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걸어온 사람이 남긴 발자국 같은 책
나는 박진이를 처음 만난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1990년 봄, 나는 그해 입직한 신임 경호관들의 훈육관으로 임명되었다. 훈육관이란 단순히 훈련을 감독하는 자리가 아니다. 한 기수의 경호관들이 평생 지고 갈 자세와 가치관, 그리고 사람됨을 함께 빚어가는 자리다. 그래서 훈육관은 교관이기 이전에 관찰자다. 말보다 눈빛을 읽고, 성적보다 태도를 본다. 나는 그 기수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중에 박진이가 있었다. 그는 질문하는 경호관이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가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은 없겠습니까?”를 묻는 사람이었다. 극한의 훈련 속에서도 다음 상황을 읽으려 했고, 한계 앞에서도 임무를 먼저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 세월이 그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그 후로 세월이 흘렀다. 그가 대통령의 등 뒤 1미터를 29년 동안 지켜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 봄날 훈련장에서 보았던 눈빛을 떠올렸다. 모스크바의 공항에서, 베를린의 새벽 철문 앞에서, 평양의 군중 속에서. 매 순간 그가 선택한 것은 화려함이 아닌 완벽함이었다. 대통령의 안위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격과 역사의 기록까지 지켜낸 자리였다. 그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그 눈빛이 말해주었던 대로, 한 걸음씩 단 한 번도 흐트러짐 없이 쌓아온 것이었다.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
경호실에는 말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현장에서 겪은 일을 밖에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땀과 긴장으로 버텨낸 순간들을 자랑하지 않는다. 임무가 끝나면 말없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온 방식이었고,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박진이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책을 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낯설었다. 그런데 책을 받아 들고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나는 그 낯섦이 기우였음을 알았다.
박진이는 침묵을 깼다. 그러나 함부로 깬 것이 아니었다. 29년 동안 지켜온 사선 위에서 몸으로 배운 것들을, 이제는 세상과 나누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경호관의 침묵이 미덕인 시간이 있고, 그 침묵이 말이 되어야 할 시간이 있다. 그는 지금이 바로 그 시간임을 알았던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생각했다. 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선 위에서 어떻게 두려움을 밟고, 원칙을 지키고, 사람을 지켰는가에 대한 기록. 그리고 그 기록은 경호관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직함이 무엇이든, 자리가 어디든, 자신의 사선 위에서 묵묵히 버텨온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조용히 말을 건넨다. 당신이 지키는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나는 한때 조직에서 그보다 앞서 걸었다. 그런데 이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오래 걸어온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발자국이 여기 있다고. 대통령의 등 뒤 1미터에서 쌓아온 그 발자국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세상의 등 뒤를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 염상국 (前 13대 대통령경호실장)
‘안전’이라는 가치를 알려주는 책
대한민국의 안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가 지키고 있기에 가능하다.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공직에 있는 동안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실감한 적이 얼마나 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 책이 그 질문을 던졌다. 박진이는 대통령의 등 뒤 1미터를 29년 9개월 동안 지킨 사람이다. 그 자리는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는다. 카메라 앵글 밖이고, 스포트라이트 밖이고, 박수 밖이다. 그러나 그 자리가 없었다면 역사의 수많은 장면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지 모른다.
안전의 무게감
철도청장과 건설교통부 차관을 지내면서 나는 ‘안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절감했다. 하루에도 수백만 명이 철길 위를 달린다.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은 시스템이고, 그 시스템에 혼을 불어넣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박진이가 SR 상임감사로서 보여준 행보가 내 눈에 유독 선명하게 들어온 것은 그 때문이었다. 대통령의 등 뒤를 지키던 사람이 이제는 국민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자리가 달라졌어도 그의 눈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같았다. 사람의 안전, 그것이 전부였다.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안전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깊은 헌신 위에 서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기록이다. 오랜 공직 생활을 통해 수많은 현장을 걸어온 사람으로서, 이런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이 반갑고 고맙다.
- 김세호 (前 10대 건설교통부 차관 · 前 23대 철도청장)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책
대표이사와 상임감사. 조직 안에서 이 두 자리는 때로 긴장 관계로 묘사된다. 대표는 앞으로 나아가려 하고, 감사는 그 길을 점검한다. 어떤 조직에서는 그 긴장이 갈등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박진이 감사와 나는 달랐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나는 조직을 앞으로 달리게 하는 사람이었고, 그는 그 달리는 길에 틈이 없도록 레일을 정비하는 사람이었다. 서로의 역할이 달랐지만, 우리가 지키려는 것은 하나였다. SR이라는 조직, 그리고 그 조직을 믿고 타는 2,400만 명의 국민이었다.
위기를 다룰 줄 아는 사람
그와 함께 일하면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29년 9개월 동안 대통령의 등 뒤를 지켜온 사람은 조직의 등 뒤도 같은 방식으로 지킨다는 것을 알았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드러나지 않았지만 빈틈이 없었다. 위기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무너지는 것임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래서 그는 규정집보다 먼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대표이사로서 나는 그런 상임감사가 곁에 있다는 것이 든든했다. 내가 앞을 볼 때 그는 옆과 뒤를 보았다. 내가 속력을 낼 때 그는 방향을 점검했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한 방식이었고, 그 방식이 SR을 지탱하는 힘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와 함께했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렸다. 한 조직을 함께 이끌었던 동료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이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 진심으로 기쁘고 고맙다.
- 이종국 (前 ㈜SR 4대 대표이사)
조용하게 빛나는 책
배우는 사람을 읽는 직업이다. 수십 년간 수많은 인물을 연기하면서 나는 한 가지를 배웠다. 진짜 이야기는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조명이 꺼진 무대 뒤, 카메라가 돌지 않는 순간, 그곳에서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이 드러난다.
든든하고 고요한
진이는 나의 오랜 동생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화려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자리를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으면 이상하게 든든했다. 함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고, 세상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이 사람이 특별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갔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완전히 이해했다. 그것이 30년 동안 대통령의 등 뒤를 지켜온 사람이 가진 고유한 무게라는 것을 알았다.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대통령을 향했다. 카메라는 역사의 장면을 담았다. 그러나 그 모든 빛의 1미터 뒤에서, 한 사람이 말없이 서 있었다. 드러나지 않기 위해 애쓰고, 기억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존재를 지우는 것이 곧 완벽함이 되었던 자리인 것 같다.
배우로서 나는 그런 삶을 과연 연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연기는 결국 보여주는 것이지만, 진이의 삶은 철저히 감추는 것이었으니까.
드러나지 않아야 빛나는 삶
오래 알아 온 사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글자 너머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행간에서 그 사람의 표정이 보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내가 아는 그 사람, 말보다 침묵이 많고 드러내기보다 감추기를 택하는 그 동생이 선명하게 보였다.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아야 빛나는 삶이 있다. 진짜 이야기는 언제나 가장 조용한 곳에서 나온다. 이 책이 그 증거다.
오랜 동생에게, 수고했다고 전하고 싶다.
- 박상원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