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 연인들을 더욱 소중하게 만드는, 따스한 사운드
류태형 (월간 '객석' 기자)
빅 피쉬의 사운드트랙은 크게 볼 때 대니 엘프먼의 기악 스코어, 펄 잼의 'Man Of The Hour'가 오리지널로서 가장 중요하지만 1/3 정도를 차지하는 삽입곡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빙 크로스비의 'Dinah' 버디 홀리의 'Everyday'나 엘비스 프레슬리의 'All Shook Up' 등 올드 팝/로큰롤과 1960년대를 풍미한 보그스의 'Five O'Clock Would', 서든 록의 대명사 올맨 브러더스 밴드의 소프트하면서 구성진 'Ramblin' Man', 부기우기 리듬이 꽉 찬 캔드 히트의 록 넘버 'Let's Work Together' 등은 영화에 그 시절의 공기를 가장 확실하게 공급하고 있다. 가장 마지막 곡인 샴 쌍둥이의 노래 'Twice The Love'도 재미있다. 한국전쟁 장면에서 에드워드가 낙하산을 타고 중공군들로 가득 찬 위문공연장 세트장 위로 떨어질 때 하반신이 붙은 쌍둥이 가수가 부르는 노래다. 그 공연장 옆 텐트 안에는 한글로 쓰여진 기밀 문서들이 널려 있고 에드워드와 텐트 안에 있던 북한군들은 쿵후로 실력을 겨루는 등 황당무계한 허풍이 전면에 나서는 장면이다. 이들수록 넘버들이 스크린에 생생하고 실제적인 느낌을 부여하는 반면 엘프먼의 작품은 아름다운 환상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엘프먼이 담당한 최근 몇 년동안의 작품들 중 최상의 수준을 보이고 있다. 팀 버튼이 '빅 피쉬'에서 제시하는 환상은, 그 끝이 현실과 접해있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그리운 이들에게 전화를 하고 짝사랑하던 이성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북미지역의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마음 착한 거인과 유리 눈을 가진 마녀, 늑대인간, 하반신이 붙어 있는 쌍둥이 가수, 사람만큼 거대한 메기 등 연이어 등장하는 마술같이 신비로운 캐릭터와 이미지에 입을 다물 수 없지만 팀 버튼은 이번 영화에서 특수효과 및 CG 촬영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한다. 이번 '빅 피쉬'의 OST는 현실의 빈자리인 꿈, 꿈의 공허함을 메우는 현실의 존재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팀 버튼의 또다른 걸작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운드트랙이 아닐 수 없다. 영상과 음악, 현실과 환상이 마주해 있는 접점에서 끊임없이 지속적인 맥박을 통해 따스한 피가 은은히 흐르는 듯한 영화음악이다. 팀 버튼과 대니 엘프먼의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또다른 영화음악의 걸작으로 기억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질문 하나. 영화예술의 지존들이 군웅 할거하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감독을 꼽으라면 누구를 꼽게 될까? 그렇다면 아마 '할리우드의 악동'으로 불리는 팀 버튼 감독을 꼽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팀 버튼이 흥행으로는 별 재미를 못 보았던 '혹성 탈출' 이후 2년 만에 메가폰을 쥔 가족영화 '빅 피쉬'가 화제다. 다니엘 월레스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따뜻한(!) 영화는 원래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처음 관심을 드러내 알려진 바 있다. 그러나 스필버그가 '마이너리티 리포트' 때문에 고사하는 바람에 뛰어난 영상예술가 팀 버튼의 손에 돌아가게 되었다는 후문. 스필버그가 팀 버튼보다 뛰어난 감독으로 비칠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하지만 필자는 결코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빈센트' '프랑켄위니' '피위의 대모험' '비틀주스' '배트맨 1,2' '가위손' '크리스마스의 악몽' '에드우드' '화성침공' '슬리피 할로우' '혹성탈출' 등 그의 작품 하나 하나는 기존의 할리우드의 가치를 전복한다. 가장 기괴하고 이상한 환상의 세계를 아름답게 그리면서도 거기엔 지상에 땅을 디딘 리얼리티가 묻어나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깊이 음미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이번 '빅 피쉬'는 캐스팅도 화제다. 1963년작 '톰 존스'로부터 2000년작 '에린 브로코비치'까지 다섯 차례나 아카데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던 앨버트 피니가 노년의 에드워드 블룸을 연기했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3'를 포함한 5편의 영화에 출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이완 맥그리거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젊은 에드워드 블룸 역을 담당했다. 또, 빌리 크루덥이 아들 윌리엄(윌) 역을, 그리고 '투씨'와 '블루 스카이'로 오스카상을 두차례 수상했던 명배우 제시카 랭이 에드워드의 부인 산드라 역을 맡아 공연하고 있는 등 쟁쟁한 캐스팅이 볼 만하다. 그렇다면 내용은 어떨까.
누구에게나 아버지라는 존재는 거대한 존재로 다가간다. 그러나 신전이 붕괴되고 신화가 깨어지듯 아버지의 뒷모습이 문득 한없이 작아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신화가 깨어지지 않으려면, 신전이 붕괴되지 않으려면,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개입해야 한다. 그것은 '허풍' 또는 '과장'일 터. 당신은 한없이 작은 아버지의 지독한 현실이 좋은가 아니면 믿고 기댈 수 있는 거인 아버지의 그럴 듯한 환상이 좋은가
윌은 아버지(앨버트 피니)의 병세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평생 모험을 즐겼던 허풍쟁이 아버지는 "내가 왕년에~"로 시작되는 모험담을 늘어놓는다. 젊은 에드워드 블룸(이완 맥그리거)은 태어나자마자 온 병원을 헤집고 다녔고, 원인불명 '성장병'으로 남보다 빨리 컸으며 만능 스포츠맨에, 발명왕이자 해결사였다. 마을에서 가장 유명인사가 된 에드워드는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시작했고, 대책없이 큰 거인, 늑대인간 서커스 단장, 샴 쌍둥이 자매, 괴짜시인 등 특별한(?) 친구들을 사귀면서 영웅적인 모험과 로맨스를 경험했다고 하는데. 하지만 지금의 에드워드는 병상의 초라한 노인일 뿐. 마지막이 될 지 모르는 아버지 곁에서 진짜 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해진 윌은 창고 깊숙한 곳에서 아버지의 거짓말 속에 등장하는 증거를 하나 찾아내고, 이제 '에드워드 블룸의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기 위한 추적을 시작한다.
앨라배마주에서 촬영된 이 작품에는 300여 명의 제작진이 참여했고, 7천여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총 비용 7천만 달러 이상이 투입됐다. 특히 서커스 장면에서는 6개의 서커스단과 말, 낙타, 기린, 코끼리, 사자, 곰 등 150여 마리의 동물들이 동원됐다. '빅 피쉬'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것처럼 사운드트랙에도 펄 잼에서부터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다양한 음악이 등장한다. 이외에도 빙 크로스비, 버디 홀리, 올맨 브러더스 밴드 등의 노래와 팀 버튼의 여러 작품을 담당해온 대니 앨프먼이 배경음악을 담당했다. 대니 엘프먼의 스코어는 근사하기 이를 데 없다.
팀 버튼의 팬은 필연적으로 대니 엘프먼의 팬이 된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따로 떼어놓고 즐길 수 없는 종류의 존재들이다. 엘프먼의 음악은 기괴하고, 독특하고 변덕스럽지만 아름답기 그지없는 팀 버튼의 영상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그것은 누구나 손쉽게 향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한 번 음미할 줄 알게 된다면 완전하게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마니아성(性)이 그들의 예술에는 게재된다.
이번 '빅 피쉬'의 사운드트랙도 예외가 아니다. 또다시 엘프먼은 버튼의 트레이드마크인 영상적인 초현실주의에 완벽히 부합하는 음악을 작곡해 내었다(8~22번 트랙). 그의 음악은 휘발성 액체처럼 환상적인 묘한 긴장감을 뿌리며 다가온다. 점차 환상성이 증발되고 난 뒤에 매우 서정적인 분위기의 물결이 일렁인다. 존 윌리엄스 못지 않게 씩씩하게 부풀어오르는 장면도 있고 심연과도 같은 정적 속에서 물방울 몇 개가 상승하듯 섬세하고 가녀린 콘트라스트도 엿보인다.
대니 엘프먼의 음악이 환상에 가깝다면 1번부터 7번까지의 트랙은 현실에 가깝다. 록그룹 펄 잼의 'Man Of The Hour'(영화에서는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지만 사운드트랙에서는 첫 트랙)는 근사한 트랙이다. 얼터너티브 록의 식지 않는 신화 펄 잼. 이들은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을까. 지난 2003년 9월 펄 잼은 팀 버튼이 그의 새 영화 '빅 피쉬'에서 펄 잼이 곡 하나를 담당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전원 팀 버튼의 팬이었던 멤버들은 그들을 위한 시사회에 참석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멤버들은 모두 자신들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거나 직접 방문했다고 한다(이유는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며칠 뒤 리더인 보컬리스트 에디 베더는 '빅 피쉬'에 영감을 얻은 곡 'Man Of The Hour'의 데모 버전을 작곡해 발표한다. 멤버들과 팀 버튼 모두 만족을 표했다. 결국 10월에 얼터너티브 록의 본고장 시애틀의 스튜디오 엑스에서 레코딩했고 시애틀의 자선을 위한 공연에서 라이브로 첫 선을 보였다. 'Man Of The Hour'는 데모 버전과 사운드트랙 버전을 담은 싱글 CD로도 발매되었다(www.pearljam.com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