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그는 저자의 멘티로, 대대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6대째 기독교인이다. 어릴적 어머니로부터 고조 할머니, 증조 할머니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고조 할머니는 평양에서 큰 여관을 운영하셨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던 할머니는 까만 가방(당시 전도인들의 트레이드 마크)을 들고 다니시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셨다고 한다. 아픈 사람들이나 귀신들린 사람들을 위하여 심방 가서 땀과 눈물로 기도해 주시곤 하셨다. 그랬던 신앙 유산이 증조 할머니에게서 할머니에게로, 그리고 공저자에게로 이어졌다.
그의 아버지는 미래형 하나님나라로 옮겨가시기 전까지 트레일러 운전을 하셨는데 불규칙한 근무시간, 육체적 피로는 평균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예배를 단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반평생을 주일학교 교사로 섬겼으며 아들인 공저자에게는 ‘오직 말씀’,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이라는 핵심가치를 놓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곤 했다고 한다.
그에게 자그마한 소원이 있다면 장차 미래형 하나님나라에 가서 할머니들을 만나 1900년대 당시의 평양 상황, 그리스도인들의 모습, 초대교회의 모습들을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동시에 장대현 교회에 대해, 당시 평양에서 활동했던 닥터 셔우드 홀 가(家)(Dr. Sherwood Hall(1893-1991의 사역에 대하여도 묻고 싶다. 또한 아버지를 만나 새벽마다 만났던 주님에 대하여도 꼭 여쭤보고 싶다고 한다.
의과대학 시절, 그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활동했다. CCC에 입문하게 된 것은 공저자가 고등학생 시절, 당시 대학생이었던 누나(CCC선배로서)가 몽산포 여름 수련회와 거지 순례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였는데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의과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찾아갔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CCC 대표 순장을 맡게 되었고 고신의대 기독학생회 대표를 맡아 의료선교에도 힘썼다. 동시에 당시 영성과 전문성을 가진 신앙선배들을 만나 교제하며 그들을 닮으려고 애썼다.
의과대학 졸업 후, 남들이 좀처럼 가지 않으려는 외과를 택했다. 돈과 명예를 멀리하라시던 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현재 동료(소아과 의사)이자 아내, 슬하에 3남매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어가고 있으며 의과대학 교수로서 교육자로, 성경 교사로, 의료선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수년 전, 저자이신 멘토 이선일 선생님을 만나 주니어 교수들로 구성된 성경말씀 연구팀에서 정기적으로(수요일마다) 말씀과 교리 공부를 해오고 있다.
개념화 작업(Conceptualization)을 통한 말씀과 교리에 대한 공부와 더불어 정경 66권의 전체 흐름과 개혁주의적 정통교리를 통한 디테일의 맛을 느끼며 비로소 말씀의 단맛을 보고 느끼고 있는 중이다. 점점 더 깊고 보다 더 넓은 곳으로 가고픈 또 다른 갈증도 있다.
그는 대대로 이어져 온 빛과 소금의 삶을 원한다. 그리스도의 향기 나는 삶을 원한다. 그런데 현실이 녹녹치 않음을 느끼며 ‘오직 말씀’, ‘다시 말씀’을 붙들며 몸부림친다. 이 일에 멘토이신 저자는 권면과 도전을, 때로는 따끔한 채찍을 드시곤 한다.
이번에 로마서 장편(掌篇) 주석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의 핸드북을 공저하는데 나선 것은 멘토의 무서운 눈빛 때문이다. 그런 공저자는 실력이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으로 동참하여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