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작가 출신인 유선경 작가가 사랑과 관계에 관해 적은 글을 모은 책이다. '잘 사랑하기' 위해서, '잘 관계 맺기' 위해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사람들, 사랑이 어렵고 할 때마다 서툴어 관계에서의 실수가 잦은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될 만한 이야기들이 많다. 작가의 기존 직업 탓인지 문장 스타일이 굉장히 감성적이고 시적이다. 직접 쓴 것으로 보이는 시도 군데군데 들어가 있다. 이 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
사랑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사랑과 관계라는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한 권이나 글을 썼지 싶었는데 여러 문학이나 철학자들의 이론 등에서 사랑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을 끌어와 적기도 하고, 사랑과 관련한 단어의 어원을 살피며 고찰하는 내용들도 있어 정말로 사랑, 그 자체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해 준다.
읽으면서 현재 행복하게 진행 중인 연애가 떠오르기도 했고, 과거의 실패한 연애가 떠오르기도 했다. 연애의 다양한 면면을 다루고 있기도 해, 지나간 애인이 내게 왜 그랬는지, 또 나는 지난 연애에서 왜 그랬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자 일종의 좌우명이라 할 수 있는 안창호 선생님의 '愛己愛他(애기애타)'는 진심으로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이 책에 비슷한 내용이 나와 그 부분이 가장 공감됐다. 저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먼저 아끼고 사랑하고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
작가는 자기본위가 명확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기본위'란 자신의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뜻으로, '자기중심'이나 '이기심'과는 다르다. '자기중심'은 자기 일을 '먼저' 생각하고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며, '이기심'은 자기 이익'만'을 꾀하는 마음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삶의 태도가 자기본위로 명확한 사람은 자기를 돌보고 책임지는 일에 비교적 능숙해서 타인을 대할 때 여유와 배려가 있다. 스스로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어서 타인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을 절제하고 조심한다. 또 중심을 자기에게 두었기 때문에 타인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37쪽)
"자기본위의 삶을 산다는 것은 '뭐든지 혼자서 잘해요'로 빈틈없이 튼튼하게 무장하는 게 아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파악해서 구분하는 것이고,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기꺼이 기댈 줄 아는 것이다." (95쪽)
위 문장들을 읽어 보면 자기본위가 명확한 사람은 무척 성숙하고 단단한 사람 같다. 작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 중심을 지키면서, 관계 안에서 원활히 상호작용하고, 의지할 줄 알고 또 의지할 만한 존재로 머물 줄 아는 사람 같다. 나도 자기본위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자신과 맺은 관계의 모습 그대로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내가 나를 보살피고 있다면 타인을 보살필 수 있다. 내가 나를 믿고 있다면 타인을 믿을 수 있다. 자신을 존중하고 있다면 타인을 존중할 수 있다. 또한 자신을 보살피는 사람이 타인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 (중략) 내가 나한테서 끊임없이 도망치면 타인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98~99쪽)
내 주변에서도 자신조차 자기를 포용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자꾸만 연애에 뛰어들어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맺고, 상대에게 이해와 포용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자기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남이 자길 사랑하길 바랄 수가 있지? 자기 눈에도 별로인 자신이 어찌 타인의 눈엔 매력적일 수 있나? 자기도 자기를 이해할 수 없고, 포용할 수 없고, 감싸 줄 수 없으면서, 남이 그러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스스로를 믿어 주고, 감싸 주고, 존중할 때, 타인도 자신에게 똑같은 수준의 믿음과 존중을 돌려 준다. 그때에야 비로소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낭만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도 무척 흥미로웠다. (54쪽) 내 블로그 이름에도 낭만이란 단어가 들어가듯, 나는 '낭만'이란 말을 좋아하고 자칭, 타칭 굉장한 '로맨티스트'이다. 어떤 순간에도 낭만적인 부분을 찾고, 뭐든 낭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를 즐기며, 인생을 낭만적으로 살고 싶다. 현대의 '낭만'은 로맨스를 포함한 것들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현실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이상적이고 감상적인 시선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태도와 심리, 감미롭고 감상적인 분위기를 뜻한다. 그러나 이 책에 의하면 '낭만Romance'의 기원은 중세 시대 '기사 로맨스'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에서 파생된 게 '기사도'나 '젠틀맨' 등이라 한다.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며 남성의 나르시시즘을 만족시키는 데 기능한 기사 로맨스가 낭만이란 단어의 기원이라니! 흐린 눈을 하고 싶은 내용이었다. 기원은 버리고, 현대의 의미만 취해야겠다.
'첫눈에 반하다'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 또한 흥미로웠다. (107쪽) 과학자들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첫눈에 반하는 순간은 시간으로 0.0002초라 한다. '반하다'의 옛말은 '번하다'로, '번'은 '번개', '번쩍'과 어원이 같다. 즉, '반하다'는 빛에 이끌려 홀린다는 뜻이다. 비슷한 뜻으로 프랑스에는 '벼락의 화살'이라는 말이 있다는데, 이는 큐피드의 화살이 생각나기도 한다.
연민에 관해 이야기하는 내용이 잠깐 나오는데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과 일치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가웠다. 상대가 어느 순간 짠해 보이며 연민이 들 때가 있는데, 이는 상대를 깊게 사랑할 때만 느끼는 감정이다.
"우리가 연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이유는 판단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함이다." (183쪽)
"연인 사이의 많은 갈등이 내가 상대와 같아지길 바라는 데서 비롯된다. 지나치면 상대의 행동을 조종하고 통제하는 진짜 폭력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을 뿐더러 그 행동에 반응하는 자신의 감정도 통제하기 힘들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행동뿐이다." (205쪽)
"존중하는 대화란 상대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며 맞장구를 치는 게 아니다. 상대가 말하는 동안에는 자기 관점을 내려놓고, 섣불리 예측하려 하지 말고, 판단과 평가를 유보하는 것이다." (226쪽)
위 문장들은 단순히 연인과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가족 및 친구 등 다양한 관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조언들인 것 같아 깊게 새기게 되었다.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이런 지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사랑하는 관계란 게 비단 연인 사이에만 국한되지는 않기에 확실히 여러 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연애가 어려운 사람뿐 아니라 타인과 관계 맺는 데 서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며 자기를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얻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