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당뇨병 치료약 생산회사 이스트우드 컴퍼니스를 만든
MIT 대학 경제학 박사이자 금융 전문가 김영수의 내 건강 내가 지키는 법
“서양의학·동양의학·민간요법·대체의학 사이에서 흔들리는 환자들이
모르면 위험한 동서의학의 허와 실, 그리고 통합 이야기!”
잘나가던 금융 전문가에서 당뇨병 치료약 사업가로 변신한 사연
이 책의 저자는 캐나다에 있는 국제적인 당뇨병 치료약 생산회사 이스트우드 컴퍼니스의 대표이사로, 약리작용이 밝혀진 세계 유일의 대사증후군 치료기술 P-700을 개발해 엘레오틴(벤틀리)이라는 천연치료제를 만들었다. 엘레오틴은 수많은 임상실험을 통과했으며, 여러 나라에서 인허가를 취득했다. 또한 미국 당뇨협회장 추천 등 여러 나라 당뇨협회 및 많은 의사들의 추천과 주목을 받고 있다. 2013년 현재 30만에 이르는 사용자의 자연 발생 등을 거치며 당뇨병 관련 국제시장에서 소위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MIT 대학 경제학 박사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금융계 경력을 가지고 있던 저자가 왜 그런 길을 가게 되었을까? 그는 여행을 하다 우연히 민간요법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민간요법에 대한 서양의학 관계자들의 적대적인 태도가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비롯한 동남아의 고의서와 민간요법 자료를 모으던 저자의 취미는 당뇨 관련 제약업 투신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0여 년에 걸쳐 민간요법과 약초 샘플을 수집하고, 전세계의 수많은 의료 전문가들과 교류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 대상의 학회에 발표자로 나서고, 세계적인 약리학 저널에 논문이 게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 제도권 의료인의 극단적인 차별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어머니 앞에서 경험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심한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모친에게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드렸는데, 주치의가 바닥에 내동댕이친 것이다. 결국 어머니는 양약의 부작용으로 보이는 간기능 정지로 돌아가셨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저자는 의학과 약학의 역사, 역대 의료 관련 논쟁의 전후 배경, 그와 관련된 세계관의 충돌, 그를 둘러싼 사회·경제·법률적 환경들을 여러 해 동안 연구하고,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 책은 그러한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계에 직면한 서양의학 앞에서 무기력해진 인간
현재 제도권과 비제도권을 통틀어 전세계 의료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사건으로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사양화 추세를 꼽을 수 있다. 최근 거대 제약회사들은 해마다 10∼30퍼센트에 이르는 감원을 진행하고 있다. 과학성의 독점, 아니 종교성마저 추구했던 거대한 불침항모, 인간이 생명을 가지는 한 부와 영향력을 영원히 누릴 것 같던 다국적 제약회사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언제부턴가 제약회사들이 만들어낸 약들 대부분에 내성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아무리 연구비를 퍼부어도 쓸 만한 신약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뿐인가? 제도권 현대의학의 치료법은 하나의 병을 다른 병으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몇몇 유방암 치료는 얼마 후 백혈병으로 이어지며, 많은 당뇨약이 고혈압을 초래하고, 고혈압약은 당뇨병을 초래한다. 해당 약이 또다른 질병을 발생시킴으로써 병이 깊어지고 평생토록 엄청난 약을 복용하게 만드는 것이다. 의사들은 몸 전체를 망가뜨릴 게 뻔하지만 식약청에서 허가받았다는 이유로, 또 영미의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출시했다는 이유만으로 맹독성 있는 약을 환자에게 처방한다. 그로 인해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나타날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동안 제도권 현대의학은 대중에게 과학성을 독점하고 있다는 허상을 심어주고, 종교성을 쟁취하려 했다. 또 과잉의료와 의료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으며, 의학적 지식에 대한 결론은 계속 오락가락했다. 과학적·발전적·논리적 개선이 아니라 유행에 따른 변덕으로 갈팡질팡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하지만 그들은 막강한 정치·경제·사회 권력층을 형성해 경쟁자를 초기에 제압하고 정부와 의료제도를 이용, 환자들에 대한 착취 구조를 영속화하는 데 일정부분 성공했다.
검증이 어려운 동양의학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현실
많은 한의, 대체의학, 민간요법 종사자들은 서양의학의 과잉의료와 위험성을 공격한다. 하지만 자신들의 과잉의료와 위험성에 대해서는 기록 자체를 남기지 않는다. 따라서 그 심각성은 가늠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그들은 병이 없어도 보약을 먹도록 권한다. 아무리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해도 보약은 많은 경우 과잉의료일 수밖에 없다. 또한 같은 증상에 대해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진단과 처방이 다르다. 과학성의 기본조건, 즉 “객관적으로 서술된 조건이 같으면 누가 실험하든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조건을 대체의학은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같은 증세에 대해 완전히 다른 치료를 두고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별하기는 어렵다. 만나는 의료인마다 진단과 처방이 다르다면 환자 입장에서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저자는 인간 중심적, 전체적·조화적·전인적 균형을 이야기하는 동양의학·대체의학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학성이나 예술성 없어도, 인간 중심적 아니어도 고통이 줄어들고, 안전하고, 효과 있고, 값싸면 된다는 것이다.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는 이유는 문학이론이나 철학 강의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체의학은 ‘적당한 체중 유지하고, 잘 쉬고, 골고루 먹고, 술 끊고, 탐욕 부리지 않고, 인간관계 원만하게 하고, 담배 끊고, 정 힘들면 아스피린 한두 알 먹고……’를 이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자기 가치를 주장해야 한다.
서양의학·동양의학·민간요법·대체의학의 소통을 꿈꾸며!
동양의학으로 병이 나은 경우 양의들은 플라시보 효과라고 폄하한다. 서양의학으로 병이 나으면 한의사들은 독을 먹은 뒤의 명현현상이라고 폄하한다. 모든 병을 치료할 때 30퍼센트 정도가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 그러니 동양의학에서도 플라시보 효과가 발생할 확률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이는 서양의학도 마찬가지다. 한방의 많은 고전이 동양의학적 치료가 대부분 명현현상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서양의학을 그렇게 폄하할 이유는 없다. 제도권 현대의학과 대체의학은 서로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을 중단해야 한다. 동양의학과 서양의학 중 어느 것이 더 우위에 있을까? 이는 사실 불필요한 질문이다. 그 둘을 잘 섞어 내게 이익이 되도록 하면 그만이다. 지도에는 동서가 있지만, 의학에는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동서의학 통합에 대한 연구는 1930년대에 성황을 이루다가 한동안 주춤하더니 근래 서양의학의 신약 개발이 침체되자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자신들을 통하지 않고는 원천적으로 병이란 것이 있을 수도, 나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제도권 의료인들이 많다. 하지만 자연적으로 병이 낫거나 대안치료·민간의료로 치유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