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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5년 10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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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 쪽수, 무게, 크기 | 88쪽 | 178g | 128*188*12mm |
| ISBN13 | 9788937446214 |
| ISBN10 | 8937446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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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예리함이 저녁숲속으로 깊게 파고드는 석양처럼 빛나는 작품이다. 물론 이렇게 종합하는 것은 작품이 내 기호와 결이 맞기 때문이지만, 다수 독자의 객관적 시선으로도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주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저자가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열리는 ‘에드워드 사이드 추모강연’의 발표를 맡아 연단에 올랐을 때 선보인 강연록을 묶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저자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텍스트의 시작: 의도와 방법(Begginnings: Intention and Method)』에 나오는 전환점에 관한 내용을, 세계적 맥락에서 변화하는 팔레스타인의 투쟁이라는 서사 형태와 연관지어 서술해나간다. 저자는 책에서 전환점을 ‘인지’와 교차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비로소 사태의 진실을 깨닫는 순간인 아나그노리시스, 갑작스럽고 심오한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하는 에피파니 용어까지 동원하여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지의 전환점이 독자에게 에피파니처럼 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팔레스타인이라는 타자성에 대한 억지 수용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자기 안의 낯익은 무지와 무감각이 낯선 타자가 되게 하여 외부로 추방할 수 없게 된 그 타자성을 수용함으로써 에피파니가 도래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둘 사이의 거리를 마비된 무감각이 아니라 자기 고통의 또 다른 요소로서 경험한다는 것은 얼마나 순수한 관계인가? 지금 벌어지는 학살은 애도의 여지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애도에는 '그 이후'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오직 반복되는 충격과 조수(潮水)처럼 들고나는 슬픔밖에 없다. 학살 현장이 아닌 멀리서 지켜보는 우리는 그 같은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애써 거리를 둠으로써 스스로를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가? 이 시점에 인간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고통 속에 머문다는 뜻이다. 계속 거기에 머물도록 하자. 그곳에서야말로 더욱 정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 66쪽.
이 책을 읽고 난 뒤 저자가 말하는 전환점에 해당하는 내 개인적 에피파니는 내 무관심과 무감각 너머에서 배회하던 팔레스타인에 대한 문제가 인간의 문제로 전회하여 천둥소리와 번개의 번쩍임처럼 내 의식 안으로 들어온 일이었다. 말하자면 나는 책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 아니라, 불의를 멸하려는 정의로 이글거리는 저자의 가슴 용광로 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기분이었다.
한편 이 책은 장차 소설가가 되려는 사람이나, 현재 소설가인 사람에게나, 그리고 일반 독자에게나 전방위적으로 유용한 관점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소설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 나 아닌 누군가의 경험에 관해 생각하는 ‘집중된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다. 이때 소설은 상상력을 통한 참여를 요구하고, 또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비춰 줄 수도 있다. 소설은 세상을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서사 형식을 활용하고 경험하고자 하는 인간 충동의 지속적 표현이다.> - 16쪽.
<우리가 소설에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는 계시나 계몽이 아니라, 지식이 닿을 수 없는 한계를 노출하는 것이다.> - 52쪽.
<서사라는 형식이 우리를 위로하고 장차 노력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도해 줄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인간의 자유’라는 아직 끝나지 않은 기획의 지평에서 타자의 빛이 나타나는 순간에, 스스로 형태를 바꾸고 중심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 63쪽.
독자로서 나는 모름지기 작가란 누구도 갖지 않은 개인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와 같은 관점으로 작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그와 같은 작품을 선호한다. 그래서 그런 작품을 만날 때 독서의 기쁨을 크게 느끼는데, 이 작품이 내 생각과 기대에 값하고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즐거움은 나는 존엄한 존재인가를 자문할 때 그것은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온 타자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때 가능한 인지가 될 것이라는 미래지향적 기다림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작품은 집중하여 읽으면 두 시간 안에 독파할 수 있는 짧은 강연집이다. 그러나 그 여운은 텍스트 없이 혼자서 스스로 페이지를 넘겨가면서 벽돌 책인 듯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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