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와 온라인 커뮤니티
한국 사회는 세계 어느 곳보다 더 촘촘하게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처럼 사고하고 응답하는 생성형 AI의 시대에 우리 삶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오늘날 온라인과 우리 삶의 관계를 살피는 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긴급한 과제이다.
그중에서도 온라인 커뮤니티는 엄청난 국내 접속자 수를 자랑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온라인 공간이다. 불과 몇 년 전, 대통령을 임기 중에 퇴진시킨 촛불봉기에서 재치 있는 깃발로 광장을 수놓았던 온라인 커뮤니티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레거시 언론 매체와 방송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동이 참조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생성된 콘텐츠, 유머, 상징 등이 제도 정치권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많은 시민이 다양한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주제와 관련된 여론을 만들며, 문화 콘텐츠를 창조하고, 사회적 흐름을 생성해내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수십 년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오랫동안 커뮤니티 활동을 해온 온라인 유저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온라인 활동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온라인 활동에 투자함에도 대부분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간다. 어떻게 자신들의 활동을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답답해하기도 하고, 혹시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이 책은 그들의 활동이 어떤 점에서 중요한지, 그간 어떤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왔는지를 ‘온라인 원주민’의 관점에서 설명하려는 시도이다. 그리하여 유저들의 온라인 인생이 큰 사회적 가치를 띠는 활동임을 이야기하고,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지금까지 오해되어 왔다
온라인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여러 사회적 오해와 왜곡이 있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선 온라인 유저들은 앞 세대 유저들의 영향력에 관해 잘 알지 못한다. 저자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다가 여러 계기로 유저들이 사라지는 사례를 자주 보았다고 말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발언과 활동을 하다가 사라진 과거의 유저들은, 개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익명의 유저’로, 혹은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속의 ‘좋아요’나 ‘조회수’로 존재하게 된다. 그들이 발언과 활동을 멈추고 숨게 되면 그들의 정체성은 그들의 과거 글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이처럼 온라인에서 정체성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유저층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망령’이라고 부른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온라인 환경의 일부로서 남게 된 과거의 유저들을 죽었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따르면 온라인 시대가 지속될수록 망령들의 숫자도 늘어났다. 이 수많은 망령들의 감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따라 온라인 내 사건들이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새로 온라인에 유입되는 유저들은 항상 그들 옆에 존재하는 이 보이지 않는 개인-망령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 새로운 유저들은 그들이 무언가를 주도하고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유저(뉴비)들은 보이지 않는 과거 망령들의 감정 운동과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 및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많은 경우 오프라인의 논평가와 엘리트는 온라인을 ‘침략자’처럼 해석하고 활용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을 해석해온 결과, 많은 왜곡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 명 혹은 소수의 유저가 온라인 아이디 ‘분신술’을 사용하여 의도적으로 같은 내용의 콘텐츠를 퍼뜨리는 것을 오프라인의 관망자들은 어떤 대단한 국가적 여론이 형성된 것처럼 해석하곤 했다. 온라인에는 온라인 나름의 역사, 맥락, 문화, 관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인용, 분석, 해석은 한계를 가진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론이 자주 언급되는 정치 이슈나 젠더 이슈의 경우, 온라인 1, 2, 3, 4, 5세대 간의 지분 싸움이라는 맥락 안에 논의를 위치시켜야 정확한 조망이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온라인에서 보이는 갈등들의 본질적인 면을 이해하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이 흐름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각 장의 내용 소개
1장 「온라인 1, 2세대」는 PC통신과 인터넷 초기 시기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온라인 질서와 오프라인 질서라는 개념을 통해 온라인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한편, “지분”, “떡밥” 같은 다양한 도구적 개념들을 제시한다. 닉네임 양식과 호칭의 변화는 PC통신 유저 간의 갈등이 인터넷으로 넘어가면서 생겨난 일이라고 주장하며, 유저층의 변동이 어떻게 온라인 커뮤니티의 초기 분기점들을 가지고 왔는지를 설명한다.
2장 「온라인 3세대」는 인터넷 시기의 유저들이 가지고 있던 갈등 양상이 스마트폰 시기를 거치며 정치와 젠더라는 두개의 거대담론에 묶이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스마트폰 시기 새롭게 커뮤니티에 유입된 사람들이 그 과정에 섞이게 되면서 생겨난 혼란이 이후 어떤 영향을 가져왔는지 설명한다. 또 오프라인에서 보이게 된 다양한 온라인 기반 사건들이 어떤 관점을 바탕으로 하는지에 대해 이해를 시도해 본다.
3장 「온라인 4, 5세대」는 온라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생각해본다. 1, 2장이 온라인의 과거 흐름에 대한 이야기라면, 3장에서는 현재의 온라인 흐름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다수의 정치 시사 유튜버가 생겨난 원인과 그들이 빠르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를 짚어본다. 미래의 유저들이 가지게 될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보며,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며 해야 할 것이 무언지를 고민해본다.
이 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온라인 고난이 주어진 까닭은 우리가 이 경험들로부터 무언가 새로운 지식을 얻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프라인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우리의 지식체계 사이 빈 틈들을, 온라인의 경험을 통해 얻은 새로운 지식들로 메꾸어가며 앞으로 끝없이 이어져갈 온라인 공간의 시초를 더욱 강고하게 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