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의 뒷면을 읽는 즐거움
『클래식 오디세이아』 1·2권을 읽고
음악을 들어 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스피커 앞에 앉아 케이블 하나 바꾸느라 밤을 새운 적도 있다. 그런데 정작 그 소리가 어디서 왔는지는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소리의 질감에는 예민했어도 음악의 내력에는 무심했다. 『클래식 오디세이아』 1, 2권을 읽는 내내 그 무심함을 들킨 기분이었다. 책은 우리가 아는 상식을 뒤집으며 시작한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그렇다. 모차르트가 바흐를 자기 음악의 뿌리라 한 말이 돌고 돌아 와전된 것이란다. 클래식이란 말도 처음엔 모차르트 시대의 음악만 가리켰다. 교양이랍시고 외웠던 지식이 한 줄에 무너진다. 하지만 이 책은 상식을 깨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저자는 클래식을 유리장 속 유물로 두지 않는다. 지금도 작동하는 음악의 문법으로 본다. 가야금을 평균율로 조율하고 국악 관현악단에 지휘자를 세우는 것도 서양 클래식이 남긴 영향이라는 대목에서는 뜨끔했다. 불편하지만 사실이다. BTS와 블랙핑크의 〈Shut Down〉, 《오징어 게임》에 불려 나온 바그너가 한자리에 앉는 이유다. 오케스트라의 기원을 따라가다 AI가 음악을 배우는 이야기에 닿으면 클래식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에서 가장 반가웠던 건 음악가를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다. 하이든은 지방 귀족과 계약서를 쓰고 일한 하인이었고, 모차르트는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한 프리랜서였다. 쪼들리고, 사랑받으려 애쓰고, 권력 앞에서 주눅 들면서도 속으로는 그들을 싫어했던 사람들. 저자는 그 평범한 서민의 삶이 클래식을 살아남게 한 조건이라고 말한다. 전쟁 영화에 클래식이 자꾸 불려 나오는 까닭도 거기 있다. 공포를 아는 사람이 쓴 음악이니 공포에 어울릴 수밖에 없다. 신화가 된 이름 뒤에서 생계를 걱정하던 인간을 찾아내는 일. 예술을 대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권의 머리글 제목은 '클래식은 촉수가 많다'. 과연 그렇다. 창작의 순간과 말러의 분열된 내면 같은 음악의 안쪽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쿤데라와 하루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로,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의 철학으로, 평균율과 엔트로피와 뇌과학으로 뻗어 간다. 컴퓨터가 되살린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 음악회장이 되어 가는 자동차까지 나오면 음악이 닿지 않는 곳이 있기는 한가 싶다. 서번트와 장애를 가진 음악가를 다룬 장에서는 음악을 잘하는 데 정말 중요한 것은 장애의 유무가 아니라 의지라는 결론에 오래 머물렀다. 가장 오래 붙든 대목은 루트비히 2세와 히틀러였다. 저자는 이 둘이 바그너의 메시지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화려한 무대에만 빠졌다고 짚는다. 피타고라스가 커튼 뒤에서 강의한 까닭도 같다. 메신저에 홀려 메시지를 놓치는 일. 오디오에 미친 사람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기에 취해 정작 음악을 잃어버린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오디오는 음악과 기기, 인간이 함께 굴러가는 세 바퀴라는 게 내 오랜 생각인데, 이 책은 그 균형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되짚게 했다. 이 책이 미덥게 읽히는 건 잡학을 나열하지 않아서다. 음악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본 책은 많았어도 음악학자가 안에서 바깥을 내다본 책은 드물었다. 그 드문 시선이 여기 있다. 심미안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차이를 알아보는 경험이 쌓여야 생긴다. 이 곡이 어떤 시대, 어떤 사람의 삶에서 나왔는지 알고 나면 같은 소리가 다르게 들어온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찍는지 아는 사람의 렌즈는 다르다. 값비싼 앰프가 채워 주지 못하는 몫을 이 책이 채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술술 읽히면서 정보도 넉넉한 책이 되기를 걱정스레 바랐다.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만한 정보를 이만큼 쉽게 풀어내는 건 아는 게 깊지 않고는 못 하는 일이다.
클래식이 멀게만 느껴졌던 사람에게 권한다. 오래 들어 온 사람에게는 더 권하고 싶다. 두 권을 덮고 나면 늘 듣던 음반을 처음부터 다시 걸어 보고 싶어진다. 책값은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