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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1년 0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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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8쪽 | 272g | 145*210*20mm |
ISBN13 | 9788936433857 |
ISBN10 | 89364338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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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오래 전 한 해 정도 바다 건너 두루 다닌 적이 있다. 필리핀이나 태국 같은 아시아 나라를 여행할 때는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코리아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알아 들어 큰 불편이 없었다.
하지만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는 좀 달랐다. 코리아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88 올림픽을 치른 나라라고 하거나, 중국 또는 일본 옆에 있다고 해야 겨우 한국의 존재를 이해해 주었다. 그때 국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오늘 좀 거북한 소설을 한 권 읽었다. 버림받은 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살기 위해 나라를 버린 한 젊은 남자의 얘기를 다룬 책이다. 제목은 ‘로기완을 만났다’. 1976년 생 작가 조해진이 쓴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로기완이라는 탈북자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방송 작가인 화자가 로기완의 탈북 여정을 일지 형식으로 그렸다. 로기완은 스무살에 어머니와 함께 탈북에 성공해 중국에 머무른다. 어머니는 낮에는 가사 도우미로, 저녁에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며 돈을 번다. 아들 로기완은 공안 눈 때문에 아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기완의 어머니가 노래방 일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불법체류자였던 로기완은 어머니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로기완의 앞날을 염려한 외가 쪽 친척이 제안을 하나 했다. 어머니 시신을 기증하면 유럽에 갈 수 있는 노자를 만들 수 있다는.
로기완은 어머니 시신 값으로 벨기에 브뤼쎌에 밀입한다. 브로커에게 준 돈을 뺀 나머지는 고작 650 유로. 그는 그 돈으로 난민 인정을 받을 때까지 버틴다. 애써 찾아간 한국 대사관에서 버림 받은 그는 고아로 몰려 기관에 보내진다. 160센치미터도 채 안되는 그의 왜소한 체격이 그를 갈 곳 없는 고아로 보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난민 자격을 인정받는다. 거기에는 말 없이 도와준 ‘박’이라는, 사랑하는 아내의 고통(간암 말기 환자)을 눈 뜨고 볼 수 없어 안락사를 방조한, 의사가 있었다. 2년 만에 난민 자격을 취득한 로기완은 식당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그러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는 필리핀 출신 불법체류자 라이카. 하지만 사랑의 기쁨도 잠시였다. 경찰에 쫒긴 라이카는 화물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영국 런던으로 떠난다.
얼마 후, 로이완도 런던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물론 불법 체류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벨기에에서 얻은 합법적인 난민 체류 자격을 사랑과 바꾼 셈이다. 하지만 사랑은, 로이완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 가치였다. 조국을 등진 한 젊은 영혼의 애잔한 삶을 그렇게라도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오래 전 내 모습이 반추되었다. 로기완의 처지까지는 아니었지만 내 조국을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던 스물다섯 해 전이 떠올라서였다. 사반 세기가 지난 오늘, 북조선의 한 젊은이가 세상에서 그렇게 버림받으면서도 엉버티며 살아내는 모습에서 진한 비감을 느꼈다.
로기완은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습니다.”
조해진은 이 글을 쓰기 위해 벨기에 브뤼쎌과 영국 런던을 다녀온 것 같다. 작가 후기를 보면 조해진은 어느 날 시사잡지에 실린 기사를 읽고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벨기에를 떠도는 탈북인들에 대한 기사였다.
한 영혼에 대한 애착이 이 소설을 만들었다고 나는 믿는다. 2010년 12월 7일 화요일부터 2010년 12월 30일 목요일까지 한 달이 채 안되는 작가의 여정이 나를 한없는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그러면서도 소설이, 작가라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낫게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어쩌면 내가 억지로 만든 위안일지도 모른다.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처음에 그는, 그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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