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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년 12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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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32쪽 | 502g | 135*205*30mm |
ISBN13 | 9791167740229 |
ISBN10 | 116774022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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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재앙은 이미 벌어졌고 나쁜 놀라움은 결국 찾아오고야 말았다.
문제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상실과 분노와 함께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어떻게 하면 명백히 파괴적인 힘에 의해 파괴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 올리비아 랭, 「나쁜 놀라움」 중에서
최근 일 년 사이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두고 두고 아껴 읽고 싶은 책이다. 동시에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책이기도 하다. 현학적이고 이지적이고 날카롭지만, 대상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담긴 아름답고 멋진 글들이다. 순수하게 글 자체에 매혹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 행복했고, 글을 읽는 행위 자체에 오롯이 몰입될 수 있었는데, 그 행위야 말로 저자가 말하는 '회복적 (글) 읽기'와 흡사한 경험일 것이다.
'회복적 읽기'라는 개념은 비평가이자 퀴어 이론의 선구자인 이브 코소프스키 세지윅의 에세이 「Paranoid Reading and Reparative Reading, or, You're So Paranoid, You Probably Think This Essay Is About You」에서 가져온 것이다.
지금처럼 정치적, 문화적 변화가 급속하게 일어나는 시대에서 현대인들은 일상적으로 끊임없이 맞닥뜨리는새로운 지식과 불확실성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다. 편집증적 독자들은 정보를 수집하고 링크를 추적하고 숨은 것을 파헤치는 데 집중한다. 재난과 참사와 낙담을 예견하고 완벽하게 방어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들에게 위험은 결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편집증적 읽기는 막다른 길에 봉착하거나 동어반복과 되풀이에 빠지고, 절망과 공포의 포괄적인 증거를 제공함으로, 현대인들이 이미 두려워하는 대상을 다시금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읽기는 우리가 처한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탈출구 모색에는 유용하지 않다.
따라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데, 위험을 회피하기보다는 창의성과 생존에 집중하는 편을 택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독을 판별하는 쪽보다는 자양분을 찾는 데 집중하는 방식인데, 이를 '회복적 읽기'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들은 대체로 무겁고 우울하다. 고독, 알콜 의존증, 불만족스러운 신체, 유해한 젠더 관계, 테크놀로지, 도널드 트럼프, 난민 문제 등등... 심지어 기자였던 그녀는 2009년 금융 붕괴 이후 일자리를 잃고 영국에서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러나 기가 막히게도 올리비아 랭의 글들은 지중해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역동하는 생명력이 넘실댄다. 온통 빛으로 벅차오른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무엇이 온통 빛으로 벅차오르는 삶과 글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
그것이 궁금한 독자라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책은 총 여덟 개의 챕터로 구성되는데, 짧은 에세이와 인물(특별히 예술가)들에 대한 짧은 평전이 교차된다. 글쓰기의 맛을 가장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프리즈>에 실렸던 칼럼들을 모은 '이상한 날씨'를 꼽고 싶다. 두 페이지의 짧은 분량에 이토록 간결하게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대체로 매체에 기고한 칼럼들은 시의성 때문에 그 시기가 지나면 촌스러워지거나 빛이 바래기 마련인데, 아름다운 피아노곡을 들은 것처럼 완결성을 갖춘 완벽한 글들의 향연이다.
장 미셸 바스키아나 데이비드 호크니, 조지아 오키프 등의 삶에 대해 쓴 '예술가의 삶'과 힐러리 맨틀, 세라 루커스, 앨리 스미스, 샹탈 조페에 대해 쓴 '네 여자', 그리고 서평의 형식으로 인물들을 조망한 '서평', 존 버거를 비롯한 여섯 명의 인물을 다룬 '러브 레터' 챕터에서는, 해당 인물에 대한 올리비아 랭의 깊은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그야말로 한 편 한 편이 러브 레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인데, 아무리 예술에 조예가 없고 해당 인물을 모르는 독자라고 해도, 이 글들을 읽으면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사랑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앙은 이미 벌어졌고 나쁜 놀라움은 결국 찾아오고야 말았다. 문제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상실과 분노와 함께 어떻게 삶을 살아가고, 어떻게 하면 명백히 파괴적인 힘에 의해 파괴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관건이라고 할 때, 올리비아 랭이 제시한 답이 바로 '회복적 읽기'이다. 창의성과 생존에 집중하는 편을 택하는 것, 독을 판별하는 쪽보다는 자양분을 찾는 데 집중하는 방식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회복적 읽기'를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평소에 해왔던 '편집증적 읽기'와 어떻게 다른지 몸소 깨달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다음 행보는 무엇이 될까(혹은 되어야 할까)?
그것은 독자마다 다를 텐데, 나같은 경우는 글쓰기의 욕구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도모할 것 같다. 회복적 읽기가 가능하다면 회복적 쓰기도 가능할테니 말이다. 그 희망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날씨』는 충분히 가치 있고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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