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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5년 05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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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수, 무게, 크기 | 224쪽 | 124*182*20mm |
| ISBN13 | 9791197221989 |
| ISBN10 | 1197221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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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사라지지 않으려는 마음의 온도 ? 김금희, 『첫 여름, 완주』를 읽고
책을 읽는다는 건 결국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그 목소리는 활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페이지를 넘기면 문장 사이로 스며드는 체온, 오래 묵힌 슬픔의 냄새, 한 문장을 쓰기까지 쏟았을 작가의 마음 속 리듬이 느껴진다. 좋은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종종 묘한 조용함 속에 잠기는데, 이야기가 아닌 ‘말하지 않은 것들’이 더 오래 남는다.
김금희의 『첫 여름, 완주』는 바로 그런 조용한 책이다. 세상의 소음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공간, 말 대신 ‘들음’으로 서로를 감싸는 여름의 저녁 같다. 화려한 묘사나 격한 긴장보다, 삶의 결을 따라 흐르는 섬세한 숨결로 이루어져 있다. 읽는 동안 언어가 아니라 ‘공기’를 읽는 기분이었다. 작가는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당신이 잃어버린 목소리를, 이제 들어도 괜찮아요.”
주인공 손열매는 성우였지만 더 이상 말을 못하는 사람이다. 잃은 건 단순한 직업적 능력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잇는 가장 깊은 통로였다. 완주로 돌아가 만나는 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말로 가리려 하지 않고, 조용한 온기로 감싸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말 대신 기다림으로, 설명 대신 동행으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느림’에 있다. 빠르게 소비되는 관계와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김금희는 서두르지 않는다. 인물들은 실수하고 멈추고 오래 망설인다. 그러나 그 느린 시간 속에서 인간의 온도는 되찾아진다. 삶은 결국 사랑과 상실, 기억과 화해를 반복하며 조용히 완주해 나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이 책은 한여름의 빛과 그림자로 보여준다.
이 작품을 읽으며 “듣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우리는 사랑을 말로 증명하려 하지만, 진짜 사랑은 귀를 기울이는 데 있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끼어들지 않고, 그의 숨결이 어디에서 떨리는지를 느끼는 일. 『첫 여름, 완주』는 그런 ‘경청의 문학’이다. 김금희는 독자에게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안의 침묵을 오래 바라보게 하고, 그 침묵 속에서 잃어버린 자기 자신을 듣게 만든다.
책을 덮은 뒤 한동안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누군가 내 안의 무너진 부분을 조용히 만져준 느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책이란 결국 사람을 듣게 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이야기의 요약이 아니라, 감정의 공명으로 남아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너무 많은 말을 주고받는 시대에 산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말보다 ‘듣는 용기’, 판단보다 ‘머무는 시선’ 아닐까. 김금희의 문학이 그랬듯 우리도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데서 출발하길 바란다. 이 책의 모든 문장들이 누군가의 마음을 살짝 어루만지는 조용한 여름의 손길이 되기를.
보는 책보다 듣는 책이 먼저 발간된다는 색다른 발상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작가의 문장과 목소리의 주인공 등 온통 궁금한 것투성이였다. '먼저' 읽고 싶다는 생각에 주문해 놓고 이런저런 개인사에 묵혀두다 먼저 읽고 뒤이어 들었다.
작가는 2009년 단편소설 <너의 도큐먼트>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산문, 소설, 장편, 중편, 단편, 연작으로 여러 작품과 젊은작가상 대상을 비롯한 아주 많은 상을 수상했지만 나는 <첫 여름, 완주>가 처음이다.
"얼마나 많은 웃음이 이 여름에 깃들어 있을까." 책날개 작가 소개 옆에 그의 필체로 된 사인이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는지 이런 여름에 얼마나 웃을 수 있는지 생각한다. 뜨거운 8월에 태어난, 난 여름이 싫다. 땀이 나지 않는 여름은 생명을 위협하니까.
와, 미치겠다. 어린 열매의 이 기멕힌 멘트에 물고 있던 커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못하고 뿜어 내버렸다. 패드 화면에 세계 지도가 흐른다. 제길! 열매에게 쫓아가 귀엽다고 볼따구니를 잡고 늘려 주고 싶을 지경이다.
아, 재밌다. 무조건 재밌다. 아직 사춘기가 오기 전, 한글을 배울 시간이 없던 팔십 세 할아버지에게 열매가 <마스크> 한 편을 통째로 보여 줄(?) 만큼 열의를 보이더니 결국 공채 성우가 되고,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가 결국 종종 나오지 않는 날이 생긴 어느 날까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냥 쫙 펼쳐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상하게도 그냥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30대가 된 열매에게 돈 빌려 증발해 버린 고수미의 이야기가 무척 안타깝고.
"보령에서 올라와 오랫동안, 대학을 졸업하면, 서른이 되면, 경력이 차면, 듬직한 안정으로 나아가리라 믿었지만 이상하게 삶은 매번 흔들렸다.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 15쪽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이란 표현에 울컥할 사람이 많겠다, 싶었다. 마치 나처럼. 대학을 졸업해도, 쉰이 한참 넘어가도, 경력을 채울 만큼 채워도 삶은 기어코 나아질 기미가 없다. 당연하지 않은, 아니 당연하면 안 되는 일상이 점점 당연해지는 게 기이해진달까.
'여름 환한 햇살을 배경으로 내리는 빗소리 같은 느낌'이란 지문을 보면서 아, 그런 느낌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한다. 후텁지근함이 피부에 내려 붙지만 살짝 시원한 바람기 같은 게 있고 또 그 사이로 따뜻함이 밀려오는 느낌일까?
문득 더위를 먹든 말든 창밖으로 돌아누워 디민 얼굴로 따뜻한 햇살을 정통으로 다 받아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게 또, 할부지와 실없는 대화에서 '얼른 늙고 싶다'라는 말 할 때 열매의 심정이 읽혀 곤란했다. 젊음이 올매나 좋은지 알면서도 시간이 삽시간에 지나버려 늙었으면 하는 마음이, 세상 어디도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지 못해 버둥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그랬다. 그럼에도 그런 모든 것들이 다 헛소리이기를 바랐다.
"그날 밤은 큰 도화지를 척척 접는 것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한 번 접었을 때 손열매는 밤의 교량을 터덜터덜 걷고 있었고 한 번 더 접자 개구리 소리가 왁왁 나는 개천을 마치 하늘을 날듯이 사뿐히 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접었을 때쯤에는 늘 보는 버스 정류장 위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목이 아플 때까지 별을 보고 있다가 손열매는 자기도 모르게 '거기 외계인이라면서요'하고 심상하게 물었다." 101쪽
마치 시간이 공간을 접어내듯 공간을 타고 넘는 열매의 얼굴이 그려져 기분이 막 좋아졌다. 완주의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어지니 말이다. 잘 정돈된 문장 사이로 자꾸 재치 넘치는 문장에 한참을 낄낄 거리게 만든다. 이런 문장력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작가도 외계인 아니삼?
당황? 허무? 허구의 세계를 동경하는 창세기 비디오 대여점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완주 매점의 공간의 의미를 알아챘어야 했나? 어쩌면 자작나무 숲속의 어저귀의 공간이었던 공소도?
어저귀 말마따나 삶은 시작과 끝을 어차피 알 수 없으니 동강난 허리통 정도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인지. 열매와 수미의 완주는 분명 희망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뭐, 그러고 보면 달리는 버스에서 졸 수 있는 열매의 시작으로 끝이 나는 걸 보면 희망일지도.
어쨌든 인간애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작가가 고맙고, 각자의 몫을 온전히 완주하길 바라는 박정민 배우의 끝인사도 뭉클했다. 이제 나는 내 몫의 완주가 무엇일까, 생각한다.
처음에 보는 세상에서 많은 부분 듣는 세상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획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애와 관련된 이야기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읽고, 듣고 나니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특정한 감각들에 머무르지 않는, 오감이 다 휘몰아치듯 즐거운 독서가 됐다. 듣는 독서의 생생함에 낭독은 쨉이 안 된다. 국립장애인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듣는 책을 볼 수 있다. 꼭 보고 듣고 하시길 추천한다.
#첫여름완주 #김금희 #무제 #서평 #책리뷰 #도서인플루언서 #한국소설 #추천소설 #듣는소설 #판타지
구매해서 완독 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영화를 빌려보던 시절이 있었다. 비디오를 빌린 뒤 케이스에서 꺼내 까만색 플라스틱 테잎을 플레이어에 넣으면 '호환, 마마' 어쩌구 하는 영상이 먼저 나왔다. 김금희 작가의 《첫 여름, 완주》를 받은 뒤 책을 꺼내는 순간, 건너뛰기도 빠른 배속도 할 수 없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다. 내게는 철길 건너의 도서&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는데 《첫 여름, 완주》에는 '창세기 비디오'가 있다.
《첫 여름, 완주》로 들어가려면 경의중앙선 열차를 타고 마을버스로 갈아탄 뒤 완평의 '완주리'로 가야 한다. 가상의 공간인 '완주'는 어쩐지 내가 아는 곳을 배경으로 한 것만 같아 경의중앙선을 타고 무작정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수미 엄마네 장의사 겸 매점 앞에 닿을 수 있을까?
성우인 '손열매'는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룸메이트 '고수미'가 돈을 빌린 후 잠수를 타자 그동안의 우울증이 더 심각해지면서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게 된다. 돈도 사라지고 사람도 사라지고 목소리도 사라진 열매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답답하기만 하다.
열매는 수미의 소식을 알 수 있을까, 빌린 돈을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수미의 고향인 완주로 향한다. 그곳에서 만난 수미 엄마는 암투병 중에도 장례지도사로 일하고 있다. 작은 시골 마을인 완주리에는 그곳의 원주민들과 이주민, 다문화 아이들, 자연 그 자체이자 사람 그대로의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어저귀'가 있다. 마을이 지니고 있는 아픔과 재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속 시끄러운 일도.
손열매 할아부지, 나 사랑을 잃었네.
할아버지 사람을 잃었어? 워떤 놈이 너를 차부렀어? 며감댕이(모가지)를 비틀어 젓갈을 당글 놈이네. 언놈이 내뺐어? 내가 그놈 앞에 나타나서 심장 마비를 걸리게 해 버릴 테니께.
손열매 사람이 아니고 사랑을 잃었다고, 사랑.
할아버지 사랑? 이, 사랑은 잃는 게 아니여. 내가 내 맘속에 지어 놓은 걸 어떻게 잃어? <212쪽>
《첫 여름, 완주》는 '듣는 소설'로 만들어졌다. 때문에 인물들 간의 대화나 화면 전환 설명 등이 더 생생하다. 책을 읽고 있는데 듣고 있는 것처럼 인물들과 장면이 활자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글을 보기 어려운 독자들을 위해 오디오북으로 먼저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점자 도서로도 만날 수 있다면 손이나 귀로 책을 읽는 분들께 더욱 좋을 것 같다.
열매는 완주에서 지내는 동안 돌아가신 할아버지 꿈을 자주 꾼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나누는 둘의 대화는 더더욱 정겹게 들렸고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관계가 참 부러웠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꿈에 출현해서 부모나 다른 가족으로부터 받지 못하고 있는 위로와 응원을 열매에게 계속 보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꽃과 나무에게 물을 주듯 할아버지는 열매에게 계속 물을 준다. 열매가 말라죽지 않고 자신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매는 순리를 거스르지 말라던 할아버지 목소리를 떠올렸다. 진짜 만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잊히지 않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가. 그때 그렇게 가 버린 뒤 할아버지는 정말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이별이 이 여름에 깃들어 있는 것일까. <136쪽>
완주리의 마을 사람들도 그러고 있는 것 아닐까? 중학생 양미와 열매가, 양미와 양미의 친구들이, 이장과 마을 사람들이, 열매와 수미 엄마가, 수미와 열매와 어저귀가, 자연과 자연이, 자연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생에 물을 주고 돌봐가며 각자의 계절을 살아낼 수 있도록, 그래서 여름이 지난 뒤 기어이 크고 작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 여름, 그리고 다가오는 또 다른 계절들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각자의 계절과 서로의 계절에 물을 줘가며 잘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외롭고 상처 난 슬픈 마음이 생긴다면 잠시 넣어둘 수 있도록, 그 마음에 바람을 쐬어주고 물을 줄 수 있도록 우리만의 '완주'를 한 군데쯤 갖고 있어도 좋겠다.
신해철 : (중략) 세상에는 드라마틱한 사고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는 사고죠. 죽음은 슬픈 거죠. 레너드 스키너드의 「심플 맨 Simple Man」으로 문을 닫겠습니다. 오늘 완평군에서 사연 보내 주신 청취자분, 이런 말 무력하게 느껴져서 그렇지만 힘내시기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몫을 또 완주해야 하니까요. <169쪽>
*이 글은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mjs0413/223859803295)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157p. 굳이 설명한다면 친교 적 조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살아 있는 것들이 살아 있는 것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그런 생명을 품은 땅이라면 살아있는 것들을 돕고 싶어 하는 마음도 내 여름 속의 그늘(음지)로부터 나올 수 있겠다. 작은 생명부터, 동물, 사람에 이르기까지. 돕고, 돌보고, 들여다볼 마음이. 그렇다면 난 여름에게 소외당하지 않고 소외시키지도(내가 여름을 안 좋아한다고 여름이 신경이나 쓰겠냐마는) 않고 서로를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의 인상이 자꾸만 크게 펼쳐져 보여서,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게 된 문장은 열매 할아버지의 말이 되었다.
123p. 여름을 왜 식히넌 겨, 여름이 여름다워야 곡식도 익고 가을, 겨울이 넉넉해지지.
순리를 거스르믄 좋을 거 읎어. 털도 내리쓸어야 빛이 나는 겨.자연-스럽다, 自然- : 꾸밈이나 억지가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데가 있거나, 본래 그대로의 특성이 있다. 순리를 거스르면 좋을 거 없다는 할아버지의 말. 털도 내리 쓸어야 빛이 난다는 말. 그냥 그 상태로 두면 좋고, 빛나고, 넉넉해진다는 말을 오래 생각했다. 돈으로 환산된 가치들과, 그것들을 향해 마음의 병을 얻어도 부단히 노력하는 청춘들(나조차도)과, 평가받는 일에 매몰되어있는 요즘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인위적으로 보인다. 직선으로, 경쟁적으로 내달려 정해진 1등이 단 한 명인 레이스보다, 동그란 원 안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나아가 모두가 1등일 수 있는 삶 속에서, 물이 흘러가야 하는 길을 그냥 아는 것처럼. 억지 없이 자연스럽게, 행복하게 우리 각자의 완주를 이뤄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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