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출판인, 작가, 편집자, 번역가, 교사, 연출가. 1891년 3월 28일에 독일 올덴부르크 인근 키르히하텐Kirchhatten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요한 하인리히 주어캄프Johann Heinrich Suhrkamp.
그의 부모는 그가 농장을 물려받길 바랐으나 그는 교사가 되길 원했다. 열네 살이 된 1905년에 독립하여 스스로 학비를 벌며 올덴부르크 사범학교Oldenburger Lehrerseminar 과정을 이수했다. 1911년에 졸업한 후 1914년까지 브레머하펜 등지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대학입학 자격시험Abitur에 합격했다.
1913년에 교사인 이다 플뢰거Ida Ploger와 결혼했다.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하여 보병 및 척후대장으로 복무했다. 전쟁에서 용맹함을 보여 호엔촐레른 왕가 기사십자훈장Ritterkreuz des Koniglichen Hausordens von Hohenzollern을 받았으나 1918년에 요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신경쇠약 증세를 보였다.
1918년에 이다와 이혼한 후 1919년에 이름가르트 카롤리네 레만Irmgard Caroline Lehmann과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1919년에서 1921년까지 오덴발트, 비커스도르프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하이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뮌헨 대학에서 독문학과 언어학을 수학했다. 이 무렵에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1921년부터 1925년까지 다름슈타트 주립극장에서 공연예술 자문 및 연출가로 활동했다. 1923년에서 1924년까지 오페라 가수 파니 클레베Fanny Cleve와 세번째 결혼 생활을 가졌다. 1925년엔 비커스도르프 자유 학교 공동체로 돌아가 교육 책임자로 일했다. 1929년에 교직을 완전히 떠나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베를리너 타게블라트Berliner Tageblatt》 및 월간지 《우후Uhu》에서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및 잡지 편집자로 활동했다.
1932년에 명문 출판사 S. 피셔 출판사S. Fischer Verlag의 핵심 문학 잡지 《디 노이에 룬트샤우Die neue Rundschau》의 편집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출판인으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1933년에 S. 피셔 출판사의 이사회 멤버Vorstandsmitglied로 임명되었고, 1934년에 설립자인 자무엘 피셔Samuel Fischer가 사망하자 사위인 고트프리트 베르만피셔Gottfried Bermann-Fischer와 함께 출판사를 공동 경영했다.
1935년에 건강 문제로 배우에서 은퇴한 안네마리 자이델Annemarie Seidel과 네번째로 결혼했다.
1936년에 나치 정권을 피해 베르만피셔가 빈으로 망명하자, S. 피셔 출판사를 단독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에 헤르만 헤세를 처음으로 만났다.
1942년에 나치 정권의 정치적 압박으로 출판사 이름을 자신의 이름을 딴 주어캄프 출판사Suhrkamp Verlag로 변경했다. 1944년 4월 13일에 반역 및 대역죄Hoch- und Landesverrat 혐의로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1월에 베를린 근교의 작센하우젠 강제 수용소Konzentrationslager Sachsenhausen로 이송되어 심각한 폐 질환을 앓다가 2월 8일에 극적으로 석방되었다. 조각가 아르노 브레커, 작가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등 문화계 인사들이 석방을 위해 나치 고위층에 탄원했다. 종전 후 10월 4일, 영국 군정청으로부터 베를린에서 출판사 재개 허가를 받은 최초의 독일 출판인이 되었다.
1945년부터 뉴욕에 체류하던 베르만피셔와 공동으로 출판했으나 서로의 의견 충돌로 분쟁이 발생하여, 1950년에 헤르만 헤세 등의 지원과 스위스 라인하르트 가문의 투자에 힘입어 프랑크푸르트에서 주어캄프 출판사를 공식적으로 설립했다. 브레히트와 헤세를 포함한 기존의 S. 피셔 소속 작가 마흔여덟 명 중 서른세 명이 주어캄프로 이적했다.
1951년 헤르만 헤세 전문가 지크프리트 운젤트Siegfried Unseld가 수석 편집자로 합류했다. 문학과 학술 분야를 아우르는 보급판 문고 주어캄프 총서Bibliothek Suhrkamp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어캄프 출판사는 브레히트와 헤세 이외에도 테오도르 아도르노, 사뮈엘 베케트, T. S. 엘리엇, 막스 프리쉬, 한스 노사크, 에른스트 펜촐트, 루돌프 알렉산더 슈뢰더, 마르틴 발저, 카를 추크마이어와 같은 작가의 작품들을 출간하여 서독 최고의 출판사로 성장했다.
1953년에 부인 자이델의 소유였던 쥘트Sylt 섬의 별장을 언론 재벌 악셀 슈프링어Axel Springer에게 4만 5,000마르크에 매각하고 그 수익으로 마르셀 프루스트 전집의 독일어판 출판권을 구입했다. 1956년에 독일 연방공화국 공로 훈장 1등장Verdienstkreuz 1. Klasse, 프랑크푸르트시 괴테 명예 메달Goetheplakette der Stadt Frankfurt am Main을 받았다. 1957년에 독일 어문학 아카데미Deutsche Akademie fur Sprache und Dichtung 명예 회원에 위촉되었다. 1958년엔 독일 연방공화국 대공로 훈장Großes Verdienstkreuz을 받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폐 질환으로 내내 시달렸던 그는 1959년 3월 31일, 프랑크푸르트대학병원에서 향년 68세로 타계했다. 자신의 유해를 북해 쥘트 섬 해안에 뿌려달라고 유언했으나 규정상 불가하여, 카이툼Keitum의 성 제베린 교회St. Severin 교회 묘지 벽에 봉안되었다. 그의 사후에는 지크프리트 운젤트가 뒤를 이어 출판사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