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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6년 10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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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 쪽수, 무게, 크기 | 376쪽 | 460g | 128*188*30mm |
| ISBN13 | 9791141691370 |
| ISBN10 | 114169137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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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le of KAHO — 이야기의 꼬리를 따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이후 3년 만에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제목은 『The Tale of KAHO』, 가호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이름을 한자로 쓰면 夏帆, ‘여름 하’와 ‘돛 범’이다. 여름 바람을 받아 펼쳐진 돛이 떠오른다. 그 이름은 아버지가 반복해서 꾸던 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가호는 일러스트 일을 하면서 동화를 쓰는 젊은 여성이다. 개미핥기 부부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이 성공을 거두었고, 후속작으로는 길 잃은 소녀의 이야기를 쓴다.
소설은 블라인드 소개팅에서 시작된다. 처음 만난 남자 사하라는 가호에게 이렇게 못생긴 사람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무례한 말을 던져놓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는 남자다. 그런데 가호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대신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
가호는 모나거나 유별난 사람이 아니다. 무난한 사람이다. 그래서 오히려 궁금해진다. 이 평범한 여성이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하루키는 그렇게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이번 작품에서도 하루키 특유의 저세상(?)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막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하라, 개미핥기 부부와 재규어, 흰개미 여왕이 씐 가호의 엄마, 미스터리한 칼갈이 노인, ‘스칼렛 조한슨’이라는 이름의 수호천사 고양이까지. 저마다 무언가를 상징하는 존재와 사물이 줄줄이 등장한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현실 같으면서도 현실이 아닌 세계, 그렇다고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도 않은 곳. 그 안에 놓인 낯선 존재와 익숙한 사물들은 묘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개미핥기와 흰개미 여왕은 어떤 관계인지, 칼을 가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다 보면 잠시 책에서 눈을 떼게 된다. 그러다 궁금해져 다시 책장을 넘긴다.
작품을 읽는 내내 하루키의 나이를 떠올리며 놀랐다. 일흔을 훌쩍 넘긴 작가가 여전히 이런 감각과 상상력을 뿜어낼 수 있다니. 오히려 사십 대와 오십 대에 쓴 작품들보다 더 젊게 느껴졌다. 젊은 여성의 심리와 그녀를 둘러싼 기묘한 세계를 이렇게 풀어갈 줄이야.
예전에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을 때는 쌓인 시간만큼 작품에도 무게가 느껴진다고 썼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시간이 상상력을 더욱 자유롭게 풀어놓은 듯하다. 나이를 먹으면서도 이렇게 낯선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가호의 이야기는 가호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그녀가 만들어낸 세계 속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호가 겪는 일과 그녀가 쓰는 동화는 서로를 비춘다. 길 잃은 소녀의 이야기를 쓰는 가호 역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찾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읽어가던 중 사하라가 가호에게 건네는 말에 눈길이 머물렀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심각한 혼란은 대부분 원인과 결과 사이의 등가성을 찾아내지 못해서 생긴다는 말이다. 이어 그는 눈앞에 보이는 사물의 뒷면을 들여다보고, 원인과 결과 사이를 잇는 실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이 작품의 핵심이다. 가호는 이미 경계를 넘어섰다. 이제 그녀가 있는 곳은 과거에 잘 알던 세계가 아니며, 눈에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가호에게 건네는 말이지만, 이 책을 읽는 나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흩어진 상징들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찾아보라는 말처럼.
사하라는 가호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아낼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낯선 세계를 헤쳐 나가는 데 그녀의 재능이 중요해지리라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는 어떤 유용성을 포함한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도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동화를 쓰는 가호에게 이야기는 직업이기 이전에, 길을 잃은 자리에서 방향을 찾는 도구인 셈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혼란을 이해하는 힘이 될 수 있을까. 흩어진 사건들을 연결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경험에 자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 가호가 자신의 이야기를 자아내듯, 독자인 나도 이 낯선 존재들을 연결하며 내가 읽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작품에는 하나의 존재가 소멸해야 다른 존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구조도 반복해서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환생과 업보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사라지는 것과 되살아나는 것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고, 과거의 일이 사라지지 않은 채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가호의 삶에 드리워진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늘도 그렇게 이어져 있다. 특히 어머니의 그늘은 짙다.
그래서 흰개미 여왕의 존재를 지우는 순간이 마음에 걸렸다. 그것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일일까. 아니면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자기 자신의 일부까지 지우는 일일까. 어쩌면 그 소멸은 지금까지의 가호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존재가 사라져야 다른 존재가 살아날 수 있다면, 그 뒤에 남는 가호는 이전과 같은 사람일까.
제목의 tale은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읽다 보면 발음이 같은 tail, 꼬리가 떠오른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는 우리 속담처럼, 꼬리는 지나간 자리에 남는 흔적이다. 감추려 해도 남아 있는 것, 누군가 그 뒤를 따라갈 수 있게 하는 실마리다. 한편으로 꼬리는 문틈에 걸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가호의 이야기는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다. 부모에게서 이어진 그늘과 자신이 만들어낸 동화,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 사이를 잇는 실을 찾는 일. 이야기의 꼬리를 붙잡고 따라가다 보면 닫힌 줄 알았던 문이 아직 조금 열려 있다. 그 틈으로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책을 덮었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문틈에 걸린 꼬리처럼, 생각할 거리가 아직 그 틈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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