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읽지 않은 책, 아직 가지 않은 여행을 향한 마음이 간절할 때.
어쩌면 그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겨울 일본에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카오산로드에서는 레이먼드 카버를, 폴란드 아우슈비츠에서는 귄터 그라스를, 탄자니아에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이희인 작가의 여행과 독서의 기록을 따라가보면, 어떤 공간에서 어떤 문학이 탄생했는지 또 어떤 여행에 어떤 작가의 글이 어울리는지를 알 수 있다. 여행을 앞두고 여행지에서 읽을 책을 고를 때의 설렘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직 읽지 않은 책과 아직 가지 않은 여행을 간절히 바라곤 한다. 그러나 어쩌면 오늘이라는 새로운 여행 앞에서는 모든 책이 아직 읽지 않은 책이며, 모든 여행이 가지 않은 여행이 아니던가! 그러니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도 좋고, 이미 읽었던 책이라도 상관없다. 우리가 여행자가 되었을 때,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챙겨 정말로 떠나버리면 된다. 여행은 텍스트에 새로운 느낌과 움직임을 불어넣고, 텍스트는 여행의 분위기를 바꾼다. 유기적인 순환으로부터 여행자는 행복을 마주하고, 배낭이 무거워지는 것쯤은 감수하고 책을 챙겨넣는다. 그 행복에의 간절함이 여행의 시작이며, 여행자의 독서의 첫 페이지다.
언어의 결을 따라 걸었던 여행의 날들, 그 촘촘한 기록을 새기다.
전 편 『여행자의 독서』에서 구원과 사랑, 이야기와 나를 찾아 떠나라고 말하던 작가는 두번째 이야기를 통해 ‘떠나지 말 것’을 외친다. 추억과 희망을 찾아 떠나지 말고, 낙원과 낭만을 찾아 떠나지 말라고. 그렇다면 우리의 여행이 지향해야 하는 바는 무엇이란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것인가?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까닭은 무엇을 찾기 위함, 얻기 위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추억이 서린 과거와 희망이 떠도는 미래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바로 ‘지금’이 필요한 것이고, 낙원과 낭만이라는 이상 세계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니라면, 바로 ‘여기’의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작가에게는 지금-여기에 충실한 것이 바로 여행인 셈이다. 특별한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여기에 충실하기 위해 부지런히 걷고 읽었던 것이다. 언어의 결을 따라 걸었던 날들을 『여행자의 독서-두번째 이야기』에 새겨두었다. 그 촘촘한 기록을 뒤쫓아 걸음을 옮기는 일은 지금-여기의 당신의 몫이다.
혼자가 아닌 우리의 여행, 우리의 독서
책을 읽고 여행을 하는 행위는 개인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는다. 독서를 통해 여행자는 세상을 돌아보는 시선과 시간을 얻게 된다.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저마다의 사연과 그들의 표정, 색깔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된다. 그 속에서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나 전 지구적인 차원의 고민들도 드러난다. 작가가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풀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독서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세상을 바로보기 시작한 순간, 우리의 여행과 독서는 이미 혼자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이 된다. 그 작은 ‘읽음’으로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