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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에서 사학과 정치외교학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국제관계/안보를 공부했다. 한때 신문사에 몸담았고, 지금은 좋은 책들을 찾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세상에 도전한 위대한 여성들』, 『용서의 정원』, 『원숭이 신의 잃어버린 도시』, 『숲속의 은둔자』, 『사물의 약속』 등이 있다.

작품 밑줄긋기

m********e 2026.05.20.
p.127
1914년 11월의 어느 날, 그녀는 흰 종이를 한 장 꺼내고 맨 위에 필기체로 힘주어 적었다. "페미니스트 선언"이라고.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갈등은 "성 전쟁"이었다. 선언문은 다음의 말로 시작한다. "이제 막 시작된 여성운동은 불충분하다. 여성들이여, 여러분이 대단히 강력한 심리적 폭풍 전야의 상태임을 스스로 깨닫길 원한다면 여러분이 아끼는 모든 환상의 가면을 반드시 벗어야 한다. 다시 말해 수백 년 묵은 거짓말들이 깡그리 없어져야 한다. ……반쪽짜리 조치로는 절대 안 된다. 즉 쓰레기 더미처럼 쌓인 전통의 껍데기만 살짝 건드려서는 결코 개혁을 일으키지 못할 테니, 유일한 방법은 철저한 파괴다." 이 선언문은 집요하고 직접적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앞서 발표한 선언문보다 훨씬 명징했다. 그녀가 상정한 독자는 누가 봐도 여성들이었다.
m********e 2026.05.20.
p.126
그녀는 선언문을 자신에게 얼마간 자유를 주는 매체이자 그녀가 진짜 원하는 것을 통해 사유하고 그 생각을 단호히 주장할 수 있는 수단, 긴급하고 환상적인 것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방식으로 봤다. 자신이 미래주의에서 찾아낸 것으로 그 남자들을 유도할 수는 없었을지라도 그렇게 하려는 시도, 이 변증법의 일부로 남으려는 시도는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신나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유**비 2026.04.16.
p.492
종이 노트가 디지털 도구보다 유리한, 특히나 효과적인 학습 도구가 된 다는 사실을 보여준 신경학 연구자들도 있었다.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강 의 내용을 노트북 컴퓨터에 필기하는 학생들은 펜과 종이로 기록하는 학생 들만큼 잘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편으로는 인터넷이 제공하 는 집중을 방해하는 유혹거리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키보드 타이 핑이 새로운 정보를 기억으로 암호화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인 방식인 다른 표현으로 바꾸고 요약하고 개념도를 만들기보다 들리는 대로 그냥 받아 적도록 부추기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래서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타자를 칠 수 있는 것이다. 화지를 따라가면서 들리는 말을 그대로 타이핑하여 기록하는 것이 가능할 때 학생들은 바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속도가 느린 펜이나 연필을 사용할 때는 듣는 내용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정리하고, 축약하고 구조화하는 대안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훨씬 더 나은 학습으로 이어진다.
유**비 2026.04.16.
p.491
2014년 벨기에의 뢰번대학교 리베카 체임벌린 Rebecca Chamberlain 박사가 이끈 연구팀은 예술가들의 뇌와 일반인들의 뇌 사이에 물리적인 차이가 있는지 탐색하기 위해 44개의 머릿속을 들여다보 았고, 눈에 띄는 결과를 내놓았다. 첫째로, 연구진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림 실력은 우내측전두회 right medial frontal gyrus 의 회백질 증가와 밀접한 상관관계 가 있었다... 소뇌의 좌측 전엽 에 회백질이 상당량 증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그저 그림에 소질이 있을 뿐인 취미애호가들의 뇌와 전업으로 훈 련하면서 시간을 보낸 이들 간의 차이를 보았다...예술가가 그림을 그릴 때 뇌의 특정 영역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영역들을 영구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보디빌더가 근육을 축적하듯 회백질을 축적하면서 말이다.체임벌린 연구팀은 다른 연구들과의 비교를 통해 사실상 6개월 훈련은 이러한 회백질의 증강에 불충분하고, 3년은 연습하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려야 그렇게 된다고 상정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3~5년 동안 도제생활을 했다.
유**비 2026.04.16.
p.452
카그라 망상 Capgras delusion"...섬뜩한 기억인 가장 흔한 망상은 간호사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거예요."산소호흡기에 의지했던 환자의 무려 80퍼센트가 그 같은 트라우마적인 기억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온 연구조사도 존재한다.크리스티나 존스는 10년 동안 이 같은 환자들을 상대했다. 그러다가 스톡 홀름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 처음으로 환자일기patient diary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정말 적절하게도 덴마크에서 유래한 발상이었다. 1970년대에 이미 덴마크 간호사들은 환자들이 집중치료를 받는 것과 더불어 집중치료 에서 회복되기도 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환자들이 경험을 이해하도록 돕는 한 가지 방법으로 환자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들이 다름 아닌 그들이었다. 이들은 아주 아름다우면서 간단한 관행을 고안했다. 즉, 날마다 간호사 가 환자들이 무엇을 했는지, 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들이 어떠한 지 알려주는 일기를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쓰는 것이다. 한 간호사가 표현한 바에 따르면 "우리는 환자의 입장이 되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가 생각하기에 환자가 지금 그 일을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지 묘사하려고 노력한다." 이 일기에 의료 정보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그보다 으뜸이 되는 기조는 공감이다.그 일기를 통해 파편화된 기억을 이어 맞추고, 몸에 생긴 변 화를 설명하고, 자신의 병과 치료에 관한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다. 로즌 이 혼수상태와 약물, 질병이 축적해놓은 "의식의 충들"이라고 표현하는 것 을 파나갈 수 있는 환자-독자는 망상을 해독하여 본인의 생생한 기억과는 정반대로 그들을 돌본 간호사들이 실은 자신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 실을 확인할 수 있다... 스웨덴의 의사는 이러한 활동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시적으로 규정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유**비 2026.04.15.
p.380
버지니아 울프는 어릴 때부터 훨씬 더 부지런히 노트를 썼다. 그중에는 일련의 "독서 노트" 도 있었는데, 자신이 쓴 책이 아니라 자신이 읽은 책을 줄곧 기록해둔 것이 었다. 이처럼 독서 노트를 쓴 데는 실질적인 목적이 있었다. 울프는 수십년 동안 <타임스 문예 부록Times Literary Supplement>에 서평을 썼기 때문이다.즉, 그 같은 습자책 29권 중 1919년에 작성한 셋째 권에서 그는 마감일을 맞추 기 위해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대니얼 디포의 소설을 "펜과 노트를 두고 진지하게" 읽은 일을 기록한다. 저마다 특정한 주제를 다룬 스크랩북 과 노트도 있었다. 게다가 제임스와 달리 울프는 집필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는 것에 더해 실제로 노트에 작품 초안을 작성했다. 가령 《파도The Waves≫ 는 작은 하드커버 노트 7권에서 생명을 얻었는데, 그 노트 안에서 빈번하게 철자가 수정된 울프의 만년필 선들은 지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삐뚜름하게 올라가 있다.
유**비 2026.04.15.
p.370
경찰수첩에 관한 사연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증인 면담, 증거 수집 등등에서 노트가 제몫을 하는 체계적인 범죄 적발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내게 되리라고 짐작했다. 내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순경들 이 쓰던 수첩과 관련하여 내가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그것이 애초에 수사도구로 전혀 의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수첩은 경찰관에 대한 통제와 관련되어 있어요"라고 경찰 연구에 수년 을 바쳐온 학자 크리스 윌리엄스 Chris Williams이 말한다.... 순경들은 주로 야간에 순찰하는지라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기에(분명 따스한 난롯가나 편안한 침대는 정말이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을 테니) 항상 노트 한 권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지정된 주요 지형지물을 지날 때마다 진행 상황을 기록했다. 경사의 역할은 그보다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주기적으로 순경들을 멈춰 세우고는 그들이 정직하게 기록했는지 확인한 다음 부서 하는 것이었다. 순경이 순찰을 마무리하고 경찰서로 복귀하면, 당직 경찰관이 그가 임무 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첩을 재빨리 점검하기도 했다. 이러한 감시 체계는 1920년대에 경찰 전화 박스가 도래할 때까지 약 80년 동안 이어졌다. 이 시점부터 순경들은 30분마다 전화를 해야 했다.
유**비 2026.04.15.
p.366
...이 같은 일기는 대다수가 시간의 힘을 견뎌내지 못했다. 그 시절의 사진 한 장을 보면, 한 무더기의 노트가 절실히 필요한 열기를 위해 태워지기를 기다리며 난로 옆에 쌓여 있다.희망을 몽땅 잃어버린 사람들조차 증언으로써 일기를 썼다. 아우슈비츠에서는 유대인 수용자들로 구성된 존데르코만도Sonderkommando 특수부대가 새로 도착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안내하고, 희생자들의 소지품을 분류하고, 시체의 옷을 벗겨 화장장에 집어넣는 일을 맡았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한 범죄의 목격자이자 산업화된 살인에 포위되었던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서 증언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다. 그리하여 일부는 당장 죽을 각오를 하고서 회수한 노트나 종잇조각에 자신들이 경험한 일을 기록한 다음 깡통에 넣어 화장터 마당에 묻었다. 잘멘 그라도프스키Zalmen Gradowski는 그들의 동기를 설명해놓은 노트 한 권을 은닉했다. "이 문서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역사학자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담겨 있다"라고 그는 썼다. "우리 존데르코만도들은 거역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위협하면서 우리에게 강제로 부과한 끔찍한 노동을 끝내기를 바란 지 오래다. 우리는 위대한 공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는 뉴욕에 있는 삼촌의 주소로 이 노트를 끝맺었다.
유**비 2026.04.15.
p.364
이즈음 일기 쓰기 습관은 이미 완전히 국제적인 것이 되어 있었다. 오랫동안 예상되었던 전쟁이 마침내 1939년에 발발하자 수많은 유럽인들은 자신이 알던 세계가 거꾸로 뒤집히는 과정에서 직접 본 것을 종이에 펜을 갖다 대고서 기록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일기 작가 중 다수는 유대인이었다. 나치 박해의 매 단계마다 희생자들은 펜을 들었다. 대체로 자신의 동시 발생적 기록이 장래에, 즉 이 광기가 끝났을 때 증언이 되리라는 의도를 품고 있었다. 히틀러가 집권할 당시 이미 50대였던 드레스덴의 교수 빅 토어 클렘페러 Victor Klemperer ...유대인 시민에 속했다. 그는 이렇듯 점증 하는 억압을 13년 동안 상세히 기록했다...'유대인의 집Jew's House' 에서 지냈다. 강제노동에 시달리면서 드레스덴의 유대인 인구가 강제 추방에 따라 점차 줄어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클렘페러는 공책에 이 모든 것을 기록하면서 나치의 왜곡된 언어를 면밀히 검토하고, 후대를 위해 그 부당함을 서술했다. 1942년 9월 그는 "그것이 15b번지 유 대 힘이 미치는 곳에 있는 한, 카스파어 다피트 프리드리히가 15번지 유대인의 집과 이곳의 수많은 희생자는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적었다... 클렘페러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1960년대에 세 권의 책으로 출간된 그의 일기는 나치 시대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주요한 자료가 되었다.
유**비 2026.04.15.
p.350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섞여 있는 이 일기들은 도덕관념, 결혼생활, 출산의 위험성, 위안이 되는 가족, 농장·교구·도시의 일, 정치적 소요, 내전, 애국심, 역병, 질병, 의학, 미신, 해몽 같은 주제들을 아울렀다. 이렇듯 내용의 범위가 다채로웠음에도 종교 갈등만큼은 한결같았다. 다시 말해 영국국교회 신자 들과 청교도들은 불화했고, 유대인과 가톨릭교도는 적극적으로 박해받았으 며, 아무도 퀘이커교도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코 사라지는 법이 없는 한 가지 주제로, 부부갈등을 기록하는 데 일기장의 지면을 사용할 수 있 음을 수많은 일기 작가가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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