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과의 첫만남은 수 해전 주말, J와의 약속날이었다. 약속장소는 서점. 서점에 볼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서점 로비가 넓고 또 냉방으로 시원하기도 하고 그리고 책들도 한 번 둘러 볼 수 있어서 나에게는 일석삼조는 족히 될 만한 약속장소이다. 그러다가 눈에 띄 이 책. '이제 막 청춘의 꽃가지를 교단에 올려놓는 모든 풋내기 교사들에게....(이하생략)' 책 뒷면에 적혀있던 소갯글에 냉큼 이 책을 집어들었다. 우리는 '이제 막' 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찌되었건 우리는 여전히 터지지 않은 봉오리를 간직한 신참내기 교사였으니까.
이 책은 J에게 주었다. 그런데 J가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읽지 않았나보다. 가끔 나는 책을 선물하며 아주 작은 포스트잇에 "XX야, 이 책 어떠니? 이 부분 읽을즈음엔 내 생각도 한 번 해주고.... 쭈욱~ 열심히 읽어~" 뭐 이런 따위의 메모를 붙이곤 한다. 그러면 책을 선물하고 얼마지 않아 "책 너무 좋다, 야" 라던가 "요즘 뭐하니?" 하며 문자나 전화가 오기 마련이다. 어떤 책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연락이 오기도 하고, 더러 아무 연락이 없기도 하다. 이런 장난질(?)은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끔 스케치북에 "사랑하는 XX야, 여기 그림을 그리려고 펼쳤겠지? 그림 그리기 전에 선생님께 와서 뽀뽀 한 방 날려줘" 이런 알콩달콩한 메모들을 적어둔다. 그리고 내게 달려와 느닷없이(?) "선생님 사랑해요" 하며 뽀뽀를 쪽 해주기도 한다.
(가끔 나는 지나친 한담을 늘어놓는게 문제다.) 그러면 책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은 '빈센토' '성탄절의 아이' '종달새' '드미트리오프' '집 보는 아이' '찬물 속의 송어' 이렇게 6편의 중단편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있는 곳, 교실 공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풍경을 자아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책을 펼치며 가장 처음 만난 '빈센토' 에는 완전 100% 공감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작가가 필시 교사시절을 가졌으리라 생각했는데 끝 부분 작가과 작품 소개를 보니 역시 그랬다. '빈센토'는 아이들의 첫 등원을 그린 책인데 입학식이 있는 3월 한 달간의 교실 모습이 꼭 이러하다. 우는 아이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아이들, 경기하듯 드러눕는 아이들. 7세반은 덜하지만 5세반은 그야말로 여기 저기 곡(哭)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 일과를 마치고 나면 교무실에서 의례 하는 이야기가 '아, 누가 보면 우리가 애들을 잡아먹는 줄 알꺼야' 하며 한 숨을 내쉰다. 이 '빈센토'는 그런 첫등원의 풍경이 얼마나 잘 살아있었는지.
그리고 두 번째 '성탄절의 아이' 역시 우리 아이들 그리고 내 교실의 이야기다. 물론 이야기속처럼 교사와 아이들간의 물질적인 교류가 많지는 않다. 이를테면, 학부모님의 선물같은 것은 대개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면 무어든 주고 싶어 한다. 이걸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솔직한지 알 수 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다. '이걸 주면 날 더 좋아하겠지?' 하는 배후의 계산이 전혀 깔려있지 않은 솔직한 감정이다. 그런 아이들이 가져오는 것이 편지, 색종이로 접은 것, 그림, 스티커, 학종이 같은 것들이지만 말이다. '성탄절의 아이' 역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생님께 무언가 주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었다.
세번째 '종달새'는 지금의 우리 반 아이와 참 닮았다. 이 아이 역시 정말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하는 아이인데 가끔 교실에서 노래를 할 때면 정말 소름이 돋으면서 머리칼을 쭈뼛하게 만드는 아이다. '종달새' 역시 노래를 잘 하는 아이의 모습을 담았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란 해맑기 그지 없다. 피아노를 치는 나는 슬쩍슬쩍 눈물을 흘리는 졸업식 노래마져 그들의 입에서는 경쾌하고 밝기만 하다. "얘들아~ 감정을 담아서~" 해보면 아이들은 목소리만 작아질 뿐 슬픈 곡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노라면 동요는 희망차야 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한없이 즐거워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네번째 '드미트리오프'는 아이의 부모가 촛점이다. 교사를 곤혹스럽게 하는 학부모들. 그 분들에게는 교사란 그저 반나절 내 아이를 잘 봐주는 사람 정도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다. 메모나 전화나 편지나 면담의 과정은 필요치도 않은 듯 다이렉트콜을 날린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원장실 더 나아가 교육청의 수화기에는 담임교사에게 불만이 넘쳐나는 그들의 볼멘소리로 귀가 따갑다. 물론 원성을 쏟아놓는 그들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는 친절과 사랑으로, 학부모들에게도 이 못지 않은 정성을 쏟아주어야 하고 '내가 당신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는 느낌을 가슴판에 아로새겨주면 어떤 문제도 문제 삼지 않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아이들과 학부모를(또 교장, 원장을 ^^) 동시에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드미트리오프' 에서는 이미 교사들에게는 피해가고픈 대상이 되어버린 이런 학부모에게 지레 겁내지 않고 그 아이의 장점을 발견해주고 용기있게 나아가는 교사의 모습도 담고 있다. 그래, 학부모님이나 아이들이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사랑' 이다. 그것일 뿐이다.
다섯번째, '집보는 아이' 는 몇 해전이 떠올랐다. 우리 반에는 해마다 고아원에서 오는 아이들이 서넛 있었다. 시설에 보호중인 7세 유아들에게는 유치원 교육비가 전액 무상이다. 7세반 담임인 나는 버려졌거나 부모가 없거나 혹은 부모가 보호하고 있지 못한 아이들을 많이 맡아왔다. '집보는 아이'는 내가 맡아온 아이들처럼 고아는 아니지만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워 학교를 더 다니지 못하고 집을 보아야 하는 딱한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교사라면 그들을 정말 품어주어야 하고 부모의 따뜻한 가슴을 나눠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우리 반 아이가 한 가슴 아픈 이야기에 나는 울고 말았다. 그래서는 안되었는데....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전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까 엄마가 없더라고요. 아빠가 엄마는 집나간거래요. 근데 백밤을 자도 아빠는 일어나니까 계속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라는 말에 나는 정말 울고 말았다. 그러나 결손가정의 아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아서는 안되지만 역시 적지않은 문제들을 일으키는 건 사실이다. 과격하고 폭력적이거나 거짓말이나 도벽을 보일 확률이 높다. 이 말에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것은 물론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조금 높은 확률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 번은 교실에서 자지러지는듯한 울음소리가 나서 그 곳으로 가보았더니 바늘로 아이를 마구 찌르고 있는 그 아이를 발견했다. 그 바늘은 교실 환경판에서 빼낸 시침핀. 그 아이를 호되게 야단쳤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면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이라 안스럽기 그지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그 어떤 졸업생보다 인사를 잘 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교사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을 넘을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그 사랑을 흉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 '찬물 속의 송어'는 젊은 여교사에게 연정을 품게 되는 한 어린 소년이 등장한다. 첫사랑을 말하라면(짝사랑도 첫사랑이 된다는 전제하에) 학창시절 선생님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런 기억이 있고. ^^ 여교사가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떠나는 기차를 자전거로 쫓아오며 그 무릎위에 들꽃으로 묶어만든 꽃다발을 던져주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젊은 시절 피끓는 연인에 대한 사랑에 비할 수야 있겠냐만은 사제지간의 사랑은 항상 포근하고 따사로운 것인가 보다.
교사는 한 없는 기쁨과 설레임을 가져다 주는 이들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해야 할 것이며 그 만큼의 사랑으로 화답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유난히 까만 빛의 눈동자 아이들에게 '솔직한 사랑'을 이토록 누리는 직업이 몇이나 되겠는가? 책을 덮으며 아이들 앞에서 허둥대던 초년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름과 동시에 조금은 그들의 사랑에 안일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