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표지를 넘기고 마주했던 첫 글이 너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책이다. 라는 인증글을 남기고 오래도록 그 첫번째 페이지를 바라보고 하늘을 바라보고 책을 바라보고 또 하늘을 바라보기를 수십분 이어갔다.
"다 끝난 후에도
'여전히 있다'라는 말을 허락하는 세계는
이야기와 마음뿐,
아직 여기 있다.
이야기와 마음이.
나는 여전히 사랑하면 조금 나아질 세계를 생각한다."
끝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야기속에 내 마음속에 "여전히 있다"라고 생각되는순간 지나왔던 모든 순간순간들이 순식간에 꿈틀거리며 나 여기있다고 소리치기라도 하는듯. 머리속이 가득차올랐다.
사랑의 순간들과 미움의 순간들. 나아가고했던 그 열정과 포기했던 수많은것들
실로 내생은, 내삶은 진행형이고, 이야기속에 마음속에 '여전히 있다' 지금도 여전히.
공감하지 못한다면 이렇게 더 마음을 질책해본다.
혹시 회피하고있는건 아닌지? 용기를 내지 못하는건 아닌지?
주저하고 망설이던, 포기하고 덮어두었던 내삶의 발자국을 찍지못한 수없이 많았던 망설임들에 조금의 희망을 실어볼까 하던 수십분이였다.
아름다웠다.
책은 총 5편의 이야기가 단편으로 실려있었다.
책을 시작할때의 마음과는 달리 책을 다 덮었을때는 아름다움에 슬픔이 보태어진다.
상실, 절망, 체념, 위로와 같은 조금 우울한 조그마한 슬픔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작가만의 감각으로 아름답게 쓰여져있다.
이전에 읽은 열다섯번의 밤에 "나는 외로움을 그냥 제자리에 두려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언어가 되어버렸음을 받아들인다. 다만 거기에 감각을 더하고 싶다." 라는 작가의 말이 그대로 실현되어서일까?
기억남는 한구절씩으로 이야기를 요약해본다.
첫번째, 무자비한 총격테러로 연인 이안을 잃은 이야기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무기력한 신보다 기도라고 해주겠다는 사람의 마음을 더 믿어요. 그거면 나는 다시 사람을 믿을 수있을것 같아요. "
그렇게 살아남는 사람들은 또 살아지는 남겨진 소은의 상실을 이야기하고.
두번째, 지문조차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연극배우를 꿈꾸는 세계를 바라보는 이야기'끝난 연극에 대하여'는
"그냥 다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나는 늘 나이고, 어디로 가긴 가는데 어디로 가는지 잘 모르겠고, 이게 아닌데 생각하면서도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이게 안 슬퍼요?" 라며 지금 이 눈물이 슬픔의 눈물이라면 매일이 눈물이니 지금은 절대절대 슬퍼서가 아니라 술먹고 토해서 우는 그냥 그런거라고, 추우면 나오는 눈물이라고, 그렇게 서로를 다독이는 두사람을 이야기를.
세번째, 다음달이면 77세가되는 시를 쓰는 화자가 사랑하는 이를 보내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첼시 호텔의 세번째 버전'에서는
"어쩌면 엄마 뱃속에서 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모두 이 세계의 이방인인지도 몰라. 생각해 봐. 제일 처음 눈을 떴을 때, 공간도 사람도 언어도 모든 것이 낯설었을 그 순간을, 얼마나 무서우면 그렇게 서럽게 울었을까? 탯줄이 댕강 끊어지는 순간. 엄마 몸에서 분리돼 혼자 떨어지는 그 첫 번째 고독. 그래 고독은 우리들의 운명인 게지. "라 여기며 함께 지내온 그사람과의 이야기와 그사람과의 이별을 이야기한다.
여담, 이세번째 이야기를 읽어나갈 때 마침 장소가 LP판으로 좋은 소리를 들려주던 음악감상실 안에였는데, 반복되던 레너드 코헨의 <첼시 호텔 두 번째 버전>을 신청해서 공간가득 소리를 채우고, 눈으로 쫒아읽던 이야기라 왜인지 모를 행복감이 밀려오더랬다. 한사람을 보내는 여정의 이야기가 고작 나의 귀가, 눈이 행복이 하답시고, 90분이 아닌 고작 노래 한곡만큼의 그 작별의 순간이 아름답게 보일 일인가? 임종을 함께하던 레너드 코헨의 <첼시 호텔 두 번째 버전>에서 의사가 던진" <할렐루야>가 아니고요?" 에서, 한여름의 베짱이, 레너드 코헨을 만나면 <할렐루야>보다 <첼시 호텔 두 번째 버전>이 더 좋다고 전해주라던 화자의 마지막 인사말에 흐르던 내 현실 공간 속 두번째 노래는 하필 신청하지도 않은 <할렐루야>여서 그녀에게 미안해지던 순간.
그렇게 그녀의 마지막 소절이 끝이나고, 너무 짧고 아름다운 노래가, 이야기로 남는다.
네번째, 주검이되어 국수집 벽에 적혀 얼룩이 되어서라도 남겨졌어야했던 운동권학생의 이야기와 그이야기를 듣고자란 소녀수연과 주정뱅이 아버지에게 온몸에 멍이들고, 머리가 싹둑잘린 친구 은희의 이야기가 묘하게 오버랩되며 서술된다.
얼룩으로 남겨지던 두사람의 이야기가 국수집아줌마의 입으로 전해져 얼룩이되고, 은희의이야기는 수연을 통해 전해지지만, 수연과 은희가 헤어지던 그밤. 뒤돌아선 은희가 택한 이별방식에서 보이던 그 수연의 슬픔은 그 너무 적절하게 비통하고 슬펐다. "처음부터 내가 싫었는데 같은반에 다리건너 사는 애가 나밖에 없어서 같이 다닌 것이었다고, 귀찮았는데 혼자인 내가 불쌍해서 놀아 준 것이라고, 내가 난간을 잡고 느릿느릿 다리를 건너는 꼴이 병신 같아서 싫었다고."
울음이 터진 아이들과 10초를 세던 은희. 10초 후면 모든 것이 지나갈 것이라던 은희의 말은 너무 가슴이 아렸다.
"나는 은희라는 애가 이제 우유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우유를 마실때마다 생각날것 같은 은희.. 남이 먹지않아 먹을때를 넘긴 방과후 미직한 우유를 넘겨받는것이 싫고, 진짜로 상했을거라고 먹지않았던 자존심에 나는 원래 우유가 싫다던 은희가 지금은 '깨꿋한 잔에 담긴 희고 시원한 우유'를 즐겨 마시는 성인이 되어 있었음 좋겠다.
다섯번째. 내인생의 여름이였던 세드릭, 그여름이 바다에 뛰어드는 이야기"바다에 빠지지않도록"
"슬펐던것은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이었다. 팔에 꽂은 링거 바늘과 색깔 없는 환자복, 약 냄새가 나는 병실, 그리고 삐삐거리는 기계음 같은것들, <거기에 붙들려 있던 것은 생이 아니라 죽음이었다.>"로 이야기된 할머니의 죽음에 "죽음은 땅 아래에, 땅위에는 생명이 각자의 자리를 충실히 지킨다"라는 산사람의 이야기 세드릭의 이야기가 채워진다.
이렇게 다섯편의 이야기는 모두 죽음을 이야기하고, 상실을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또하나의 공통점은 모든 이야기는 끝이 없다. 모든 이야기는 이야기속에서 그대로 끝나지않고 지속된다. 바다에 빠진 세드릭이 건져지면서, 수연이 삶이 다른누군가의 손을잡고 은희를 걱정하면서, 심지어 한사람을 떠나보면서도 '첼시호텔의 세번째 버전'이라고 이야기의 제목을 연장하는 작가의 센스로도, 연인을 보내고 또다른 삶을 이어가는, 또다른 사랑을 찾아가는 첫번째, 두번째 이야기 모두가 그러하다.
다섯편 모두 그러하다. 여전히 있다. 이야기와 마음이. 아직 여기있다. 작가는 이 다섯편으로 모두 한목소리를 낸것 같다. '사랑하면 조금 나아질 세계'를. 적어도 작가의 세계는 세계는 그러하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사랑하겠노라고.
슬픈 이야기들로 아름다움이 보인다. 희망이기 때문일까?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신유진 작가의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것이라고"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