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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17년 12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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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 쪽수, 무게, 크기 | 380쪽 | 416g | 126*194*30mm |
| ISBN13 | 9788972758389 |
| ISBN10 | 8972758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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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이란 철학자는 해가 서쪽에서 떠오를 수도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지식은 그동안의 인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이다.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축적된 것인데, 과거에 항상 그래왔다고 해서 미래에도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경험적 지식은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고, 따라서 해가 서쪽에서도 떠오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인간의 경험적 지식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지만,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현대인들의 지식에 대한 신념을 깨뜨리는 말이기도 하다.
현대문화는 인간이 자신 밖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자신 안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해변의 작은 모래알 밖에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개인적으로도 인생에 여러 가지 일들을 해석하면서, 결국은 해석할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진 경험이 많다.
[노변의 피크닉]이란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작품은 20세기 러시아 SF 소설의 대표적인 작가인 스트루가츠키 형제의 작품이다. 지금까지 러시아 SF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기에 대표적인 러시아 고전 SF 소설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필립 딕이나 아서 클라크와 같은 고전 SF 소설을 좋아해서 많이 읽어봤지만, 이 소설은 조금은 당황스럽다. 사실 SF 소설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있지만, 러시아 전통적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과 같은 분위기를 낸다. 어둡고, 내면적이고, 그리고 예리하다. 마치 필립 딕의 소설과도 분위기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필립 딕 보다 조금 더 철학적이고, 조금 더 인생에 대한 깊은 탐구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어느 날 외계인이 갑자기 지구를 방문한다. 그리고 그들은 갑자기 지구를 떠난다. 그리고 그들이 방문한 6개 구역에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 지역에서는 모든 물리학의 법칙이 왜곡되고, 자연현상을 거스리는 현상들이 발견된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은 인류의 과학기술을 훨씬 뛰어넘어 있었다. 당연히 과학자들이나 군 관계자들은 이 물질들을 획득해서 연구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외계인이 방문한 '구역'이라는 곳을 들어가는 것은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니었다. 구역에는 모기 지옥, 마녀의 젤리라는 말로 불리는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아차 하는 순간에 목숨을 잃거나 이상하게 변형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에 들어가 과학자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가 파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데, 이들은 '스토커'라고 부른다.
소설은 6개의 구역 중 '하몬트'라는 시골마을 (소설에서는 특정 나라나 지역이 언급되지 않았음)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빨간 머리로 불리는 '레드릭 슈하트'라는 '스토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은 레드릭 인생의 단면을 세 시기로 나누어서 보여주는데, 한결같이 구역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소설의 첫 부분에서 레드릭은 연구소 직원인 키릴과 깡통이라고 불리는 외계인의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구역을 방문한다. 어두움과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찬 소설의 배경처럼 결국 레드릭만 살고 키릴은 죽는다. 그 후 레드릭은 고향을 떠나지만, 다시 돌아와 스토커 일을 계속한다. 그가 있는 곳마다 불행이 가득 차고, 그의 몸에도 구역을 방문한 이상 징후가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딸아이에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그는 또다시 외계인이 남기고 간 가장 값어치 있는 보물이라는 '금빛 구체'를 찾으러 간다. 도중에 여러 가지 장애를 만나고 죽을 위기를 넘기지만, 결국 금빛 구체를 발견한다. 그러나 소설은 과연 그 금빛 구체가 무엇이며,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끝까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레드릭이 접하는 불가해하고 당혹스러운 구역과 그 구역의 물체, 그리고 그것들이 레드릭의 인생에 끼치는 불행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소설은 다른 SF 소설처럼 이상한 생명체나 외계인, 우주인이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초반에 외계인이 방문했다고 언급하지만, 그 외계인이 어떤 생명체였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다. 소설은 다만 외계인 남기고 간 흔적을 뒤지며 사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할 뿐이다. 그러면서 소설은 결국 우리가 외계 생명체나 그 생명체가 남긴 물건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소설 속의 과학자인 밸런타인 박사의 말을 통해 결국 구역이나 외계인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간 피크닉 장소와 같다고 말한다.
"피크닉 말입니다. 숲, 시골실, 풀밭을 떠올려 봐요, 차가 시골길에서 풀밭으로 들어가고, 차에서 젊은이들이 내리고 술병들, 음식이 담긴 바구니들, 아가씨들, 트랜지스터라디오, 카메라들이 나옵니다....... 장작불이 타오르고 텐트가 세워지고 음악이 흐르지요. 그러다 아침이 되면 이들은 떠납니다. 밤새 공포에 떨며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던 돌물과 새, 벌레들이 자기 피난처에서 기어 나옵니다. 그때 이들이 보게 되는 건 뭐겠습니까? 풀밭에는 자동차 엔진오일이 흐르고 벤진으로 홍건하며 쓸모없는 양초와 오일 필터가 사방에 버려져 있겠지요. 헌 옷이 널브러져 있고, 수명을 다한 전구가 뒹굴고 누군가는 렌치를 버리고 갔고,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는 늪지에는 타이어 자국이 새겨졌고..... 그러니까, 불 피운 흔적임 사과 찌꺼기, 사탕 껍질, 통조림 캔, 빈병 누군가의 손수건, 누군가의 주머니칼, 오래되어 찢어진 신문, 동전들, 다른 들판에서 온 시든 꽃 같은 것들을....... (P 231)"
그는 구역이라는 것이 결국 노변의 피크닉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자신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믿음으로 또 다른 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외계 생명체와 대화를 시도하지만, 정말 인간이 이성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은 외계 생명체와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이며, 그들이 쓰고 버리고 간 물건들을 영원히 이해할 수도 없는 존재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실험실의 원숭이는 빨간 버튼을 누르면 바나나를 받고 하얀 버튼을 누르면 오렌지를 받으면서도, 버튼을 누르지 않고서는 어떻게 해야 바나나와 오렌지를 얻어 낼 수 있는지 모릅니다. 버튼과 바나나와 오렌지가 어떤 관계인지도 이해하지 못하지요"
"대부분이 경우 우리는 현미경으로 못을 박고 있는 꼴일 겁니다."
저자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확실한 것은 단순히 외계 생명체에 대한 불가해성을 이야기하는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당시 소비에트 공산주의의 강한 검열 속에서도 SF 소설의 형식을 통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외계 생명체는 공산주의라는 하나의 획기적인 세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인류는 그것을 탐구하고, 그곳에서 많은 것을 가져오며,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려 했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도, 적용할 수도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결국 인간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이 인류의 불행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소설의 마지막에서 레드릭과 함께 금빛 구체를 향해 가던 아서는 금빛 구체를 향해 다가가며 이렇게 외치다가 죽는다.
"모두에게 행복을 드려요! 공짜로 드려요! 얼마든지 드려요! 다들 여기로 오세요! 모두가 누릴 만큼 있어요! 기분 상한 채로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공짜로 드려요! 행복을 드려요! 공짜로 드려요! (P 326)"

글쎄, 내가 이해한 것이 맞기는 한 걸까? 나 역시 현미경으로 못을 박고 있는 것은 아닌가? 워낙 암시적이고 비유적인 내용들이 많아, 과연 이 소설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해석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저자는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재미있는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는 작가의 문체가 예사롭지 않다. 소설 속의 외계인이 남기고 간 의문의 물체와 같이 내게 의문만을 남기고, 이 소설은 내게 이런 당혹감을 남겼다. 이 책을 읽으며 스트루가츠키의 다른 작품들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들의 작품들을 읽어본다면 무언가 이 작가들이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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