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인연은 꽤 특별하다. 초등학교에서 대학, 사법연수원과 군법무관 훈련소에 이르기까지 같은 시기, 같은 공간에 있었다. 같은 학교를 다녔고, 넓게 보면 같은 법조계에 있었지만, 우리는 마치 마구간에서 나온 말처럼 서로 다른 길을 달려왔다. 그러던 중 그가 책을 썼다며 짧은 추천사를 부탁해왔다. 나는 오히려 긴 글이라면 쓰겠다고 역제안했다.
어떤 책이든 그 안에는 사람의 인생이 담긴다. 나는 오랜만에 저자의 삶을 따라가며,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프롤로그에 나와 있듯, 그는 편한 길보다 돌밭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을 재능을 여러 분야에 펼쳤고, 익숙한 것을 답습하기보단 매번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그에게는 글쓰기도 또 하나의 도전이었을 것이다.
이 책이 저자에게 하나의 터닝 포인트가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앞만 보고 달리다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길 위에 선다. 하지만 그는 이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 시작한 듯하다. 단순한 개인적 회고가 아니라, 그가 쌓아온 경험을 다음 세대에 건네기 위한 선택이었다면, 그게 바로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도전과 시행착오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나는 이 책에 그 마음이 분명히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로펌 변호사로 십수 년 근무하던 시절, M&A 팀에서 일할 기회가 있었다. 그 팀에서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랩쌍워런티’였는데, 처음엔 무슨 뜻인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Representations & Warranties’를 줄여 빨리 발음한 것인데, 이 책에서도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진술 및 보증’ 조항이 그것이다. 당시엔 생소했지만, 나중에야 이게 민법에서 말하는 ‘하자담보책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단지 대상이 물건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었다. 민법 교과서나 수업 어디에서도 하자담보의 대상이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진작 그렇게 배웠더라면, 그 딱딱한 조항들도 훨씬 실감 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걸 ‘중고 기타를 사고팔 때’의 상황에 빗대 설명하니, 정말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든 기타, 팝송 등의 비유는 그가 워낙 다양한 분야에 관심과 재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Wind Beneath My Wings〉의 가사에 빗대어 창업자와 투자자의 관계를 설명한 대목은 그가 아니면 감히 흉내 낼 수 없다. 차갑고 건조한 계약의 언어 속에서도, 저자는 자신의 취향과 삶의 결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사람이다.
창업자, 투자자, 그리고 변호사는 각기 링 안팎으로 나뉘어 존재한다. 그런데 창업과 투자라는 링 안에서 치열하게 일해본 사람이, 다시 변호사의 자리로 돌아와 그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초보자도 이해할 수 있게 가상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돈에 영혼이 있다”라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투자자의 고뇌를 말하는 거라면 수긍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런 고뇌를 끝까지 경험한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실전 감각이 담겨 있다. 법률 의견서만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이 책은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제 막 사회에 나온 변호사들이나 투자회사 직원들, 그리고 창업자들에게 더 필요할 것이다. 투자와 창업 생태계에 들어선 이들에게 이만한 실전 교과서가 또 있을까 싶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