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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5년 04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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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수, 무게, 크기 | 528쪽 | 284g | 135*200*37mm |
142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우리 동네에는 지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가 있다. 아이 등하굣길에 특수학교에 가는 학생들과 보호자들을 종종 마주치곤 한다. 학생들이 오가는 길은 소란스러울 때가 많다.
언젠가 한 장애인 보호자가 했던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있다. 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유난스럽게 바라보거나 또는 안쓰럽게 보는 주변의 시선이라고. 그저 평범한 사람 대하듯 지나쳐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뒤로 길에서 조금 소란스러운 아이를 만나도 반응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간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자신을 특별한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 관심 많은 무심함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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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의 조승리 작가는 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 마사지사로 일하며 글을 쓰는 작가는, 비극적인 상황 앞에서도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는다.
제목에서 단번에 알아챌 수 있듯, 삶의 지랄맞은 순간들을 짱짱한 오기로 넘겨내는 당당함을 전하고 있다.
나는 어둠을 훑어보았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하늘을 수놓는 수백 송이의 불꽃이 궁금했다. 그러나 지금 저 불꽃을 볼 수 없다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불꽃은 더 찬란하고 빛나기 때문이었다.
...내 안에 살아 있는 별과 불꽃들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고 여전히 아름답고 생생하게 잘 있더라고, 말해야겠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가장 첫 글에 나왔던 이 문단이 책을 읽는 내내 잊히지 않았다. 가끔 눈이 흐릿하거나 뻑뻑할 때면 만약 내가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 보곤 한다. 빛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공포는 감히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작가는 10대 시절, 빛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글자들을 머릿속에 담으려 시간에 쫓기듯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읽어 내렸다고 한다.
시력을 잃은 후에도 글을 쓰고, 마사지사로 일하고, 심지어 해외여행까지 다녀온 그녀. 가혹한 어둠 속에서도 스스로 더 찬란한 불꽃을 만들어내며 삶을 가꿔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울림과 고마움을 안겨주었다.
수미씨는 장애인 자식 없어봤잖아요. 그래본 적 없으면서 희생하지 않는다고 헐뜯을 자격 있어요?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대목도 있었다. 눈을 고치겠다며 약수터의 썩은 흙탕물로 눈을 씻기거나, 절에 끌고 가 머리에 침을 맞게 하고, 장애인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부끄럽다며 오지 않았다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애인 자식을 키워보지 않은 타인들의 비난을 향해 던진 작가의 말에 일침을 맞았다. 비장애인의 시선에서는 헌신적인 부모의 모습만을 기대하게 된다. 타인의 거대한 절망과 고통의 무게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없는 삶의 현장에 직접 서보지 않고서 평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자 가이드 손은 작전을 바꿨다... 그는 사람을 헤치고 돌아와서는 가슴에 품고 온 간식거리를 우리에게 쥐여주었다.
...
"앞도 못 보면서 여길 힘들게 뭐 하러 왔누!"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걸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어렵게 여행사를 찾아내 친구들과 타이완으로 여행을 떠난 에피소드가 인상 깊었다. 볼 수 없는 작가와 친구들에게 열심히 풍경을 설명하던 가이드 손은, 이들이 기대만큼 즐거워하지 않자 이내 방법을 바꿨다. 미각으로 촉각으로 여행지를 보여주었다.
반면, 관광지에서 만난 한국인 할머니들은 앞도 못 보면서 뭐 하러 왔냐는 안타까움을 건넨다. 눈으로 보지 못한다고 해서 여행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권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똑같이 여행하고, 먹고, 사랑하고 싶은 보통의 인간이며 단지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작가의 말에, 나 역시 섣부른 동정이나 불쌍함이라는 렌즈를 벗어던지게 된다.
나는 정오의 태양이 싫었다. 태양이 가장 높을 때 내 그림자는 가장 초라하게 쪼그라들기 때문이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지랄맞은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누군가를 교훈이나 동정을 넘어 한 인간으로 바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내 삶의 불행 앞에서 유머 한 조각으로 버텨내는 당당함을 배우며 오늘도 무심한듯 등하굣길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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