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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자라고 공부한 고향 부산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대학에서 교양심리학을 가르치다 우연히 KBS 극본공모에 당선, 100여 편의 단막극을 썼다. 평범한 주부의 충동적인 살인을 통해 왜곡된 인간 내면을 서늘하게 파고든 첫 소설 『선량한 시민』으로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60년에 걸친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를 미스터리와 결합한 장편소설 『2월 30일생』(2014), 연하의 남자와 기이한 사랑에 빠진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소설 『네이처 보이』(2015)를 펴냈다.

작품 밑줄긋기

호* 2026.03.15.
바람둥이처럼 다른 이야기로 갔다가 슬며시 다시 돌아와 고치고 또 고치다 보니 7년이 지나가버렸다. 이제는 정말 헤어질 때다. 처음 내가 이 이야기에 대해 가졌던 열정이나 확신은 마치 오래 사귄 연인을 대할 때처럼 닳고 무뎌져서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그간 나도 변하고 이 책도 변했다. 처음부터 다 뜯어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완성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끝내는 것이다.
호* 2026.03.15.
화인은 홍진이 자신을 일부러 함정에 빠뜨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떠오르는 이름이 그의 이름뿐이었을 것이다.
호* 2026.03.15.
추측해보건대 소명이 죽은 장소에서 찾았을 것이다. 화인은 자신이 성모상 이야기를 홍진에게 해줬던가, 하고 생각해봤다. 술에 취해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도 했던 것 같았다. 했을 것이다. 아니, 했다.
호* 2026.03.15.
“차를 몰아.” 홍진은 가게로 들어가 차 키를 가져왔다. 상가 뒤편 공터에 세워둔 트럭은 앞 범퍼가 다 망가져 험악한 몰골이었지만 홍진과 이지하에 비하면 지극히 정상으로 보였다. 홍진과 이지하는 차로 기어 올라갔다.
호* 2026.03.15.
“소명을 죽인 일이 다시 네 정신을 와해시킨 거야. 넌 소명과 이야기하고, 소명이 너한테 복수를 해달라고 말한 것처럼 생각하는데 전형적인 ‘반동 형성’ 과정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을 정반대로 왜곡 해석하는 거. 그래서 넌 영수증 하나만 들고 나를 상대로 그 난리를 친 거야.”
호* 2026.03.15.
“그래서? 소명을 죽인 범인이 누구라는 거야?” “소명을 죽일 수 있었던 인간은 딱 하나야.” “누구?” “바로 너.” 홍진은 기가 막혔다. 이지하는 진지했다.
호* 2026.03.15.
홍진이 그를 동정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그가 죽기 전에 그녀는 서둘러야 했다.
호* 2026.03.15.
“축하해. 넌 성공했어. 진짜 축생도를 만들었어.” 이지하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입가에도 피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죽어가는 중이었다. “죽는 마당에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말해봐. 네가 범인이지?” 홍진은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비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이지하는 허리를 숙이고 끅끅 우는 소리를 냈다. 홍진도 울고 싶었다. 펑펑 울고 다 끝내버릴 수 있는 일이었으면. 그 생각이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다른 생각들이 다 날아가버리는 것 같았다. 홍진은 점점 텅 빈 공백으로 변해가는 생각을 붙잡으려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호* 2026.03.15.
홍진은 안전벨트를 풀고 몸을 일으켜 이지하가 나간 조수석 문으로 기어 나왔다. 어떻게든 그를 잡고 있어야 한다. 무엇이 시작이고 무엇이 결말인지, 홍진이 올바른 판단을 했는지, 아니면 미친 것이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중요하지도 않다. 이대로 이지하를 놓치면 모든 것이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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