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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발행일 | 2018년 08월 28일 |
|---|---|
| 쪽수, 무게, 크기 | 351쪽 | 534g | 138*204*30mm |
| ISBN13 | 9788955611397 |
| ISBN10 | 8955611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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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여정 저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를 발견한 순간, 작년 런던 여행의 한 장면이 퍼뜩 떠올랐다. '테이트 모던을 방문하고 서더크 다리를 걸어 더 시티로 들어간 다음, 모뉴먼트 역 앞 런던 대화재 모뉴먼트를 잠시 보고 워키토키 빌딩으로 간다'라는 여정상 ‘테이트 모던’ 바로 옆에 위치한 '글로브극장'을 지나게 되었다. 영문학 전공자로서 최소한 셰익스피어는 알고 있고, 런던 애정자로서 이 극장이 인기있는 명소라는 점 또한 알고 있어 잠시 극장 앞을 오가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뒤돌아서는 순간, ‘왜 셰익스피어를 잊고 있었지라는 질문이 떠오르며 번갯불이 내 머리에 일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와 묘소가 있는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을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런던과 셰익스피어를 직결시켜 본 적은 없지 않았던가! 셰익스피어의 주 활동 무대가 런던이었으니 그의 흔적도 꽤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말이다. 해마다 런던을 찾고자 하고 찾을 때마다 나만의 방식으로 런던을 더 깊고 넓게 알아가자고 맹세해 온 나, 런던을 만나는 또 하나의 매력적인 방법 즉, '셰익스피어 따라 걷기'를 생각해 낸 황홀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라니? 이미 누군가가 이 멋진 방식으로 런던을 걸어 다녀봤다는 말 아닌가? 굳게 믿고 있었던 나만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물가버린 셈이다. 그러나, 아쉽지 않았다. 말로는 ‘셰익스피어의 런던’을 여행해보리라 결심했지만, 내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대형 프로젝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가 이렇게 세상에 나와 있다는 것은 나의 런던 여행을 위해 믿을만한 선배 또는 선생을 만난 '축복'과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는 황홀하다. 이제껏 수십 권의 런던 여행서를 읽었지만, 이토록 런던에 대한 설렘의 광풍을 휘몰아쳐온 이야기를 만난 적이 없다. 런던을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고, 런던을 알려면 영국의 역사부터 알아야 겠다고 영국 역사서를 여러 권 사들였지만, 그 방대함과 복잡함에 중도에 덮어 버렸고, 정리까지 해가며 읽은 내용조차 낯설었던 나의 런던 읽기 흑역사에 서광을 비쳐준 책이다. 우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들이 이 책의 1장에서부터 등장한다. 세인트폴 대성당-피터스 힐-밀레니엄 브리지-테이트 모던을 잇는 행로와 이 각각의 장소는 언제나 생생하게 내 눈앞에 그려진다. 작년에 나도 걸었던 서더크 지역이 셰익스피어의 첫 활동 무대인데다가 런던 극장 역사의 핵심 장소였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니, 나의 추억이 런던의 과거와 맞물리며 더욱 소중해진다. 또한, 이 장소들에 대해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너무 많기에 다음 런던 방문 때는 아예 숙소를 이 지역에 정해 이 책에서 저자가 걸은대로 내 발로 다녀보겠다고 결심한다. 골목골목마다 굉장한 스토리를 품고 있고, 이 스토리에는 셰익스피어를 출발점으로 하여 이름 없는 여관 주인부터 출판업자를 비롯하여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 정치사상가들, 국왕들이 씨실 날실로 엮여져 있다. 이 장소들과 인물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시속에서 상상력과 어휘력의 날개를 달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의 '나'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단순히 눈으로만 읽을 수 없다. 중요한 곳에 밑줄을 긋고 별을 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단 구글맵을 켜고 런던 전도를 편다. 이 책도 각 장마다 걷게 될 장소들을 짚어주는 한 컷의 지도가 있다. 그러나, 읽으면서 다시 앞으로 돌아와 지도를 확인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고, 내 손으로 직접 책의 행로를 따라가보는 즐거움이 크다. 런던 전도에서 한 번 더 위치를 파악하며 런던 전체에서 어디쯤인가를 확인해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서더크 브리지와 클링크 감옥박물관 사이에 위치한 레스토랑 겸 펍 ‘앵커 뱅크사이드’의 위치를 찾았다. 8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기위해 300억원을 들여 재건축한 곳, 게다가 템즈강의 뷰가 정말 멋있다니, 나의 런던 여행의 하루도 이곳에서 마무리하리라!

2장에서는 ‘쇼디치’를 새롭게 알게 된다. 설익은 정보로 인해 런던의 어두운 동네라 생각되어 런던을 아무리 자주 가도 웬만하면 이곳에는 갈 일이 없을 것 같았던 쇼디치. 이 책에서 걷는 쇼디치는 예술가들의 아지트이자 브릭 레인의 붉은 벽돌로 지은 '트루먼 브루어리'가 들려주는 낭만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곳이다. 물만난 물고기처럼 팔딱이며 생기를 불어내는 런던너들을 마추칠 것 같다. 레드 처치 스트리트에 즐비한 갤러리와 레스토랑에 들러 보고, 세인트 레오나드 쇼디치 교회에서 울러퍼지는 종소리를 들어보고 싶다.

3장은 홀본 지역이다. 한식당 '아사달'과 '김치'가 있고, 대영박물관이 있어 몇 번 들른 곳이지만, 이 책의 포커스는 전혀 다른 방향이다. 종일 관광객으로 붐비고 ‘대영’이라는 식민지배 시절이름에 어울리는 '남의 나라' 전시물들 때문에 영 찜찜한 ‘영국 박물관’보다 이 책이 안내하는 엘리자베스 1세의 스캔들이 배경이 되는 골목길, 포카혼타스의 전설이 툭 튀어나오는 ‘세인트 세풀처 교회’가 더 끌린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에 영감을 준 신부 존던의 시 한 편, 마지막 밤을 하이디 파크에서 장식하는 것으로 유명한 BBC 프롬스의 창시자 헨리 우드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걷지 못한 홀본의 구석구석이 너무 궁금해진다.

4장도 홀본 지역과 멀지 않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탄생 이야기가 나오더니, 셰익스피어와의 범상치 않은 관계라고 의심받아 지금까지도 가십의 주인공이 되고 있는 ‘사우스샘프턴 백작’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정말 소설 같은 실화 속을 걷게 된다. ‘스테이플인’의 멋진 정원과 찰스디킨스 원작 영화 <위대한 유산>으로 흘러들어가다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스캔들과 아일랜드와의 전쟁 이야기와 겹쳐진다. 곧 ‘링컨스 인’으로 가서 리처드 3세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로 이어지는 보스워스 전투를 들려주고, 도서관을 거쳐 ‘링컨스 인 필즈’의 탁 트인 공간으로 안내한다. 이곳에서 영국 건축의 아버지 ‘이니고 존스’의 팔라디오풍 건축 얘기를 듣다가 바로 맞은편 거리의 ‘존 손 경 박물관’으로 걸음을 옮겨간다. 박물관의 설립 배경과 과정에 이어 관람법과 전시물 소개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설명이 가득하여 꼭 이 박물관을 찾아보겠다는 소원을 갖게 한다.

마지막 5장의 핵심은 ‘바비칸 센터’와 ‘세인트폴 대성당’이다. 올드 스트리트역에서 내려 유유히 걸어가는 거리마다 이야기가 넘치고, ‘바비칸 센터’와 관련된 2차 세계대전, 르 코르뷔지에, 로열셰익스피어 컴퍼니 등의 사건과 인물들이 이곳에 대한 호기심에 불을 지핀다다. 센터의 아트 갤러리와 예술서적이 가득한 도서관을 들렀다가 센터 내의 또 다른 명소인 카페 ‘레이크사이드 테라스’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먹는 시간을 꿈꾸게 된다. 최종 행로를 따라나선다. 더 시티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뱅크 역에서 세인트폴로 걷는 길이다. 세인트폴의 푸른 돔에 영향을 준 '세인트 스테판 월브룩 교회', 셰익스피어의 흉상이 있는 '세인트메리알더맨버리 가든', 런던 토박이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종소리를 울리는 '세인트 메리 르 보우 교회' 등 처음 들어보는 장소들 모두 동화같은 이야기의 무대이다. 작년 더 시티 한복판을 걷다가 내 귀에 들려왔던 그 종소리가 이 ‘보우 벨’이었던가? 퇴근 차량과 자전거 행렬이 점점 늘어나며 하루를 정리하는 부산함에 들뜬 더 시티, 그때 갑자기 고층건물 사이에서 퍼져 나오며 깊은 여운을 퍼트리던 그 종소리,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이 청아한 종소리에 감겨드는 런던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우아하고 신비로웠다. 이제 마지막으로 세인트폴 대성당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피터스힐’을 걸으며 성당에 다가간다. 세인트폴 대성당의 계단 259개를 걸어 위스퍼링 갤러리와 스톤 갤러리를 통과, 최상층인 골든 갤러리에 올라선다. 잿빛 구름 아래로 조용히 잠겨든 런던전경을 바라보며 셰익스피어의 발자취와 저자가 함께 걸었던 골목들을 되짚어 본다.

이렇게<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에 몰입하여 셰익스피어처럼 이리저리 구석구석 누비고 나니, 내가 알고 있는 런던 이외에 내가 알고 싶은 런던이 하나 더 생겼다. 셰익스피어의 발걸음을 쫓아다니는 장소들을 통해 런던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런던의 역사, 예술, 경제 등이 촘촘하게 엮어지며 런던의 과거와 현재를 좌우하고 형성해 온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을 만난다. 여기에는 셰익스피어의 인생이 있고 문학이 있다. 그리고, 이 남의 나라 영국, 남의 도시 런던의 이야기 속으로, 여행자로서 이곳에 발을 들여 보았고 이곳을 수십 년 동안 좋아해온 ‘나’의 이야기가 녹아든다.
이 책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소리내어 읽어 본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군요.
I long to hear the story of yourlife' <템페스트> 5막 1장
나를 향한 런던의 ‘부름'처럼 들린다. <셰익스피어처럼 걸었다>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어 오며 내 안에 차곡히 쌓인 지식과 감흥은 나의 오감에 스며들었다. 책을 따라 걸으며 적어 둔 노트는 이제 나의 런던 여행을 위한 동반자이다. 따라서, 셰익스피어처럼 런던을 걸어보며 ‘나의 이야기’에 스스로 귀 기울여볼 준비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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