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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

박완서 朴婉緖
국내작가 문학가
출생
1931년 10월 20일
사망
2011년 01월 22일
출생지
경기도 개풍
직업
소설가
데뷔작
나목
공유하기
1931년 경기도 개풍 출생. 1970년 불혹의 나이에 『나목(裸木)』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이래 2011년 영면에 들기까지 40여 년간 수많은 걸작들을 선보였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배반의 여름』 『엄마의 말뚝』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친절한 복희씨』 『기나긴 하루』 『미망』 등 다수의 작품이 있고,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중앙문화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인촌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2006년, 서울대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70 《여성동아》에 「나목」이 당선되며 데뷔
2006 서울대학교 문학 명예박사
숙명여자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
내게 글을 쓴다는 건 내 고통의 일부를 독자에게 나누는 거예요. 내 고통을 글로 옮기면서 내가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가벼워지죠. 채널예스 50년대 초, 그때 문학은 내 마음의 연꽃이었다. 진흙탕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이었고, 범속하고 따분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었다. 그 남자네 집

작가의 추천

  • 죽음과 삶, 사랑과 미움, 기독교와 샤머니즘이라는 전혀 상반된 세계들을 아름답게 화해시키는 소설
  • 건강하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당신을 만들어낸 건 당신이 평생 사랑하고 종사한 영미문학 속 좋은 시와 문장이었다는 걸. 이미 통과했다고 믿는 젊은 날의 치기처럼 낯간지럽기조차 했는데 실은 그게 삶의 원초적 환희였다는 걸 이제 확연히 알 것 같군요.
  • 유소림은《녹색평론》을 통해 알게 된 시인이다. 그의 시나 산문이 실리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가 퇴곡리 시골로 가서 직접 농사지으며 쓴 글을 읽으면서는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은 친밀감마저 느꼈다. 그 집 마당에서 피고 지는 제비꽃, 도라지꽃, 나리, 구절초, 머위 등과 우리집 마당의 그것들과 남남이 아니듯이. 나이는 내가 많을 성싶은데도 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것은 나는 흙을 이르집다가 굵은 지렁이만 나와도 뒤로 나자빠질 뻔하는데 그는 곧잘 뱀도 길들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둘이 다 흙 만지기를 좋아한다고는 하나 그는 먹을 것을 가꾸니까 농사이지만 나는 잔디나 꽃 가꾸기에만 매달려 있으니 흙장난에 불과한 것도 그보다 한수 아래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한다. 《녹색평론》을 창간호부터 꾸준히 애독해 오면서 깨우치고 배운 것도 많다. 그 잡지의 일관된 논조는, 제어할 수 없는 욕망이 시키는 대로 달리는 이 무한경쟁의 시대를 향해 제발 자연과 이웃으로부터 덜 뺏고 덜 소비하고 덜 빠르게, 조금 더 불편하고 조금 더 가난하고, 단순소박하게 사는 게 더 행복한 삶이고, 지구와 인간이 더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이라고 외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 방면의 국내외의 연구자, 이론가들의 설득력 있는 글이나 연설문을 폭넓게 접한 것도《녹색평론》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글에 깊이 공감은 하지만 위로는 받지 못한다. 이대로 가다간 대재앙이 닥쳐와 지구가 멸망할 것 같은 공포감을 느낄 적도 있다. 같은 말을 하는데도 땅에 엎드려 노동하는 생활을 하는 유소림의 글은 그런 공포감을 서늘하게 비켜가면서 부드럽게 위로해준다. 단 몇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멸하지는 않겠다는 성경말씀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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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터뷰

읽다
작가 박완서가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마지막 이야기 - 작가 호원숙
작가로서 ‘박완서’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최근 출간된 고인의 유고산문집은 작가의 지난 삶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작가가 머물렀던 아치울 마을 자택에서 어머니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는 호원숙 작가와 마주했다.
2012.10.26.
읽다
한국 문학의 아름다운 산맥, 박완서를 만나다
한국 문학의 가장 아름다운 산맥,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만났다. 일흔보다 여든이 더 가까운 나이에 여전히 왕성하게 글을 쓰는 현역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아, 나도 일흔이 넘어서 저런 얼굴을 갖고 싶다’라고 소망할 만큼 담박하면서도 꾸밈없는 따스함을 지닌 분이었다. 또, 이런 자그마한 체구 어디에 그렇게 큰 힘이 있기에 지금까지 쉬지 않고 문학의 길을 달려올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2007.03.08.
읽다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
40이 되어서야 문단에 등장하여 수많은 문제작들을 통해 전쟁과 여성 문제, 그리고 우리네 삶의 풍경을 진솔하게 그려내는 영원한 현역 작가 박완서를 만나보자.
2004.05.17.

작품 밑줄긋기

정*0 2026.08.13.
p.96
친정어머니가 어디서 소식을 듣고 오셔갖고 울고불고 애걸을 하시더군. 어쩌면 어머니가 그러시는데도 살고 싶은 마음이 요만큼도 안 우러나는지 사람이 죽기 전에 먼저 목석이 되더군. 그런데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부엌으로 나가셔서 밥을 지으시잖아. 이윽고 문구멍으로 뜸들이는 냄새가 솔솔솔 들어오는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어? 정신은 여전히 가물가물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데 별안간 뱃속에서 뭔가가 불끈 들고 일어나는 거야. 그래가지고 꼭 성난 짐승같이 요동을 치는데 당최 걷잡을 수가 있어야지. 나종 생각하니 그놈의 짐승이 아마 목숨이었나봐. 나는 그때까지도 사람 마음하고 사람 목숨하곤 같은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니까. 마음 따로, 목숨 따로야. 그래서 어머니가 해들여온 밥을 미친년처럼 퍼먹었는데 세상에, 세상에 안 먹고 죽기는커녕 열이 먹다 아홉이 죽어도 모르게 맛있더라니까. 정작 죽을 뻔한 건 그때 너무 먹어 관격을 해서였으니·····
c*****3 2026.07.16.
p.10
싱아는 지금은 없다고 한다그게 젤 궁금하게 만든다
꿀*니 2026.07.07.
p.148
-그래, 우리 집안은 빨갱이다. 우리 둘째 작은아버지도 빨갱이로 몰려 사형까지 당했다. 국민들을 인민군 치하에다 팽개쳐 두고 즈네들만 도망갔다 와 가지고 인민군 밥해 준 것도 죄라고 사형시키는 이딴 나라에서 나도 살고 싶지 않아. 죽여라, 죽여. 작은아버지는 인민군에게 소주를 과 먹였으니 죽어 싸지. 재강 얻어먹고 취해서 죽은 딸년의 술 냄새가 땅속에서 아직 가시지도 않았을라. 우리는 이렇게 지지리도 못난 족속이다. 이래 죽이고 저래 죽이고 여기서 빼 가고 저기서 빼 가고, 양쪽에서 쓸 만한 인재는 체질하고 키질해서 죽이지 않으면 데려가고 지금 서울 엔 쭉정이밖에 더 남았냐? 그래도 뭐가 부족해 또 체질이냐? 그까짓 쭉정이들 한꺼번에 불 싸질러 버리고 말지.- 대강 이런 소리를 입에 거품을 물고 퍼부어 댔다. 사설은 무한히 복받치는데 시간과 목청은 모자라 눈앞이 아뜩하면서 현기증이 왔다.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었고, 내가 한 말 중 가장 가슴을 저미는 듯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꿀*니 2026.07.07.
p.65
끝나기 전에 미리 외면하고 싶은 유치한 무용이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은유나 상징이 전혀 없이 의도만이 하도 뻔뻔스럽게 노출돼 있어 마치 공산주의가 벌거벗고 서 있는 걸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벌거벗은 자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는 구경꾼이라도 시선을 돌려야지 어쩌겠는가.무용 순서를 끝으로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와 줄봉사 노릇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올케한테 미안했지만 말로 나타내진 않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거의 자정을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온몸이 남루처럼 지쳐 있었으나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이불 속에서 외롭게 절망과 분노로 치를 떨었다. 이놈의 나라가 정녕 무서웠다. 그들이 치가 떨리게 무서운 건 강력한 독재 때문도 막강한 인민군대 때문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고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뗄 수가 있느냐 말이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는 만고의 진리에 대해. 시민들이 당면한 굶주림의 공포 앞에 양식 대신 예술을 들이대며 즐기기를 강요하는 그들이 어찌 무섭지 않으랴. 차라리 독을 들이댔던들 그보다다는 덜 무서울 것 같았다. 그건 적어도 인간임을 인정한 연후의 최악의 대접이었으니까. 살의도 인간끼리의 소통이다. 이건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어쩌자고 우리 식구는 이런 끔찍한 세상에 꼼짝 못하고 묶여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까.
꿀*니 2026.07.06.
p.308
그는 잘난 척하거나 특별 대우 받을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뭣 하러 자신이 간판장이가 아니라 화가라는 걸 나에게만 살짝 밝힌 것일까? 그런 의문은 덤덤한 사람이 낸 수수께끼답게 당장 풀리지 않고 서서히 풀렸다. 그에 대한 친근감과 동류의식은, 나는 이 안에서 유일한 서울대학생이다, 적어도 서울대학생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전락했나 따위 우월감과 열등감의 콤플렉스에서 놓여나는 데 힘이 되었다. 우리 초상화부에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는 것처럼 도처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을 거라는 호기심도 생겨났다.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싸잡아 능멸하던 고약한 버릇에서, 개별적으로 볼 수 있는 관심과 아량을 조금씩 회복해 갔다. 알고 보니 피엑스 종업원 중에 대학생이 그렇게 희귀하거나 특별한 게 아니었다. 서울대학생뿐 아니라 서울대학 졸업생도 있었고, 쌔고 쌘 게 대학 물 먹은 이들이었다. 청소부 아줌마들 중에도 중학교 선생까지 하던 이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생이라는 걸 코에 걸고 다닌 건 겨우 며칠 대학 물 먹은 나밖에 없었으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들어가고 싶게 낯 뜨거운 일이었다.
i******0 2026.06.10.
아아, 그건 실로 폭발적인 환희였다. 우리는 하늘을 향해 미친 듯한 환성을 지르며 비를 흠뻑 맞았고, 웅성대던 들판도 덩달아 환희의 춤을 추었다. 그럴 때 우리는 너울대는 옥수수나무나 피마자나무와 자신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h*****e 2026.06.04.
p.292
내가 아는 이는 다 나보다 부자인데도 내 곡성을 들어줄 수 있을 만큼 한가한 이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남보다 더 나은 집, 더 앞서는 문화 시설에의 경주로 막벌이꾼보다 더 지쳐 있었고, 그들이 가진 것은 늘 그들의 욕망에 훨씬 미치지 못해 거러지보다 더 허기가 져 있었다
h*****e 2026.06.04.
p.294
모든 체험은 시간과 함께 뒤로 물러나 원경이 됨으로써 말초적인 것이 생략되는 대신 비로소 그 전모를 드러낸다. 그러나 내가 겪은 두 죽음은 이십여 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거의 피부적인 촉감으로 나에게 밀착돼 있어 도저히 관조할 수 있는 거리로 뿌리쳐내지 못했던 것이다.
h*****e 2026.06.04.
p.301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서럽고도 서러운 업일까. 어머니를 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h*****e 2026.06.04.
p.289
사는 슬거움, 나는 흘미를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마치 망가진 용수철처럼 매가리가 없이 풀려 있었다.

작가에게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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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들께서 94건의 코멘트를 남겨주셨습니다.
읽는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쓰신다는 작가님의 글은 늘 언제 읽어도 편안함을 줍니다. 작가님 글을 읽으며 올곧게 사는 일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되뇌입니다. 아치울마을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 곳의 따스함과 편안함이 마치 작가님의 글, 마음과 닮아 있을 것 같아 언젠가 그 곳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하늘에서 아드님과 함께 편히 쉬세요. 아름다운 박완서 선생님.
이*배 2015.12.15. 오후 6:40:21
생전에 뵙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니면 선생님 계신 자택 앞 골목이라도 지나가볼껄이라는....늘 좋아하는 책들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시 이 척박한 한국에 태어나셔서 우리를 위해 든든한 대들보 역할을 해주시길...
h******a 2014.08.09. 오후 7:37:47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하셨던가요. 정말 저의 젊은 시절이 못 가본 길에 대한..미련에 방황의 날들이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저의 길을 가려고합니다.. 깜깜한 밤바다..제게 등대의 한줄기빛을 비춰주신 선생님..감사합니다. 편히 쉬세요..."
m*****d 2013.07.25. 오후 3:25:28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작가님....ㅠㅠ 부디 행복한 곳에서 더 많은 미소와 기쁨이 함게하시길 빕니다.. 존경합니다..편히 잠드세요~
l*****a 2011.02.23. 오후 8:34:16
작가님~ 부디 편안히 잠드소서~! 하나하나의 주옥같은 작품들... 저는 정말 슬픕니다. 한번쯤 뵙고 싶었는데... 한번쯤 편안히 차한잔 마시며 나누고픈 얘기들이 많았는데... 제인생에서 그런걸 허락하지 않는군요~ㅜㅜ 정말 슬프네요~
a****l 2011.02.21. 오후 10: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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