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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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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 양장 ]
랄프 게오르크 로이드 저/김태희 | 교양인 | 2006년 01월 16일 | 원제 : Goebbels 리뷰 총점8.6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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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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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일 2006년 01월 16일
쪽수, 무게, 크기 1,055쪽 | 1,564g | 153*224*60mm
ISBN13 9788991799134
ISBN10 8991799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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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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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2명)

1952년 독일의 오버프랑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역사학과 독문학을 공부하고 1983년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널리스트로 활약해 온 그는 현재 시사주간신문 《벨트 암 존탁(Welt am Sonntg)》의 수석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괴벨스 일기』(2002년)를 편집했으며, 저서에 『히틀러, 정치적 전기』(2003년), 『로멜』(2004년) 등이 있다. 1952년 독일의 오버프랑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역사학과 독문학을 공부하고 1983년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널리스트로 활약해 온 그는 현재 시사주간신문 《벨트 암 존탁(Welt am Sonntg)》의 수석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다. 『괴벨스 일기』(2002년)를 편집했으며, 저서에 『히틀러, 정치적 전기』(2003년), 『로멜』(2004년) 등이 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 철학과에서 석사학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 HK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시간에 대한 현상학적 성찰》, 《모빌리티 시대 기술과 인간의 공진화》(공저), 《모빌리티 사유의 전개》(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소외와 가속》, 《모빌리티와 인문학》(공역), 《사물과 공간》, 《에드문트 후설의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본대학 철학과에서 석사학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학교 모빌리티인문학연구원 HK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시간에 대한 현상학적 성찰》, 《모빌리티 시대 기술과 인간의 공진화》(공저), 《모빌리티 사유의 전개》(공저)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소외와 가속》, 《모빌리티와 인문학》(공역), 《사물과 공간》, 《에드문트 후설의 내적 시간의식의 현상학》(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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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장?신은 왜 그를 경멸받고 조롱당하도록 만들었는가? (1897~1917)

괴벨스에게 삶은 힘겹게 시작되었다. 그는 갓난아기 때 폐렴을 앓아 “소름 끼치는 신열이 가져온 환영 속에서” 거의 죽을 뻔했다. 살아남았지만 그는 ‘허약한 꼬마’가 되었다. 20세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골수염에 걸렸다. 그는 이에 대해 유년기에 겪은 “삶의 방향을 결정지은 사건 중 하나”라고 회고한 바 있다. …… 가족의 주치의와 안마사는 이미 치료가 끝났다고 여겼던 오른쪽 다리의 마비를 다시 치료하기 위해 그 후 2년 동안 애썼다. 그러나 끝내 그들은 절망에 빠진 부모에게 요제프의 다리는 평생 동안 마비될 것이고 성장이 지체될 것이며 점차 만곡족(彎曲足)이 될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 어른들의 모욕적이고 동정 어린 시선과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괴벨스는 신체적 장애가 모든 것에 그늘을 드리운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집 밖으로 나가기를 꺼리게 되었다. - 22~23쪽

괴벨스도 한스 형이나 급우 프리츠 프랑이나 얼마 전 사귄 리하르트 플리스게스처럼, 조국을 위해 곧바로 출정하려 했다. 그는 어느 작문에 쓴 것처럼, “처와 자식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고향과 조국을 위하여, 싱싱한 젊은 목숨을 내놓으려 출정하는 병사는 조국에 가장 고귀하고 명예로운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저주스러운 장애 때문에 또 한 번 이방인에 머물러야 했다. ……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민족적 열광은 요제프 괴벨스의 출신 성분도 가릴 수 있었다. 거의 성인에 가까운 중등학교 고학년이 된 괴벨스가 ‘스탠드 칼라 프롤레타리아’의 아들로서 부유한 상인, 관리, 의사의 자녀들과 함께 지내는 일은 아무래도 전시보다는 평화시에 더 힘들었을 것이다. 젊은 괴벨스가 ‘진정한 민족공동체(Volksgemeinschaft)’라는 비전을 진지하게 품게 된 데는 이러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 33, 35쪽

2장?내 안의 혼돈 (1917~1921)

괴벨스는 특이하게도 사회적인 갈등도 모두 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책임이라고 여겼다. 그는 항상 빈털터리인 ‘가련한 악마’인 자신과 연인인 안카 슈탈헤름 사이에 존재하는 사회적 장벽을 느낄 때마다 사회적인 갈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 특히 마음 아팠던 일은 안카 슈탈헤름의 가족이 그녀에게 빈털터리 장애인과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고 계속 충고를 했던 일이었다. …… 라이트에서 괴벨스는 조직화된 노동자들과 토론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런 방식으로 노동자 계층의 운동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 60~62쪽

(안카 슈탈헤름과 헤어진 뒤) 괴벨스는 절망을 이기려고 ‘술고래’ 노릇을 하거나 책들에 파묻혔다고 나중에 회고했다. 오스발트 슈펭글러의《서구의 몰락》을 읽은 것도 전반적으로 그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니체 모방자가 쓴 역사 형태학에서 괴벨스는 모든 문화가 생성과 소멸이라는 존재의 영원한 법칙에 묶여 있다는 것을 읽었다. 그는 지금이 영혼이 없는 물질의 시대, 산업과 ‘문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모든 문화가 소멸하기 시작하는 때임을 그 책에서 읽었다. 그 시대의 대다수 사람들처럼 그도 이미 1차 세계대전 전에 쓴 그 책이 독일의 현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고 보았다. 슈펭글러의 책은 여전히 괴벨스의 희망이었던 ‘정의로운 세계’의 비전에 가위표를 그었다.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법칙에 따르면 오로지 강자가 지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 80쪽

3장?회의주의를 이겨내자. 나는 강하고자, 믿고자 한다 (1921~1923)

1923년 1월 2일 괴벨스는 드레스덴 은행에서 일을 시작했다. …… 그는 박사 학위가 있었지만 직장 생활에서는 여전히 ‘딱한 녀석’에 불과했다. …… 다시 몸도 허약해지고 신경쇠약에 걸린 괴벨스는 매일 은행에서 겪는 일도 부당하다고 느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소시민들은 저축한 돈을 잃어 가는 반면 토지와 현물을 담보로 한 채무는 사실상 무효화되어 갔기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부유한 (토지와 현물) 소유자는 더욱 부유해졌다. 은행 앞에서는 죄 없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뻔뻔스러운 투기자들은 외환거래를 이용해, 그리고 곤경에 빠진 사람들로부터 토지를 헐값에 사들여서 엄청난 재산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괴벨스는 그들이 돈을 두고 벌이는 행태를 가리켜 “너희들은 자본 투자라고 말하지. 그러나 그런 그럴듯한 말 뒤에는 더 많은 돈을 모으려는 짐승 같은 허기만이 있을 뿐이다. ‘짐승 같은’이라고 말했지만, 이 표현은 짐승에 대한 모욕이다. 왜냐하면 짐승은 배가 부르면 먹기를 그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96~100쪽

괴벨스는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길은 우선 ‘국제 유대주의’의 헤게모니에 대항하여 싸우는 데 있다고 믿었다. 슈펭글러는 ‘문화’의 속된 물질주의적 종말의 시기인 ‘문명’으로 넘어가면서 서구의 몰락이 다가온다고 예언했지만, 괴벨스의 생각으로는 유대인의 ‘제거’로 그러한 몰락을 막을 수 있었다. 괴벨스는 우리, 즉 ‘새로운 인간’에게는 슈펭글러가 퍼뜨린 몰락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 120쪽

4장?이 남자는 누구인가? 반은 평민이고 반은 신이다! (1924~1926)

뮌헨으로부터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 란츠베르크 요새에 갇혀 있는 한 남자(아돌프 히틀러)가 괴벨스의 의식 속에서 점점 더 커다란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그 남자는 정치 무대에 등장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홀연히 사라져버렸기에 마치 유령 같은 느낌을 주었다. 바로 그가 낯설다는 이유 때문에, 갇혀 있는 그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지식보다는 수수께끼가 더 많기 때문에, 그리고 수많은 요소들이 미화되었기 때문에, 괴벨스는 자신이 갈망하는 구원의 이념과 행동하는 인간의 모습을 히틀러에게 투영하기 시작했다. - 127쪽

베를린에서 괴벨스는 당원이 500명도 되지 않고 내분에 휩싸여 있는 당을 재조직하여 나치 운동을 발전시키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히틀러는 당의 힘은 ‘당과 돌격대의 지역 활동가들’의 능력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다. 히틀러가 괴벨스를 최적의 인물로 생각하고 그 자신의 관행과는 달리 외부인을 관구장으로 임명한 것은 괴벨스가 자신을 맹목적으로 신봉하며, 뛰어난 언변을 갖추고 지칠 줄 모르고 일하는 지식인 활동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괴벨스는 사회주의적 견해를 지니고 있어 ‘붉은 베를린’(당시 베를린에서는 사회주의 세력이 강력했다)에 적절했고, 동시에 슈트라서의 라이벌로서 베를린에서 슈트라서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역할을 할 것이었다. 즉 괴벨스는 히틀러가 제국 수도로 진출하고 이를 통해 집권으로 나아가는 길을 닦을 적임자였던 것이다. - 167쪽

5장?죄악의 구렁텅이, 베를린! 나는 그 안으로 떨어져야 하는가? (1926~1928)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눈에 띄는 일이 중요했다. 그리고 눈에 띄기를 원한다면 길거리에 보이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 띄어야 했다. 괴벨스의 견해에 따르면, 대중의 시대에 거리는 “현대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훗날 그는 “거리를 정복할 수 있다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을 정복하는 자는 국가를 정복한다.”라고 회고했다. ‘희생 공동체’조직원들에게 이러한 과업을 준비시키려면 무엇보다도 웅변 훈련이 필요했다. “파시즘과 볼셰비즘을 형성한 것은 바로 다름 아닌 위대한 웅변가들, 위대한 언어의 예술가들이었기 때문이다. 연설가와 정치가 사이에는 구별이 없다.”라고 썼던 (베를린 관구장) 괴벨스는 11월 16일에 웅변 학교를 만들었다. - 180쪽

괴벨스가 발산하는 매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역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막 돌격대에 입회한 베를린의 19살 난 목사 아들이 이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 그는 바로 호르스트 베셀이다. …… 정의로운 세계를 그리는 나치의 이념은 이상과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에 목사의 아들을 매혹했다. 나치당을 통해 “정치적으로 깨어난” 그는 그 이념을 전파하는 베를린의 ‘설교자’를 우러러보았다. “이 남자의 웅변과 조직 능력은 유일무이하다. 그에게는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당의 동지들은 깊은 애정으로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 돌격대는 그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이다. 괴벨스는 바로 히틀러 자신과 같다. 괴벨스는 바로 우리의 괴벨스이다.” - 182쪽

6장?우리는 혁명가이고자 한다. 언제까지나 (1928~1930)

지방 선거의 성과에 고무된 히틀러는 합법적 수단으로 정권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그 목적을 이루려면 히틀러는 동맹자들이 필요했다. 1차 세계대전 참전군인 연맹인 철모단 외에 독일국가인민당이 동맹의 고려 대상이었다. …… 괴벨스에게는 그가 증오하는 ‘반동’과의 협력은 나치를 배반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영 안에 반대하는 당의 선동이 처음으로 폭넓은 대중에 먹혀들어갈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 괴벨스에게는 그러한 성과를 다른 세력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하면서 한편으로는 보수적 민족주의 세력과 맺은 동맹 때문에 그가 누구보다 끌어들이고 싶어하는 사람들, 즉 노동자들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했다. - 231~232쪽

7장?이제 우리는 합법적이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어쨌든 합법적이다 (1930~1931)

히틀러는 (1930년) 4월 26일, 뮌헨의 지도자 회의에 참석하려고 전국에서 모여든 최고 간부들 앞에서, 슈트라서 형제와 그 추종자들에 반대하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슈트라서 진영은 그동안 히틀러가 독일국가인민당에 접근하는 것과 유력 실업가들의 호의를 얻으려는 알랑거림을 비판해 왔고, 거침없는 반자본주의 노선을 과시하면서 포괄적인 국유화 조치와 소련과의 동맹을 주장했다. …… 괴벨스가 이 일을 그토록 격정적으로 일기에 쓴 것은 히틀러가 거의 1년 전부터 그에게 약속했던 것을 마침내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슈트라서 형제들에 대한 ‘앙갚음’(사실 이는 온건한 비판에 더 가까웠지만) 후에 히틀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서 “쥐 죽은 듯이 고요한” 가운데 괴벨스를 제국선전책에 임명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마침내 괴벨스는 그레고어 슈트라서가 1927년 히틀러에게 양도했던 그 자리를 얻었다. - 258, 260쪽

괴벨스는 슈테네스, 돌격대와 결속감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신에게는 불가침의 위대한 인물인 히틀러를 따르고자 하는 자기 분열 때문에 자신을 마냥 속이게 되었다. 그의 자기 기만은 그가 돌격대를 위하여 호르스트 베셀 1주기를 성대하게 기념한 후인 1931년 3월 돌격대의 충성을 확고히 하려고 연출한 사건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돌격대원 한 사람이 괴벨스를 ‘폭탄 테러’에서 구해냈다는 것이었다. 괴벨스는 이러한 연출의 ‘영감’을 테러에 희생될 수 있다는 히틀러의 걱정에서 얻은 것으로 보인다. …… 괴벨스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어제 아침 나를 해치려는 폭탄 테러가 있었다. 폭발물을 담은 소포가 우편으로 사무국에 도착했다. …… 그것이 폭발했다면 분명 눈과 얼굴이 날아가버렸을 것이다.” 관구장은 테러라는 동화를 써서 자신까지도 속였다. - 296~297쪽

8장?일개 상병이 합스부르크 왕가를 계승하다니, 기적이 아닌가? (1931~1933)

1932년 2월 22일 제국선전책 괴벨스는 체육궁전에서 열린 베를린 나치당 당원 총회에서 ‘총통 각하’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고 발표했다. ‘열광의 물결’이 10분 가까이 계속되었다. …… 괴벨스는 선거전 도중 전례 없이 히틀러를 신화로까지 미화했다. 3월 5일 〈공격〉에서 괴벨스는 ‘우리는 아돌프 히틀러에게 투표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히틀러를 ‘대독일인’, ‘총통’, ‘예언자’, ‘전사’, ‘대독일의 히틀러’ 등으로 명명했다. 그러한 표현들은 오스트리아인으로 태어난 히틀러가 “민족의 고난”을 온몸으로 체험하였고 그의 그때까지의 삶이 대독일제국에 대한 향수로 가득차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 그 표현들은 그가 과거 건설 노동자였기에 노동과 노동자 계급을 잘 알고 있고 그들의 힘겨운 운명을 함께 걸머지고 있다는 사실, 또 그가 과거 전방에서 싸운 군인으로 전우들의 정당한 요구를 정치적으로 현실화하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335쪽

파펜이 1933년 1월 30일 아침 10시 직전, 내정된 정부 각료들을 이끌고 눈 내린 정부 부처 정원을 가로질러 대통령에게 가고 있을 때, 괴벨스는 수많은 당원들과 함께 카이저호프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정된 정부 각료에는 미래의 제국총리 히틀러 외에도 신설 항공부 장관(처음에는 정무장관)과 프로이센 내무장관을 맡을 괴링, 그리고 협상을 통해 제국 내무장관을 맡도록 내정된 빌헬름 프리크가 있었다. 괴벨스에게 장관직을 부여한다는 것은 보수주의자들과 벌이는 협상에서 장애가 될 뿐이었을 것이다. …… 그는 내심 이러한 냉대에 실망했다. ‘총통 각하’가 과장된 엄숙함으로 카이저호프 호텔 앞에서 자동차에서 내려서, 그보다 앞서 걸으면서 그 소식을 떠들어대는 괴링의 뒤를 따라 군중 사이를 뚫고 호텔에 들어섰을 때, 그리고 히틀러가 말없이 지지자들 앞에 나서 눈물을 글썽였을 때, 그때서야 괴벨스의 실망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가 몇 년 전부터 믿기 시작하여 결국 신격화했던 그 남자가 제국총리가 된 것이다. - 388쪽

9장?모두가 우리에게 빠져들 때까지, 우리는 인간들을 개조할 것이다 (1933)

사회 전 계층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갈색 마력에 빠져들었는데, 그들을 불러들이는 구호는 ‘실업 퇴치’, ‘민족적 명예’의 재건, 모든 사회적 장벽을 가로지르는 ‘민족공동체’ 같은 것들이었다. 물론 불안감을 자아내거나 의혹을 일으키는 일도 많았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나 수용소 건설, 정치적 반대자에게 가하는 테러 등이 그러했다. …… 그렇지만 일단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고 있었고 개인의 힘으로는 어차피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었기에 많은 독일인들은 자신은 그런 일들과 무관하다는 말로 불안과 의혹을 떨쳐버리려 했다. 그리고 결국엔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혁명에는 과격한 행동이 나타나는 시기가 있고, 길건 짧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누그러지는 법이 아닌가? - 446~447쪽

히틀러가 보기에 국제적인 반감의 물결을 가라앉히는 일을 하기엔 괴벨스가 가장 적격이었다. …… 괴벨스는 9월 25일 국제연맹 회의에서 ‘음울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여기에서는 ‘사자(死者)들의 모임’이 열리고 있다면서, 경멸과 조롱을 가득 담아 “이것이 국제 사회의 의회주의다.”라고 말했다. …… 그 자신도 ‘총회의 대사건’으로, “주시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외무부 통역부장 파울 슈미트는 괴벨스가 그 자신이 그렇게 경멸하던 제네바의 무대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활동하여, “마치 그가 이미 여러 해 동안 국제연맹의 대표단이었던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라고 말했다. …… 괴벨스는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과격한 정치 선동의 어휘 대신 세련된 외교관의 어휘를 사용했다. 그의 가면은 완벽했다. - 448쪽

10장?위기와 위험을 헤치고 우리는 자유로 간다 (1934~1936)

나치 선전 선동은 외국을 염두에 두고 평화의 약속을 더욱 강조했다. 1935년 3월 19일 괴벨스는 〈공격〉에서 독일은 평화를 “모든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필요로 한다. …… 조금이라도 책임감을 지닌 사람이라면 유럽의 그 누구도, 17년간의 평화를 위한 활동으로도 사라지지 않은 지난 전쟁의 피해들이 또 다른 전쟁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생활권’을 동쪽으로 확장한다는 히틀러의 계획에 동조하는 괴벨스는 얼마 후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그러므로 군비를 확장하고, 사악한 게임을 위해 선한 표정을 짓도록 한다. 주여, 이 여름이 우리에게 좀 더 지속되도록 하소서. 자유를 향한 우리의 길은 위기와 위험을 통해 간다. 그러나 그 길을 용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 495~496쪽

나치 권력자들은 1935년 9월 15일 나치당 제국전당대회와 같은 때 개최된 제국의회 임시회의 중, 반유대주의적인 뉘른베르크 법률들, 즉 ‘제국국민법’과 “독일의 혈통과 명예를 보존하기 위한 법률”을 긴급 입안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손질’하여 통과시켰다. 그러한 조직적인 유대인 박해의 시작을 괴벨스는 일기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유대인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우리는 수백년 만에 처음으로 그들의 뿔을 움켜쥐는 용기를 갖게 된 것이다.” 1935년 11월 발효된 그 법률들의 시행 규정을 둘러싼 논쟁에서 괴벨스는 가장 극단적인 편에 섰다. - 502쪽

11장?총통은 명령하고 우리는 복종한다! (1936~1939)

11월 7일 프랑스의 수도에서 전해진 소식이 괴벨스와 여배우의 스캔들로부터 사람들의 주의를 돌려놓았다. 가족이 독일에서 추방된 폴란드 유대인 헤르셀 그린츠판이라는, 절망에 빠진 한 젊은 남자가 1938년 11월 7일 파리에서 프랑스 주재 독일 대사를 권총으로 살해하려다가 대신 대사관 제3서기관 에른스트 폼 라트를 쏜 것이다. 중상을 입은 라트가 병원으로 옮겨지자마자, 괴벨스는 라디오와 신문에 대대적인 보도를 내보내 ‘유대인 이민자 도당’과 ‘국제적인 유대인 범죄 집단’이 그 테러를 사주한 것으로 비난하도록 지시했다. …… 히틀러와 괴벨스는 광범위한 대중이 참여하는 포그롬이 이루어질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11월 10일 새벽 전국에서 지옥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사복 차림의 돌격대원들은 유대교 회당인 시나고그(synagogue)로 몰려가 파괴하고 방화하였다(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히틀러유겐트도 참가했다). …… 2만 명 이상이 가축처럼 트럭에 실려, 다하우, 부헨발트, 오라니엔부르크의 수용소로 이송되었고, 대부분은 그곳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 600, 602쪽

1939년 1월 말 히틀러는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외교적 목표를 천명했다. 1월 30일 그는 제국의회 연설에서 “우리 민족의 생활권 확장”을 이야기했다. 수데텐 독일인 문제의 해결이 자신이 유럽에서 내놓는 ‘마지막 영토 요구’라고 했던 1938년 9월의 약속과 달리, 체코슬로바키아 위기의 불씨는 계속 꺼지지 않고 있었다. 전쟁은 이제 시간 문제였다. 이런 상황에서 괴벨스가 선전하는 독실한 충성의 원칙을 위하여 자기 자신의 판단력을 포기하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은 히틀러의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감히 공공연하게 경고를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정권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품종 개량으로 저항력이 약화된 지식인들”로 히틀러와 괴벨스로부터 언제나 ‘마르크스주의자’나 ‘유대인’과 똑같은 취급을 받았다. …… ‘지식인들’에 대한 괴벨스의 분노는 그가 언제나 유일하게 쓸모 있는 선전의 도구로 평가하던 수단이 그들에게는 먹혀들지 않는다는 자각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 616~618쪽

12장?그는 전능하신 분의 보호 안에 있다 (1939~1941)

1939년 여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총통 각하’의 결연함을 선전장관은 계속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괴벨스가 더는 그를 숭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비극을 가져올 교만이었다. 그들은 너무 자주 운명에 도전했고, 너무 자주 승리를 거두었다. 거기에는 궁핍과 고통, 한마디로 말해 희생, 예전에 괴벨스에게 흔들림 없는 믿음을 주었던 그 희생이 결여되어 있었다. 회의의 순간들에 괴벨스는 팽창욕에 사로잡힌 히틀러를 평화 노선으로 유도하리란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히틀러가 그에게 이야기하고 그를 자신의 마력으로 끌어들이면, 괴벨스는 불안감이 새로이 밀려들기 전에, ‘섭리’가 그의 손을 이끌고 있다고 더욱 광신적으로 자신을 속였다. - 636쪽

괴벨스는 특히 괴링의 공군 부대 중 기사십자훈장 서훈자인 조종사들을 국민 영웅으로 미화했다. 베르너 묄더스), 아돌프 갈란트, ‘아프리카의 별’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 같은 이름들은 독일 군인의 새로운 유형을 보여주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선전장관이 누구보다도 선호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는 바로 에르빈 로멜이었다. 괴벨스가 육군 최고사령부와 협력하여 로멜을 다룬 〈서부의 승리〉라는 선전영화를 제작했던 프랑스 진격 당시, 로멜은 제7기갑사단을 이끌고 제4군의 선두에서 연장된 마지노 선을 돌파했다. 그의 저돌적인 지휘 스타일은 전격전의‘혁명적 전략’에 잘 맞아떨어졌다. ‘현대전’은 ‘늙은 장군’들의 몫이 아니라는 의견을 가진 괴벨스는 로멜이 나치 군 지휘관의 모든 특성과 성격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 711쪽

13장?그대들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1941~1944)

괴벨스는 볼가 강변의 대재앙(스탈린그라드 전투의 패배와 파울루스 원수의 항복)을 “진정으로 고전적인 위대함을 지닌 광경”이라고 묘사하며 자신의 총력전 구상에 맞춰 도구화하려 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충격을 받은 독일 사회에 대규모 집회를 열어 “승리 아니면 파멸”이라는 양자택일을 격렬하게 제시하려는 생각이 떠올랐다. 괴벨스는 승리를 원하는 자는 그의 총력전 구상과 그 모든 결과들도 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중을 자신의 의도대로 동원하고 이를 통해 지금까지의 “내키지 않아하는 태도”를 끝낼 수 있는 스펙터클한 연설을 하려 하였다. - 778쪽

괴벨스는 공습의 밤들에 경보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리고 한낮에는 카이저호프 호텔의 벙커에서 민간인 투입과 구호 조치를 지휘했다. …… 경보가 해제되자 그는 고위 당 관료로는 유일하게 불타는 시내를 서둘러 가로질러 가면서, 여론 선전에서 효과적인 화재 진압 업무를 넘겨받았고, 그곳에서 신속한 구호 조치를 취했다. 사람들이 그가 있는 곳으로 밀려와 그와 악수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 수많은 어린 고사포대 보조원들의 장례식 같은 자리에서 괴벨스는 희생과 구원을 주제로 열정적인 연설을 하고 나서 관들 위에 상투적인 격정에 찬 몸짓으로 철십자 훈장을 놓았다. 그럴 때 유가족들은 괴벨스의 참여를 자신들을 존중하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괴벨스는 자신이 그들 중 한 사람임을 끊임없이 과시함으로써 고난 중에 인기를 얻었다. 사람들은 그 말이 선전장관 괴벨스의 입에서 나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격려에 감사했던 것이다. - 804쪽

14장?복수는 우리의 미덕, 증오는 우리의 의무! (1944~1945)

괴벨스는 1944년 7월 25일 법령에 따라 총력전 제국전권위원에 공식 임명되었고, 이로써 민간 부문 전체와 제국 최고 기관의 책임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 괴벨스는 모든 최고 제국 기관, 관구장, 제국지사, 행정기관 들을 수신인으로 하는 회람에서 그들의 행동은 그 행동이 전방의 병사들과 군수 산업 근로자들의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척도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지도급 인사들의 생활 방식도 전체적인 전시 상황의 요구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 841쪽

(1945년) 2월 초 소련 군의 공세는 잦아들었다. 국민들은 붉은 군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희망을 품었으나, 괴벨스는 이것이 단지 마지막 폭풍 전야의 고요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 괴벨스는 시간적 여유를 이용하여 증오심에 가득찬 무시무시한 선전을 펼쳐 독일인의 저항 의지를 강화하려 했는데, 이는 동부 지역 국민들의 공황 상태를 더욱 심화시킬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의 귀”가 “북유럽, 동유럽, 남동부 유럽, 그리고 이제 우리 조국의 동부에서 볼셰비즘의 무자비한 마수에 끌려 들어가 몸과 마음을 유린당하고 고초를 겪고 있는 수백만 명의 단말마의 비명을 못 들은 척하고 있다.”라고 썼다. 이러한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우리가 뜻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괴벨스는 심지어 페인트공들을 시켜 제국 수도의 거리에 “복수는 우리의 미덕, 증오는 우리의 의무” 같은 구호를 휘갈겨 쓰게 했다. - 875~876쪽

15장?총통과 나치가 사라지면 이 세계는 살아갈 가치가 없다 (1945)

괴벨스의 삶은 처음에는 독일에, 그 다음에는 유럽에,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전 세계에 대재앙을 안겨주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삶이었다. 그리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비극적이었을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엄청난 자기 기만의 삶이었다. 그의 역할은 처음 히틀러를 ‘총통’으로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괴벨스는 그를 일찌감치 ‘구원자’, ‘새로운 메시아’로 ‘선포’했다. …… 1차 세계대전 참전 상병이던 히틀러가 실제로 독일의 분열을 극복하고 베르사유 조약을 수정하고 독일 민족에게 이를 통해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을 때 괴벨스의 예언은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총통’, ‘섭리의 도구’라는 신화가 창조된 것이다. - 921쪽

마지막 작전회의가 끝난 후 자녀들을 베를린 바깥으로 피신시키라는 악스만의 제안에 따라 마그다에게 갔을 때 괴벨스는 다시 한 번 한순간 주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광신적이었던 마그다는 괴벨스가 모든 여성들과 아이들을 피신시키라고 이야기했던 4월 26일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철저하게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자신의 아이들을 살해하는 일을 실천에 옮긴 것도 바로 그녀였다. …… 괴벨스의 죽음을 둘러싼 최후의 상세한 내용은 아직도 어둠에 싸여 있다. 분명한 사실은 요제프 괴벨스와 마그다 괴벨스는 마그다가 아이들을 죽였던 것과 동일한, 모렐 교수의 그 청산가리 캡슐로 자살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괴벨스가 그외에도 머리에 총을 발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 923~924쪽

출판사 리뷰

“대중을 지배하는 자가 권력을 장악한다!”
- 예술의 경지에 이른 괴벨스의 대중 선동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위기를 성공으로 이끄는 선전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예술이다.”
“선전가는 국민의 흔들리는 영혼을 이해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선전은 창조와 생산적 상상력에 관련된 문제이다.”
“피에 굶주리고 복수에 목마른 적에 맞서려면 무엇보다 한없는 증오를 활용해야 한다.”
“정치란 불가능의 기적을 일구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것이다. 아니면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반드시 국민들에게 낙관적 전망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서 긴장을 해소하고 유쾌함을 주는 오락 영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영화야말로 일급의 민족 교육 수단인 만큼, 모든 영화는 면밀히 구성되고 조직되어야 한다.”
“국민들에게 무조건 불쾌한 뉴스를 숨기는 것은 심각한 실수이다. 적당한 낙관주의를 기본 태도로 삼아야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를 능히 소화해낼 수 있고 또한 그래야만 한다.”

‘총통 신화’의 창조자
나치 운동의 순교자 호르스트 베셀부터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로멜 장군까지, 괴벨스는 수많은 영웅을 만들어 독일인들에게 나치즘의 역사적 사명과 위대함을 각인시키고 나아가 전쟁 의지를 북돋웠다. 그러나 괴벨스가 만든 최고의 작품은 바로 ‘히틀러’ 그 자체였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선전은 히틀러를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 신적 존재로 만들며 ‘총통 신화’를 일구어냈다. 독일의 전 민족이 몰락의 순간까지 히틀러에게 복종하도록 이끌었다. 독일 국민들은 전쟁뿐 아니라, 나치가 저지른 수많은 끔찍하고 잔인하고 광적인 모든 일들의 책임과 죄를 히틀러가 아닌 다른 나치 지도자들에게 돌렸다. ‘총통’은 그런 일을 저지르기엔 너무도 숭고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인 대다수가 ‘총통’을 숭배하게 되었다. 초인(超人)의 모든 속성들이 그에게 부여되었다. 그는 “누구와도, 그 무엇에 의해서도 결합되어 있지 않은, 신처럼 고독하게 살아가는 생의 공간”, 오직 그를 위하여 존재하며 그외에는 아무도, 특히 여자는 들어갈 수 없어 보이는 무인지경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에게 기도하고, 그를 직접 보면 도취에 빠지고, 심지어 집 한쪽에 있는 “하느님을 위한 공간”을 “총통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사진과 꽃으로 장식한 것은 바로 여자들이었다. 그러한 ‘총통’ 숭배는 매일 수천 통씩 히틀러의 관저에 도착하는 흠모의 편지와 꽃들로 잘 나타났다. - 577~578쪽

히틀러가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독일을 양면 전선 전쟁으로 몰고 가고 승리 대신 패배만이 거듭되었을 때에도 독일인들은 ‘총통’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 독일 국민들은 전쟁뿐 아니라, 유대인 학살처럼 나치가 저지른 수많은 끔찍하고 잔인하고 비열한 모든 일들의 책임과 죄를 힘러나 괴링 같은 나치 대표자들에게 돌렸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총통이 그것을 아신다면!” 이 문장은 ‘총통 신화’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고, 괴벨스의 역사적 의미는 바로 이 신화의 창조자였다는 것이다. - 922쪽


“이성은 필요 없다. 감정과 본능에 호소하라!”
나치 운동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괴벨스는 대중을 사로잡는 연설로 유명했으며, 신문과 잡지를 통해 나치당의 주요 적수이자 당시 독일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던 공산당에 맞선 것도 바로 그였다. 연설과 글, 대규모 행진과 시위를 통해 괴벨스가 펼친 정치 프로파간다의 핵심은 한마디로 “대중의 감정과 본능을 자극하라!”는 것이었다.

괴벨스는 청중들에게 이른바 ‘이념’의 숭고한 점을 전달하고 그들을 신자로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치즘은 그들에게 (머리가 아닌) 심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치즘이 다른 정치 노선보다 탁월해 보일 뿐 아니라, 물질주의적이고 차갑다는 판결을 받은 대도시의 세계에서 확연히 눈에 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괴벨스가 조직한 선전 집회들은 항상 청중들의 감정과 본능에 호소했다. - 187쪽

(체육궁전 집회에서) 괴벨스가 연설 말미에 이르러 청중들에게 총통처럼 독일 군의 최후의 전면적 승리를 믿느냐고 물었을 때, 그리고 그가 “그대들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그대들은 필요하다면 우리가 지금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총체적이고 근본적으로 총력전을 벌이기를 원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체육궁전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선전장관이 광란하는 군중에게, 기진맥진했으면서도 집중한 상태에서 열정적인 목소리로 저 유명한 대사, “자, 민족이여, 일어서라, 폭풍이여, 몰아쳐라!”라고 외치자, 모든 것이 “미친 듯한 분위기의 일대 혼란” 속으로 밀려들어 갔다. - 784쪽

그러나 무엇보다 괴벨스의 선전이 파괴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이 단순히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굳은 믿음에서 비롯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괴벨스는 히틀러를 ‘섭리의 선택을 받은 자’라고 굳게 믿었으며 히틀러의 성공이 곧 자신과 독일 민족이 강해지는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독일의 패전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에도 괴벨스는 자신의 믿음을 계속 유지하고 거침없이 다가오는 사태 앞에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히틀러에게도 파멸의 최후 순간까지 그의 위대성과 사명에 대한 최면을 걸었다.

“언론은 정부가 연주하는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
- 무자비한 언론 통제와 미디어 조작
한국 현대사에서 일본 제국주의나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 정권들이 문화 예술 활동을 통제하고 억압하여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고자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언론 통제를 통해 국민을 세뇌하고 여론을 조작하는 것은 독재 정권의 특징 중 하나이다. 20세기 현대사에서 이런 정치 선전의 선구자는 바로 요제프 괴벨스였다.

괴벨스에 따르면 언론은 “정부의 손 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 “정부가 연주해야 한다.” 그 일이 바로 그가 자신의 ‘주요 임무’ 중 하나로 성취해야 할 ‘이상적 상태’라는 것이다. …… 그 밖에도 언론 획일화에 결정적 진전을 가져온 계기는 ‘편집인 법률’을 통하여 신문과 잡지의 발행인이 지던 책임을 편집인도 나누어 지도록 한 것이었다. 자신의 회사가 ‘획일화’되어버린 언론사 발행인들과 마찬가지로, 편집인도 이러한 조치들로 국가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게 되었다. 괴벨스의 미움을 사면 직업 명단에서 삭제당하거나, 경고를 받거나, 심지어 수용소로 ‘인계’될 수도 있었다. - 415~416쪽에서

편집인 법률과 직업 명단을 이용한 언론인 탄압, 문화예술계에서 유대인을 축출하기 위한 법령, 좌파 신문사 폐지와 언론사 통폐합을 통한 언론 획일화, 정권을 선전하기 위한 선전용 뉴스 영화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기 위한 오락 영화의 생산 등 괴벨스는 여론의 생산과 유통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통제했다. 라디오, 영화, 정치 포스터와 전단 같은 대중매체 활용, 보도지침을 통한 언론 통제 등 괴벨스가 펼친 정치 프로파간다는 이후 교과서적인 전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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