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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24년 11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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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수, 무게, 크기 | 588쪽 | 836g | 130*205*36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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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의 아이의 눈에 보이는 나는 어떤 어른일까? 엘리베이터에서 가끔씩 만나는 10층 어린이에게 나는 어떤 어른일까? 나의 일터(어린이들과 밀접한 곳)에서 만나는 아가들과 10대들에게 나는 어떤 어른으로 보여질까?
평소, 나 정도면 좋은 사람이라고, 나 정도면 괜찮은 어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오던 나인데 글을 읽으며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지금은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으며 소통하고 있는 작가의 책이다. 매일 매일 어린이들과 생활하며 호흡하고 있기에 ‘어린이’의 상대편에 있는 ‘어른’에 대해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글을 읽다 보면 자꾸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다. 미처 염두에 두지 못했던 어린이들의 생각, 어린이들의 마음을 엿보게 되며 나의 지난 행실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손도 들고, 반성문도 써야 할 것만 같은 죄책감이 자꾸 든다.
글 속의 작가는, 말수가 적은 아이가 본인과의 대화가 불편하진 않았을까 고민하는 세심한 배려가 몸에 베인 사람이지만, 유아차 일행이 건물에 들어설 때 조금 빨리 가서 문을 열어주거나, 어린이에게 화장실 순서를 양보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어쩌면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쭈뼛쭈뼛 머리카락 한 줌 일어서는 것처럼 용기가 필요한 작가의 마음을 읽으며, 착한 일을 해야 하는 삶의 순간순간에도 남의 눈과 생각을 의식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위로를 얻는다.
작가는 「어린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가올 세상이 달라질 거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들이 많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아이는 어른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다. 어른들이 어떤 세상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세상이 아름답기도, 추하기도 하고, 즐거울 수도, 어두울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여러분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어른이 되어주세요.」라고 말한다. 어린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어린이를 보호해주고, 어린이를 환영해주면 「생각보다 빨리 우리 생활이 달라질 것입니다. 어린이는 빨리 자라니까요.」라고...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내 아이만 봐도 어린이는 차암 빨리 자란다.
또한 작가는 김장하(책을 읽는 내내, 두 달 전쯤 OTT 서비스로 시청했던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 김장하 어른이 자꾸 생각났다. 감히 그분을 본받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의 언아더레벨이신 ‘어른의 어른’이었다.), 박막례, 채현국, 김영만 선생님 같은 자신이 존경하는 어른들처럼 내가 마치 그런 어른인 척하고 살자고, 따뜻하게, 힘있게, 현명하게, 재미있게 살자고 말한다. 그리고 솔직하고 진지한 어른이 되자고, 어린이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이 꼭 되자고 다짐하듯 당부한다.
‘읽는 사람들은 읽는 세계 안에서 서로 알고 지낸다.’
글 속에 진정, 한 편의 영화 같았던 장면이 있다. 은정이와 유진이 이야기이다. 둘은 학년은 같지만 학교도 다르고, 사는 곳도 좀 떨어져 있고, 수업시간도 달라서 마주칠 일이 없지만 자신들도 모르게 만나는 장소가 있다.
독서 교실 한 쪽, ‘클래식’ 책장 앞!
한 명은 월요일에, 한 명은 화요일에 그 책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각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꺼내 읽는다.
그러다 어느 주엔가는 둘이서 미리 맞춘것처럼 850쪽짜리 「제인에어」를 만지작 거렸단다.
현실에서 만날 순 없지만 읽는 세계 안에서 서로를 만나며 책을 통해 마음을 교환하고 공감하는 두 사람을 그리는 영화와 같은 장면이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책을 쓰는 작가와 책 속의 등장인물들은 물론이고 그 책을 읽는 무수한 사람들과도 만나게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니 나의 인간관계가 더욱 넓어지는 기분이 들면서 왠지 모를 소속감으로 충만해졌다.
책을 한참 읽다가 문득 이렇게 선한 마음의 소유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을 때까지 혹시나 나의 예상과 달라서 책의 좋은 느낌이 다 사라져 버릴까 봐 작가의 모습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당도하고 책을 덮은 후에 ‘김소영 작가’를 슬그머니 검색해 보았다. 작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역시!’라는 생각이 들며 안도했다. 그 모습에 선함과 사랑과 배려가 가득했다. 사람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잘 살아야겠구나. 선하게, 사랑스럽게 살아야 되겠구나.’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몸이 다 자랐다고 해서 어른이라 칭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사회, 나라에서 더 나아가 세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각 자리에서 책임을 지며 최선을 다하는 이 시대의 참 어른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누구보다 나부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단어의 어원은 ‘훈민정음의 서문’에서 짐작할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겨’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어려운 한문을 배우기가 힘들었던 사람들을 ‘어여삐’ 여긴 세종에 의해, 당시의 민중들은 우리의 문자가 없어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리다’는 ‘어리석다’ 혹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어린이가 적절한 보호와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여겨, 신체적 발육뿐만 아니라 사회적 여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아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어린이’라는 단어로 정착시켰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의 어원은 ‘얼다’일 터이고, 더 알아봐야겠지만 그 의미는 ‘제대로 갖췄다’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린이보다 못한 어른’이 너무도 많은 세상에서, 제대로 된 ‘어른 노릇’은 정말 쉽지 않다고 하겠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한 의도도 자신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어떤’ 어른이 되고자 하는 다짐을 하고 있다고 이해된다. 책에서는 여전히 어린이를 미숙한 존재로 여기면서,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또 다른 ‘어떤’ 어른도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늘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저자는 ‘어린이한테 자신만의 삶을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어른 중 한 명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편집자라는 경력을 거치고, 이제는 ‘독서교실에서 어린이들과 책을 읽고 있’다고 소개하는 저자의 책을 이전에도 접한 적이 있다. 어린이를 ‘당당한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자는 주장에 적극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 길을 가다 마주치는 아이에게는 먼저 웃으면서 ‘안녕!’하고 인사를 하게 된다. 물론 아이들에게 때로는 짓궂은 ‘악동’의 모습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때로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며, 누군가를 괴롭히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결국 ‘어른’들의 세계를 통해 배웠을 것임은 자명하다. 그래서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릇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탓하기 전에,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쳤을 어른들의 행태에 대한 반성도 필요할 것이다.
저자는 평소에 만나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면서, 어린이들을 이해하고 그들을 대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물론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누군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상대의 진정이 담긴 마음을 읽어내곤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미숙한 어른’들이 너무도 많고, 오히려 그들의 그릇된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결과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어린이를 대하는 방식이 앞으로 우리가 대접받는 방식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한다. 아울러 ‘미래가 어떻게 되든 나도 끝까지 나아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저자의 주장에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또래보다 어른스럽고 이제 친구 같은 심이지만 가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아, 아직 어린아이구나 싶을 때가 있다. 최근의 '참 크래커' 사건. 심이가 먹고 싶다며 촘 크래커를 사달라고 했다. 촘 크래커? 그 글자는 촘이 아니라 참이라고 이야기했더니 심이는 정말 깜짝 놀랐더랬다. 말도 안 돼, 그게 어떻게 '참'이야? 한참을 고개를 절레 절레. 이 책을 읽으니 열한 살 대훈이도 똑같은 오해를 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은 이랬다.
어린이는 자라면서 세상에 대한 크고 작은 오해들을 풀어간다. 하지만 어른이 보기에 어린이의 오해는 대체로 단순해서 그런 오해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도 모두 재미있는 일화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나도 그렇지만 가끔은 어린이를 조금 놀려도 될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무지’에서 비롯된 일이니까 잘 알려 주기만 하면 오해는 금방 풀리고, 어린이도 같이 웃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린이 입장에서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내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농담 같은 일들이 실은 어린이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무심코 놀리는 투로 말한 적은 없었는지 뒤늦게 반성하며 앞으로 아이가 겪어낼 오해들을 가볍고 재미있는 일화로만 치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하다가 현재는 어린이 독서 지도를 하고 있는 김소영 작가가 쓴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는 내내 이런 크고 작은 다짐을 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는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게 필독서가 되어도 좋을 이 책을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른으로 넘어가고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여러 에피소드를 읽으며 심이를 많이 떠올렸지만 그보다 이 땅의 어린이들, 어린이였고, 혹은 어린이가 될 모든 사람들을 더 많이 떠올렸다. 아이들을 어른들이 보살펴야 할 연약한 존재라기보다는 한 명의 당당한 자아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겠다는 마무리도 마음에 들었다.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말을 어린이에게도 하지 않는 것. 누군가와 '잘' 더불어 살아가는 비법은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에게 착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기에 세상이 거칠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착하다는 말이 약하다는 말처럼 들릴 때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더 큰 이유는 어린이들이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 두려워서다. 착하다는 게 대체 뭘까? 사전에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고 서명되어 있지만, 실제로도 그런 뜻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른들의 말과 뜻을 거스르지 않는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착하다고 하는 건 너무 위계적인 표현 아닌가.
어딘가 좀 할머니 같은 말이지만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안하무인으로 굴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점잖게 행동하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하는 것. 그래서 부당한 대접을 받았을 때 ‘이상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진짜 바라는 것은 그것이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린이 앞에서만 그러면 연기가 들통나기 쉬우니까 평소에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감사를 자주 표현하고, 사려 깊은 말을 하고, 사회 예절을 지키는 사람. 세상이 혼란하고 떠들썩할 때일수록 더 많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봄부터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도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당연히 마음껏 놀지도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가장 헌신적으로 협조한 집단이다. 물론 어린이는 실내에서도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아낸다. 그렇지만 어디든 나가서 잠깐이라도 뛰놀고 와야 칩거 생활을 견딜 수 있는 게 어린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어린이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어른들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자녀들은 애초에 부모를 그렇게 닮지 않았다. 물론 얼굴이나 체형은 한 번씩 ‘아, 맞다, 가족이지!’할 만큼 꼭 닮은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생활 습관, 말투 같은 것도 닮은 데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린이를 설명하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이의 개성은 그보다 복잡하게 만들어진다. 어린이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과 스스로 구한 것, 타고난 것과 나중에 얻은 것, 인식했거나 모르고 지나간 경험이 뒤섞인 존재다. 어른이 그렇듯이.
어린이를 만드는 건 어린이 자신이다. 그리고 ‘자신’안에는 즐거운 추억과 성취뿐 아니라 상처와 흉터도 들어간다.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어린이의 것이다. 남과 다른 점뿐 아니라 남과 비슷한 점도, 심지어 남과 똑같은 점도 어린이 고유의 것이다. 개성을 ‘고유성’을 바꾸어 생각하면서 나는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순간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고 할 때, ‘다양하다’는 사실상 ‘무한하다’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사훈이니 뭐니 하며 재는 동안에 사랑은 이미 흐르고 있었다. 어린이로부터 내 쪽으로. 더 많은 쪽에서 필요한 쪽으로.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내 마음에 사랑이 고여 있을 리가 없다. 모두 너무 보고 싶다.
제일 자주 발견하는 건 역시 지우개다. 왜 그런지 어린이가 두고 간 지우개에서는 나름의 역사 같은 게 느껴진다. 아무렇게나 닳아 있고 별 특징이 없는데도 그렇다. 손에 쥐면 따뜻하다. 이런 자잘한 물건들에는 이름을 써 붙여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둔다. 다음에 왔을 때 찾아 가져갈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어느 순간까지는 아이 몫의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도 감수하는 것이 양육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까지가 양육이 아닐까 하고.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아마 그만큼 무겁지 않을까 그것 역시 짐작만 해 본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어린 시절은 어린이 자신보다 어른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은 구간이다.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지만 수정할 수도, 지어낼 수도, 마음대로 잊을 수도 없다. 어린 시절의 어떤 부분은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 뒤에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시차는 추억을 더 애틋하게 만들고 상처를 더 치명적인 것으로 만든다.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 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랜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 반성과 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성인이 되었는데도 내 안에 '어린이라는 세계'가 여전히 고향처럼, 낯선 여행지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늘 느낀다. 나이 들고 연로한 부모와의 갈등에서도 가장 먼저 반응하는 것은 내 마음 속 '어린이라는 세계'이다. 성인이 되어 수십년을 사는데도 많은 부분을 유년시절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어린이를 존중하고 싶다. 존중하여 하나의 소중한 인격체라는 것을 나 스스로 느끼고 싶다. 그 애틋하고 소중한 마음으로 내 아이들, 내 주변 어린이의 세계를 잘 만나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나는 서평단을 신청하였다. 유년기, 어린 시절을 지나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이 되어가며 한 때의 나는 어린이를 크게 중요한 인연으로 만날 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어린이보다도 많은 성인들, 어른을 만나고 훌륭한 인품, 인격적으로 성숙한 이들과 관계 맺으며 장차 나또한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자주, 아니, 때때로 매번 나와 상대방은 인격적으로 미성숙하였으며 인품이 크게 특별하지 않았다. 특별할 것 같은 우리는 많은 순간에 평범한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 좋은 어른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야 했다. 기분이 나빠질 때 마다 느껴지는 내 안의 유치함, 상대방의 어린애같은 행동은 실망스러워서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고 어디에서부터 교정해야만 하는 걸까, 답답하였다. '어린애 같은'이라는 수식어는 어느새 부족하고 미성숙하고 완전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어린이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우리가 사랑하는 어린이의 잠자리를 살피고,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잘 자라고 인사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만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악몽은 자기 힘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모든 어린이가 안쓰럽기도 하고, 새삼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또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무서운 것들이 어린이의 어떤 면을 자라게 한다는 것을.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고,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그런 식의 성장은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된다. 그러니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 주는 것 아닐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응원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이면서.(무서운일 p.53)
그런 생각을 해왔던 나도 어느순간 양육자가 되어 아이를 만났다. 육아책을 읽고 아동발달 책을 읽으며 어떻게 아이의 부모로서 말하고 행동해야하는지 매 순간 고민스러웠다. 아이들의 잠자리를 봐주면서 숱한 밤 함께 눕고 이불을 덮어주며 이것밖에 해주지 못하는 내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어린이의 잠자리를 살피고, 다정하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잘 자라고 인사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만이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라니. 이 대목에서 무얼까, 잠드는 아이의 이불을 덮어주는 손길에서 이렇게 깊은 의미를 읽어내는 저자의 사려깊음에 나는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마치, 어른으로서 책임져야하는 하루를 마감하고(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야) 고단하게 나 스스로의 이불을 덮어왔던 어제까지의 밤과 오늘부터의 밤이, 다른 밤이 된 듯한 기분이랄까.

모든 부모가 그렇듯 나도 좋은 어른이 되어 좋은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결의같은 것이 있었다. 대개는 육아를 하며 아이가 학령기가 되기 전까지 적어도 영유아 시기에 아이가 보이는 반짝이는 모습과 행동에 대한 경험을 주변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나누고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학령기를 앞두고부터는 어느순간, 아이와 나눈 마음, 깊이 전해진 말이라든가, 아이와의 질 높은 나눔보다는 아이의 인지발달과 학습에 대한 경험, 비교로 아이의 성장을 주시하고 감시하는 입장으로 자꾸만 변하는 마음을 다잡기가 힘이 들었다. 이런 마음의 바탕에는 (내가 어릴때에 비해) 좋은 환경과 조건에서 당연히 부족하지 않게 잘 성장해야한다는 보이지 않는 부모로서의 강요가 있었을 것이다.
지난 봄부터 어린이들은 어린이집에도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당연히 마음껏 놀지도 못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 가장 현신적으로 협조한 집단이다. 물론 어린이는 실내에서도 어떻게든 놀 거리를 찾아낸다. 그렇지만 어디든 나가서 잠깐이라도 뛰놀고 와야 칩거 생활을 견딜 수 있는 게 어린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어린이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어른들도 알아야 한다. (놀이 아니고 놀기 p.62)
그래서 코로나때문에라도 아이의 면역력과 안전을 위해 노력했다. 위험한 밖보다는 집 안이 더 깨끗하고 안전하고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아이 보다도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성인이 더 힘든 상황이라고만 여겼다.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아이들이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한 성찰과 배려를 미처 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아차차,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잘 통제하기 위한 부모의 (나의) 편의를 우선으로 삼았기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이의 입장에서 올 한 해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학년이나 성별 같은 것을 지우고 보면 어린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느낌이다. 하나하나의 정보는 색다른 점이 없지만, 그런 것이 모이면 어린이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누구랑 비교할 필요가 없는, 어린이의 고유한 모습이다.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p.87)
그래서 이런 구절은 흔들리는 양육자에게 좋은 조언이 된다. 어린이에 대한 선입견, 편견을 지워주는 이 제안은 소중한 편지 같아서 자꾸만 펴보고 싶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는 내내 어린이를 만난 일화들, 인상적인 만남, 좋은 대화, 등을 우리가 일상에서 자꾸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어린이의 목소리를 퍼뜨리다 보면 가족과 어떻게 잘 대화할 수 있는지 알게 되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퍼뜨리다 보면 어린이와 재밌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어린이의 목소리를 퍼뜨리다 보면 그 누구와도 즐겁게 대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노인과 약자와 그리고 모든 이들을 존중하며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어린이 시절의 이야기를 한다. 나 어릴때는 말이야, 내가 어렸을 때 말이야, 나때는 말이야, 심지어 아이조차 제가 옛날에요, 저 어렸을때요, 라고 지난 시절의 경험을 말한다. 우리 모두 이렇게 어린 시절의 옛날 이야기를 품고 있다. 나, 어린 나 스스로가 주인공인, 어린 아이가 주인공인 옛날 이야기를. 어린 주인공인 나는 엄마없이 혼자 잠들기도 하고 일하러 간 엄마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 어린이는 동물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고 자연도 만난다. 그 어린이가 어른이 된 내 마음 속에 옛날 이야기가 되어 산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를 더 잘 알아야 한다. 어린 나를 존중하듯 어린이를 존중해야 한다.
많은 부분에 플래그를 붙였지만, 가장 좋았던 부분을 길게 인용하고 싶다. 어쩌면 이 말은 내가 가장 듣고 싶었고 내가 내 아이들에게도 가장 해주고 싶었으나 아직 못해본 말이기도 하다.평생 듣고 싶었던 이 말을 읽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상적인 어린 시절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내가 갖지 못했다는 것만은 알았다. 그런 생각을 할때면 내 인생이 일찌감치 모양 잡힌 것 같아서 도무지 힘이 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떨치게 된 건 한 어린이 덕분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신발을 갈아 신거나 급식을 먹을 때 느린 편이라 선생님이나 친구들한테 싫은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하셨다. 그 뒤로 나는 그 어린이뿐 아니라 다른 어린이들에게도 자주 “천천히 해”라고 말하게 됐다. 생각해보니 나도 어렸을 때 빨리 하라는 말만 들은 것 같았다. 누가 천천히 하라고 했으면 조금은 안심이 됐을 텐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해냈을까?
사실 “천천히 해”는 내가 아는 가장 ‘맺힌 데 없는’ 선배가 자주 하는 말이다. 퇴근길에 비가 오면 그 선배는 사무실에서 지하철역까지 꼭 후배들을 차로 데려다주었는데, 우리가 차에 탈 때도 내릴 때도 늘 그렇게 말했다. “천천히 해.”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덕분에 차를 얻어 타는 게 미안하지 않고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선배는 그런 말을 듣고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었나 보구나 싶었다. 나중에 내가 “천천히 해”라고 말하고 보니 나도 그런 말을 들어 본 사람이었다. 꼭 인생 초기에 자리 잡힌 대로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반대로 어린이에게 하지 않을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래야 나의 말에 조금이라도 힘이 생길 것 같아서다. 일의 결과가 생각만큼 좋지 않을 때 괜찮다고, 과정에서 얻은 것이 많다고 나를 달랜다. 뭔가를 이루었을 때는 마음껏 축하하고 격려한다. 반성과 자책을 구분하려고,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린이 덕분에 나는 나를 조금 더 잘 돌보게 되었다. (길잡이 p.25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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