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생전에 데이터 삭제를 의뢰하게 된 사연,남겨진 이들이 마음속에 간직한 기억,삶과 죽음, 기록과 기억을 둘러싼 휴먼 드라마“디지털 기술이 생활에 침투해 있는 지금, 개개인이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는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을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죽을 때 되도록 자신의 아름다운 것만 남기고 싶어 하지요. 유가족들도 되도록 고인의 아름다운 것만 기억하려고 할 테고요. 한편, 디지털 기기는 그러한 가치판단을 일절 하지 않고, 고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영속적으로 남겨버립니다.앞으로 디지털 기기에 남겨진 데이터를 통해, 보고 싶지 않았고 알고 싶지 않았던 고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하는 유족들도 늘어나지 않을까요? 이 소설에서는 그런 사회 사정을 배경으로, ‘고인이 죽은 후에 삭제하려고 한 자신 속의 어두운 부분을, 남겨진 사람은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마주해가는가’를 서로 다른 타입의 두 젊은이의 눈을 통해 그리고 싶었습니다.“_혼다 다카요시가 서평지 「다빈치」 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디리』 집필 의도 죽은 자의 ‘기록’과 남겨진 자의 ‘기억’을 둘러싼반전과 전율의 미스터리마시바 유타로가 ‘dele. LIFE’라는 이름의 살풍경한 사무소에 발을 들인 지 3개월. 소장이자 유일한 동료인 사카가미 케이시에 따르면, 이 사무소는 죽은 후에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데이터를 당사자 대신에 디지털 기기에서 지워주는 일을 한다.케이시가 ‘모구라’라고 부르는 노트북이 의뢰인이 위탁한 데이터와 연결되어 있으며, 의뢰인의 디지털 기기가 지정된 시간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이 모구라에 신호가 오면서 사무소의 업무가 시작된다. 신입인 유타로가 직접 발로 뛰며 의뢰인의 사망 여부, 데이터의 존재와 위치 등을 확인하고, 그런 후에야 소장인 케이시가 원격으로 데이터를 삭제한다. 한편, 케이시의 누나 사카가미 마이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변호사사무소를 같은 건물에서 운영하며, ‘dele. LIFE’와 업무제휴를 하고 ‘dele. LIFE’의 신용을 보증해주는 역할도 해주고 있다.별다른 감정이입 없이 담담하게 의뢰를 수행하는 케이시와는 달리, 유타로는 석연치 않은 의문을 느낀다. 사기죄의 증거, 숨겨둔 애인으로 보이는 이성의 사진, 은닉한 돈 등 지워야 할 데이터들은 무언가 중대한 비밀을 품고 있기에 아무도 모르게 없애버려도 될지 망설여진다. 의뢰인의 비밀을 들여다보게 된 두 사람은 차례로 사건에 휘말리면서 데이터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세상을 떠난 자의 ‘기록’과 세상에 남겨진 자의 ‘기억’, 거기에 숨겨진 수수께끼와 진상, 간절한 생각이란 어떤 것일까.고인이 남긴 데이터를 바탕으로 밝혀낸 진실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고, 묵직한 감동과 여운을 느끼게 한다. 이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과연 내가 죽게 된다면 어떤 기록을 남기고 어떤 기록을 지우고 싶을지, 어떤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어떤 기억을 잊어버리고 싶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는 결국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로 이어질 것이다.소장 케이시와 신입사원 유타로두 사람의 절묘한 콤비 플레이의뢰인의 요청에 별다른 동요 없이 데이터를 삭제하는 소장 케이시는 냉정하고 정적인 두뇌 활동가 타입으로, 갖가지 기록과 정보를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휠체어를 타야 하지만 운동신경이 뛰어나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직원 유타로는 직접 발로 뛰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활동가 타입으로, 체험을 통해 얻은 정보들로 비밀에 다가간다. 고인이 삭제를 의뢰한 데이터를 내용 확인도 하지 않고 없애버리는 데 불편함을 느끼며 고인, 고인의 지인들의 사연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차갑고 무뚝뚝해 보이는 케이시에게서 인간적인 일면이, 단순하고 쾌활한 유타로에게서 어두운 과거와 우울한 면모가 점점 드러난다. 두 사람은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면서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조금씩 감화되어간다. 이렇듯 의외성 있고 입체적인 인물 묘사가 이 소설에 매력을 더해주며, 상반되는 두 인물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내며 임무를 수행해나가는 모습도 흥미를 북돋는다.미디어믹스의 성공 사례소설 『디리』와 드라마 〈디리〉이 소설과 주요 인물 및 설정이 같은 드라마는 2018년 7월 27일부터 9월 14일까지 총 8부작으로 TV 아사히에서 금요일 심야 시간대에 방영되었다. 호화 캐스팅과 배우들의 호연, 비밀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연출, OST가 잘 어우러져 영화라고 해도 손색 없는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원작자인 혼다 다카요시가 원안과 각본(1, 5, 8화)을 맡았다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그의 오랜 친구로, 소설가의 길로 이끈 동료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Go』 『플라이 대디 플라이』로 유명한 재일교포 소설가 가네시로 가즈키가 이 프로젝트의 기획과 6화 각본 및 액션 감수를 맡은 것도 화제였다.일본 드라마나 영화를 접해온 사람이라면 낯익을, 연기력이 뛰어난 야마다 다카유키(드라마 〈백야행〉 〈사채꾼 우시지마〉, 영화 〈크로우즈 제로〉 등 출연), 스다 마사키(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 영화 〈기린의 날개〉 〈은혼 1·2〉 등 출연), 아소 구미코(드라마 〈시효경찰〉, 영화 〈간장선생〉 〈인스턴트 늪〉 등 출연)가 각각 사카가미 케이시, 마시바 유타로, 사카가미 마이 역을 맡았다. 기본 설정과 주요 등장인물은 같으나 내용 전개는 소설과 다르다는 점이 특이한데,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각기 다른 내용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는 평이 많다. 애초에 영상화는 물론, 두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배우의 이미지까지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 원작자가 드라마에 직접 관여했고 둘 다 호평받았다는 점에서 미디어믹스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방영 후에는 2018 갤럭시 드라마 부문 우수상, MIPCOM 바이어즈 어워드 일본 드라마 부문 그랑프리, 2018 제13회 컨피던스 드라마 어워드 주연남우상(야마다 다카유키, 스다 마사키 공동 수상), 제98회 더 텔레비전 드라마 아카데미 감독상, 2019 도쿄 드라마 어워드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꾸준히 좋은 평가를 받으며 화제작으로 자리를 잡았다.드라마를 보고 관심이 생겨서 소설을 읽게 되었다는 독자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소설과 드라마 모두 속편이 나오길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드라마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유타로의 사생활, 고양이 다마 씨와 여동생 린의 친구 하루나가 소설에는 자주 등장해 흥미로웠다는 의견도 있다. 이 소설 속에는 여러 차례 언급되면서도 미처 풀리지 못한 수수께끼들이 남아 있어,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부풀게 하고 있다.오늘날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디지털 단말기에는, 그것을 소지한 사람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후에 남기고 싶지 않은 데이터는 분명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에게는 정말이지 알고 싶지 않았을 내용을 담은 데이터도 있을 것이다. 모르고 지워버려야 했을 ‘기록’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되는 일도 확실히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부드러운 감회가 가슴에 남는다.엔터테인먼트적인 힘이 발군인 『스트레이어즈 크로니클』이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가족 소설 『굿 올드 보이즈』 등 근래에 발표한 소설들을 읽는 기분과는 조금 다르게,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되묻는 『미싱』으로부터 이어진 데뷔 당시의 작품을 상기시킬 수 있지만, 보다 깊은 맛이 더해졌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으면서, 죽음에 정면으로 맞서 살아갈 각오를 촉구하는 이야기다._후지타 가오리(서평가), 문예지 「책의 여행자本の旅人」 2017년 7월호이 작품은 『미싱』 『모먼트』 등을 통해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그려온 저자의 새로운 대표작이다. 이 책과 관련하여 영상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디지털 기술로 야기되는 현대적 문제와 삶과 죽음이라는 보편적 주제가 교차하는 이 책.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꼭 확인해보기 바란다._「다빈치」 웹사이트 2017년 11월 12일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