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읽으며 '질문을 던지는 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면, 이번에는 그렇게 던져진 질문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으리란 기대감에 읽기 시작했다.
요컨데 우리는 존재 유지에 골몰하기에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며, 혀가 즐겁기 때문에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기에 식사는 존재 유지를 위한 노역의 일부가 아니라, 이 노역으로부터 잠시 풀려나 얻는 휴식과 쾌락이 된다. 16쪽
60분, 즉 한 시간 정도였던 점심시간이 복지가 잘 되어 있는 회사의 경우에는 그보다 30분가량 더 주어지거나, 아예 근무시간 내에 자유롭게 카페테리아를 드나들 수 있는 경우도 있다. 20여 년 전, 내가 처음 마케팅 부서 신입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그런 회사에서 근무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런 회사를 운영하고자 했던 대표님의 지원으로, 몇 차례 마케팅 세미나에 참가할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그 세미나에서 본 사무실은 책상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았다. 마치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작은 사무실을 가진 듯한 구조였고, 넓은 창을 통해 들여다본 공간은 외화 드라마 속 청소년들의 아지트처럼 꾸며져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창의적인 공간’을 재현해 둔 것 같았다. 그때 함께 세미나에 참가했던 동료와 나눈 첫 소감이 이랬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 없던 창의력도 생겨나겠네.”
그곳에는 함께 어울려 가볍게 오락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나는 저자가 말하는 ‘먹방에 심취하는 것’과 동시에 ‘홀로 식사하는 것’이 초래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근무할 때는 철저히 자신의 방 안에서 ‘고독’한 상태에 있다가, 그 문을 여는 순간 ‘더불어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 ? 이는 ‘고독’과 ‘더불어 있음’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양자를 오가는 무한한 순환 궤도가 인간의 운명이며, 이 궤도를 혹시 선순환의 고리로 만들 수 있을지 인간은 골똘히 궁리해볼 뿐(62쪽).”
그런가 하면, 당시 마케팅 업무를 배우던 나의 현재 직업은 그와 크게 관련이 없다. 물론 “마케팅과 무관한 직종은 없다”는 말이 있으니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한 기업이나 단체의 마케팅 담당자는 아니다. 문득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그 길을 계속 걸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때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면 또 어땠을까?
아니면, 애초에 내가 마케팅을 그만둔 이유가 악덕 거래사 대표 때문이었다면?
숲속의 길 가운데 하나로 들어서듯, 한 사람을 만나거나 지나치거나 하는 작은 차이가, 여러 가능 세계 가운데 하나를 우리 미래의 현실로 만든다. 29쪽
우리가 선택하는 것만 우리의 결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사소하게는 먹었던 음식이나 입었던 옷 마저도, 그런 작은 차이가 우리의 현실과 결말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될 때도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은 개개인의 독자적인 경험,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경험으로 이루어진다.'(139쪽)라고 할 수 있다.
책을 읽다보면 자주 인용되는 작품과 철학가 그리고 사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빠르게 정독하고 싶고 좀 더 깊이 마주하고 싶은 책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책의 시작부터 그리고 어느정도 나의 삶 속에 철학적 지점과 연결된 부분이 확인되어가는 지점에서 다시금 인용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무언가 앎이나 예언으로는 깨닫지 못하고 '경험'을 통해 나아가게 되는 방향이 헤겔의 <<정신현상학>>과도 이어진다. 또 그 경험을 통해 우리가 특정 경험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회피하는 것에 대해 사르트르의 글을 인용하는 다음의 부분은 책의 초반, '악'조차 다양성에 속해있다는 것이 결국 좋은 성공의 경험만으로 인생을 채울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장도리로 못을 박는 경험을 실제로 해보지 않고는 내가 장도리를 잘 다루는지, 못을 잘 박는 재주가 있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경험만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경험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즉 우리가 어떤 '유한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준다. 143쪽
책의 도입부가 '음식'과 관련한 내용이라 아주 용이하게 철학책에 빠져들었을 뿐 아니라 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삶을 잘 살기 위한'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데 역시나 좋았다. 철학자 한 사람에서 출발하는 방법도 나름의 이점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잘 버무려서 최고의 맛을 내는 추천하고 싶다.
3월 독서모임에서 읽은 서동욱 교수의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는 제목부터 의아스러웠다. 철학이 날씨를 바꾼다고? 날씨가 철학을 바꾸는 게 아니고?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세상이라지만 날씨는 아직도 바꾸는 건 고사하고 정확한 예측조차 어렵다. 물론 저자도 알고 있다. 날씨가 우리에게 영향을 주듯 생각이나 철학도 날씨가 만들어낸다는 것을. 하지만 중요한 건 종잡을 수 없는 날씨지만 내 마음은 어둠 속에서도 햇살처럼 켜져야 하며, 가뭄 속에서도 빗소리 울려 퍼지는 우산 아래의 원형 극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대비해야할 일이 날씨뿐이겠는가. 지금 맞닥뜨린 숱한 위기는 각자의 이기심으로 인해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우리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런 선문답같은 말을 들으면 철학자라 뜬구름 잡는 관념적인 이야기만 하나보다 싶지만 ‘제대로 된 질문하기’는 AI시대의 화두이기도 하다.
칸트는 유럽 근대 사상의 두 사조인 이성중심주의와 경험중심주의의 장점을 흡수하고 단점을 증발시켜 유럽 문명을 좀 더 안전한 기반 위에 올려놓은 사상가로 평가된다.
...
오늘날 사상의 역사를 돌아보는 사람들은 칸트 시대의 문제가 명확히 이성중심주의와 경험중심주의의 대립이었으며, 칸트는 이 대립을 독창적으로 해소했다고만 생각한다. 이는 이미 이루어진 역사를 뒤에서 편안히 회고하는 자의 ‘착시 현상’이다. 칸트 당대에는 당대를 진단하는 문제 틀이 수없이 많았다. 이성주의와 경험주의의 대립 같은 명확한 문제란 아무것도 없었다. 온갖 것이 부글거리는 잡탕 속에서 바로 칸트가 저 대립을 자기 시대를 대표하는 하나의 명확한 문제로 만들어낸 것이다.
(p.129)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하며 종합해낸 철학자 칸트. 인식의 형식은 본래부터 갖고 있지만 인식의 내용은 경험으로 얻는다, 등등. 어지간한 철학서라면 빠지지 않는 칸트의 비판철학이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다보니 솔직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다. 칸트가 정리해준 철학을 기반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그의 이론이 당연해 보인다는 사실, 그동안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가 살던 18세기는 무엇도 확실하지 않은 시대였다. 이런저런 주장과 학설이 오갈 뿐 그 무엇도 분명한 게 없었을 당시, 그는 자기시대를 대표하는 명확한 문제를 끄집어냈다.
칸트의 위대함은 바로 문제 자체를 창안해내는 능력이었다.
이렇게 근대의 여러 영역에서 인간은 주체라는 개념을 소유하게 되었다. 즉 만물의 근거가 되었다.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모든 능력을 동원해 세계를 인간의 계획에 맞추어 가공함으로서 이루어진다. 근대 국가란 바로 이 인간 주체의 힘을 실현하기 위한 공동체로서, 동서양의 인간들은 경쟁적으로 이 공동체를 이루려고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도련님의 시대>는 ‘혹독한 근대 및 생기 넘치는 메이지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이런 흥미로운 구절을 읽을 수 있다. “국가를 급조하느라 이 40년 동안 쌓인 피로, 그것도 알겠습니다. 일본은 많은 모순과 대면하며 잰걸음으로 걷고 있지요.” ‘국가의 급조’와 ‘잰걸음’, 이것이 주체로서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 늘 조급하고, 늘 바쁘고, 늘 경쟁하며, 늘 피로와 자연의 파괴를 끌고 다니는 근대인의 모습이다.
(p.160~161)
근대국가를 급조하느라 피로가 쌓여 수많은 모순에 직면하고 자연이 파괴되었다는 일본. 일본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우리나라를 대입 해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저자의 설명대로라면 지구 온난화, 코로나 팬데믹, 환경오염, 세대 갈등 같은 우리가 맞닥뜨린 위기의 대부분은 인간중심주의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인간이 중심이라는 생각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 외의 모든 답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보자.
이 책은 인간 중심주의가 지금도 유효하다면 우리는 아직도 근대인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숱한 물질적 발전을 이루고 말로는 근대를 과거로 치부하며 현대를 내세우지만 세계관은 여전히 근대에서 변한 게 없는 인류. 하지만 중세가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로 진화했듯 인간 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수백 년 전 새로운 학문이 ‘신’ 중심의 세상이 만든 문제를 극복하고자 ‘인간’을 전면에 내세운 근대라는 답을 내놨다면, 지금 나타나는 세상의 위기는 인간 중심주의라는 근대의 가치관을 포기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해야 해결할 수 있다는 철학자의 고언. 불편하지만 흘려버릴 수 없는 역설이다.
어떤 말은 꼭 입으로 내뱉어야만 유효해진다. ‘사랑한다’와 같은 말, ‘맹세한다’와 같은 말이 여기 속한다. 사랑은 어디 있는가? 맹세는 어디 있는가? 그것은 말 속에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 사랑을 비로소 현실로 만든다. 맹세한다는 말만이 비로소 맹세를 세상 속에 등장시킨다. 사랑한다는 말은 이미 있는 현실 속의 사랑을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을 창조해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p.200)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랑한다’는 말보다 ‘이심전심’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당연해서 말하지 않아도 내 맘 알려니 하는 생각.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자녀를 사랑하고 부모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물리법칙처럼 변치 않으니까. 그런데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까?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서운함을 불러오고 서운함이 쌓이면 오해가 되고 그러다보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철학자이면서 시인이기도 한 저자의 표현은 좀 더 섬세하고 적확하다.
‘사랑을 금덩어리로 믿고 보관해놓은 채 영영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 꺼내 보려 하면, 그것은 장롱의 나프탈렌처럼 다 녹아 사라지고 흔적도 보이지 않으리라.’
위에서 소개한 이야기 외에도 기생충, 바다, 죽음, 염세주의, 동물권, 혼밥, 쓰레기 등. 철학의 오랜 과제부터 생활의 소소한 주제까지. 저자는 이런 것도 철학이 되나 싶은 분야를 수많은 참고서적을 인용하며 다르게 사유하는 법을 제시한다.
제목부터 특별한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일상에서 문제라고 인식되지도 못한 채 굳어버린 고정관념에 균열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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