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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행일 | 2014년 09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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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 쪽수, 무게, 크기 | 348쪽 | 502g | 148*210*25mm |
| ISBN13 | 9788932317052 |
| ISBN10 | 89323170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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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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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한 송이가 다다미 위에 떨어지는 소리로 시작한다. 다이스케는 그 소리에 잠에서 깨어 오른손을 심장에 얹는다. 심장이 제대로 뛰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이 장면에 많은 것이 압축되어 있다는 것은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였다. 외부의 작은 충격 하나가 그의 심장을 자극하고, 그는 그것을 손으로 누르려 한다. 이 반복이 끝까지 이어진다.
다이스케는 서른 살의 무직자다. 아버지의 돈으로 꽃과 책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세상의 모순을 꿰뚫어보는 냉소와 섬세한 탐미적 감수성을 갖춘 지식인으로 자처한다. 하지만 그 고고함의 실체를 천천히 들여다보면 다른 공포가 보인다. 노동이 자신의 순수성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두려움 ?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사유하고 탐미하는 것 외에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능에 대한 공포를 에고가 허용하는 언어로 촘촘하게 덮어놓은 것이 아닐까. 작품 속에 흰색 꽃은 다양하게 등장하는데, 흰색은 다이스케의 고고한 정신을 표상하기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닥쳐올 붉은색 세계에 대한 방어 체계의 색이기도 하다. 꽃 향기, 물, 고요한 공간 ? 다이스케는 이것들로 과잉된 신경을 정돈하고 자신의 흰색 세계를 유지했다.
"다이스케는 때때로 평범한 외부세계로부터 의외로 강렬한 자극을 받는다. 그 수단으로 아주 은은하고 달콤한 향기가 적은 꽃을 자주 이용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콧구멍만으로 숨을 쉬는 동안 베갯머리 맡의 꽃이 서서히 꿈속으로 술렁이는 의식을 몰아갔다."
중후반부에 다이스케가 미치요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이는 장면이 있다. 오래 억눌러온 마음을 드러내기 위해 그는 공간을 준비한다. 방 안에는 흰색 오브제들이 가득하다. 미치요가 들고 온 백합도, 수반에 꽂힌 은방울꽃도 모두 흰색. 바깥은 여름의 열기로 가득하지만 그 방은 감각을 정돈시키는 공간으로 꾸려져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연결하는 것은 물이다 ? 다이스케는 가장 맑은 물을 주려 안달복달하고, 미치요는 꽃 향기 밴 수반 물로 충분하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자연의 순수성을 향한 두 사람의 온도차가 이 짧은 교환 하나에서 선명히 갈린다. 다이스케의 순수성은 결벽이고, 미치요의 순수성은 수용이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억눌린 심장을 품고 있다. 다이스케의 심장은 이성이 끝내 통제하지 못해 수시로 새어나오고, 미치요의 심장은 아이를 잃은 후 서서히 망가져 있다. 심장은 이 작품에서 '자연의 본능'의 다른 이름이다. 문명이 억압하려 해도, 이성이 통제하려 해도 끝내 버텨내는 것.
"그는 논리에는 상당히 강한 반면 심장의 작용에는 아주 약한 남자였다."
여름의 열기가 쌓이면서, 종종 등장하는 지진이 다이스케의 예민한 심장을 자극한다. 그러나 예민해 보이지 않고 무뎌보이기만 했던 서생 가도노가 던지는 한마디가 있다.
"반딧불이는 전등에 압도당해 점점 사라지게 되었겠지요."
반딧불이는 어둠 속에서만 빛을 내는 존재다. 전등이 없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빛. 다이스케가 흰색 세계 안에서 지키려 했던 것도 그런 종류의 빛이었다. 근대화라는 전등이 켜지는 순간 보이지 않게 되는, 그러나 끝내 사라지지는 않는 것. 가도노는 그것을 알고 말한 게 아니었지만 소세키는 그 말을 거기에 심어두었다.
"자신의 육체에 온갖 더러운 색깔을 칠하고 난 뒤에 자신의 정신이 얼마나 타락할지 생각하고 진저리를 쳤다."
아버지의 지원이 끊기는 순간, 흰색 세계는 두 방향에서 동시에 무너진다. 탐미주의와 경제적 기반이 사실 같은 뿌리에서 자라고 있었음이 폭로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냉소는 여유 위에서만 가능했고, 순수성에 대한 결벽은 결핍을 경험하지 않은 자의 사치였다. 다이스케는 그것을 알면서도 몰랐던 것이다.
이 작품의 백미로써 붉은 비장미가 터져나오는 마지막 장면 ? 다이스케는 뜨거운 거리로 뛰어나간다. 빨간 우체통, 빨간 양산, 빨간 풍선, 빨간 전신주. 세상이 온통 붉게 물든다. 흰색이 마침내 버티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해방처럼 읽히지 않는다. 미치요는 이미 사라져 있고, 불은 혼자 타오르고 있다. 다이스케가 그토록 억눌러온 붉은색은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를 덮친 것이었다.
메이지 시대의 이야기이지만 전혀 세월에 침식된 이야기가 아니다. 사유하는 인간이 자본화된 세계와 충돌할 때마다 다이스케는 다시 출현한다. 구조가 이런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 구조 안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이 작품을 읽는 정직한 방식이다. 메이지 시대에도 다이스케 같은 인간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인간 표본들은 넘치도록 많다는 점에서 역사의 반복성과 인간 내면 작용의 패턴을 충분히 음미해볼 수도 있었다.
다이스케의 하얀색을 얼마나 품어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세상의 붉은색과 온갖 어지러운 색상들이 훼손시킬 수 없는 내 안의 하얀색은 어디까지인지를 더듬어 본다. 그 하얀색이 풍겨내는 꽃향기는 우리 인생을 생활이 아닌 삶으로써 풍성하게 할 것임을 알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창 밖의 붉은색은 거대해져 있는 시기이기에 이 작품이 내게 휘두르는 임팩트는 어떤 작품보다 강렬했다.

일본 작가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고 하면 이제는 망설임 없이 나쓰메 소세키라고 답할 수 있을 만큼 소세키가 좋아졌다. 100년 전에 쓰인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에 꼭 맞아 떨어지는 소재와 인물, 전개가 특히 좋다.
소세키의 작품의 주인공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어떤 유복한 집안의 ‘도련님’인 경우가 많다. 도련님이 아니면 ‘서생’이거나 ‘학생’이니 어찌되었건 결국 그 부류 특유의 ‘태평함’이 그득한 인물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그 태평함에서 세상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끌어내는 점에 특히 감탄하게 된다.
소설 <그 후>의 ‘그 후’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산시로>에서 이야기했다는 대학생활 ‘그 후’이자, 학생에서 성숙한 성인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 후’이고, 소설의 결말 이후를 의미하는 ‘그 후’이기도 하단다.
<그 후>의 주인공 다이스케의 현재 상황을 적어보면 나이는 서른이고, 아버지와 형님에게 경제적인 부분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다이스케의 아버지는 꾸준히, 최근 들어 더욱 빈번히, 다이스케에게 결혼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형수는 다이스케의 편을 들고는 있지만 역시 꾸준히 결혼을 권한다. 형님은 태평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은 하지 않고 있으며, 다이스케 본인은 일단 결혼할 의사가 없는 상태다.
이정도가 다이스케와 가족 사이의 형편이다.
다이스케의 친구와의 관계는 조금 더 복잡할 수 있다. 친구가 많아서라기보다 3년 전까지 가장 친했던 한 친구와 그의 아내로 인해서다.
<그 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화두를 단편적으로 뽑아보면 ‘결혼’과 ‘안정’이 될 것이다. 결혼은 말 그대로 결혼이기에 더 덧붙일 말이 없지만 안정은 경제적 안정을 위한 ‘일’과 심리적 안정을 위한 ‘결혼’, 아버지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의 안정을 위한 ‘수용’ 등을 의미할 수 있다. 거기에 결혼을 통한 심리적인 안정도 무시할 수 없기에 결국 결혼과 안정은 직접적인 상관관계에 있다고 말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이스케가 어떤 인물인가 하면, 다음 구절들을 보자.
「“전 현실성과 열정을 갖고 있습니다. 단지 그걸 현실적인 인간관계에 응용할 수 없을 뿐입니다.”
“왜 그렇지?”
다이스케는 다시 대답이 궁해졌다. 다이스케에 따르면, 성실성이건 열정이건 완성된 상태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돌과 쇳덩이가 맞부딪치면 불꽃이 튀듯이 상대에 따라 마찰이 잘되었을 때 두 당사자 간에 일어나는 현상이다.자신에게 내재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정신적 교류 작용인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는 성실성이나 열정이 생길 리가 없다._51쪽」
「다이스케는 의자에 앉아 도쿄 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부부의 미래를 생각했다. 히라오카는 3년 전에 신바시에서 헤어질 때와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그는 인생에서 처세라는 사다리를 한두 계단 오르다가 헛디뎌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그 순간 너무 높이 올라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남의 눈에 띌 정도로 상처를 입지는 않았어도 실제로 정신적으로는 이미 큰 타격을 입은 듯했다. 처음 재회했을 때 다이스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생각해봤을 때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은 아닐까도 싶었다._66쪽」
「“왜 일을 하지 않는 건가?”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그건 내 탓이 아니야. 즉 세상 탓이지.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본과 서양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일하지 않는 거네. 우선 일본만큼 빚이 많아 어려움을 겪는 나라는 없을 것이네. 자넨 그 빚을 언제쯤 갚을 수 있을 것 같은가? -중략- 모두 빡빡하게 교육을 받고 그 후에는 눈이 돌 정도로 혹사를 당하니 모두가 하나같이 신경쇠약에 걸려버리지. 한번 이야기를 해보게나. 그들 대부분이 바보일 테니까. 자신의 일과 자신의 현재, 단지 눈앞의 일 외에는 아무 생각도 없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중략- 그러나 이건 아니야.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나는 오히려 나 자신만을 위해 살 수밖에 없네. 그래서 자네 말처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게 가장 걸맞은 것과 접촉하며 만족하고 있네. 나서서 다른 사람들이 내 생각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이야기니 말일세.”_104~105쪽」
「가끔씩 그렇지만 지금 그의 기분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었다. 그래서 지나치게 밝은 것을 대하면 그 모순을 견디기 힘들었다. 개옥잠화 잎도 한참 바라보고 있으면 곧 싫어질 정도였다.
게다가 그는 현대 일본 사회의 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불안에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그 불안은 사람들이 서로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야만적인 현상이었다. 그는 그런 심적 현상으로 인해 마음이 크게 동요되었다. 그는 신을 향한 믿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이성적이어서 신을 믿기 어려운 성격이었다. 그렇지만 인간 상호 간에 믿음을 갖고 있다면 굳이 신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서로를 의심하는 데서 오는 고통에서 해탈하기 위해 신은 비로소 존재 의의를 갖는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신이 존재하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일삼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은 신에게도, 인간에게도 믿음이 없는 나라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것을 전적으로 일본의 경제 상황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_155~156쪽」
「그와 동시에 현재 그들 부부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필수조건으로 해서 미치요를 향한 다이스케의 애정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었다. 미치요가 히라오카와 결혼하기 전에 다이스케와 미치요가 얼마나 깊은 사이였는지는 차치하고라도 그는 현재의 미치요를 결코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는 병든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아이를 잃은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그는 남편의 사랑을 잃은 미치요를 예전의 미치요보다 가엾게 여겼다. 다만 다이스케는 이들 부부 사이에 끼어들어 영원히 갈라놓으려 할 만큼 대담하지 않았다.그의 사랑은 그렇게 무분별하지 않았다._226쪽」
다이스케는 무기력해 보이지만 무능력한 사람은 아니다. 둔감해 보이지만 섬세하고 민감한 정신의 소유자다. 태평해 보이지만 강단이 있고,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고집이 있다. 하지만 어떤 설명과 논리와 주장을 가져다 붙여도 일반적 시선에서 봤을 때 다이스케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부유하고 태평한 도련님의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잉여인간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왜 일하지 않느냐?’는 히라오카의 말에 ‘일’의 철학적 의의까지를 떠올리는 다이스케다. 인간의 존재와 진정한 가치에 대해 궁구하는 ‘생각하는 존재’다. 모두가 ‘체념’했다고 여길지 모를 다이스케의 면모는 ‘깨달음’그 후에 찾아온 변화라고 하는 것이 옳다.
다이스케는 자신의 오른쪽 손을 가슴에 얹고 심장의 고동을 느끼고 혈액의 흐름을 떠올리곤 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생명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죽음 역시 잊지 못하게 한다.
「그는 가슴에 손은 얹은 채 고동 소리 아래로 따뜻한 선홍색 피가 부드럽게 흘러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명이다 하고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 흐르는 생명을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시곗바늘과 같은 울림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끄는 경종이다. 이런 경종을 듣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피를 담는 자루가 시간을 담는 자루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틀림없이 삶을 더 음미하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다이스케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격렬한 피의 흐름과 무관한 평온한 심장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삶에 집착이 강한 남자다. 그는 누운 채 이따금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만일 이곳을 쇠망치로 강하게 얻어맞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건강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그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기적에 가까운 요행으로 느끼기조차 한다._17쪽」
생명의 고동이 죽음의 경종일 수 있다는 생각이나, 살아 있음을 기적에 가까운 요행으로 느끼는 따위의 성향은 다이스케를 허무주의에 빠져있는 ‘한심한’으로 보이게 한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까지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리고 마는 무뢰한 보다 더 질이 나쁜 존재로서의 한심한말이다. 하지만 3년 전의 다이스케와 3년 간의 다이스케를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의 다이스케를 심판하는 건 지나친 처사다. 그 후 이전과 그 후 이후를 두루 살피고 난 후 심판에 들어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다이스케는 3년 간 많이 변했고, 그 때의 애송이가 아닌 성숙한 한 사람의 성인이 되었으며 그 변신이 너무나 극적이었던 이유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경지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그 결과 태평하면서 무기력한 존재로 보이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말들은 사실 다 의미가 없다. 결국 다이스케는 자신이 3년 전에 했던 행동을 오래 전부터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결론일 것이기 때문이다. 체념했던 3년 전부터 이후의 3년을 보내며 깨달았고 그 깨달음 ‘그 후’의 선택과 행동이 <그 후>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의 그 후는 무척 혼란스럽고 까마득하며 막연하기만 하다.
이범선의 <오발탄>에서처럼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도무지 짐작도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상태로 이야기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소세키는 <그 후>에서 일본의 국내 정세와 교육 정책, 국외 정세와 국제 정세까지 두루 살피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거품을 쌓아올리는 당시 일본의 정책을 비판할 뿐 아니라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결국 일을 하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일의 본래의 가치와 동떨어진 시대상도 비판한다.
정략적인 결혼을 통해 경제적인 안정을 꾀하려는 시도 역시 경제적 안정을 위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곱게 보지 않는다. 하지만 우스운 사실은 소세키가 그리고 있는 다이스케라는 인물이 집안에서 권하는 결혼을 끝까지 거절하는 이유가 달리 마음에 두고 있는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세속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정신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성숙한 성인을 자처하는 다이스케가 3년 전 자신의 마음을 속이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보냈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가족의 뜻을 저버리고 결국 가장 친한 친구와 의절하면서까지 뒤늦게나마 사랑하는 사람을 되찾으려고 시도하는 모습은 동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뭔가 가볍게 읽고 가볍게 적어보려던 감상이 어디서부터인지 길을 잘못 들어서 심각한 결론에 닿고만 느낌이다. 다음에 한 번 더 읽고 조금 더 가볍게 정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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