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독립선언서에서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아호는 지강(芝江)이다. 자는 경조(景朝) 또는 길중(吉仲)이다.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1862.?4월 29일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영계리에서 아버지 상태(相泰), 어머니 낭주최씨(郎州崔氏)의 3남 중 장남으로 출생
1866~1881. 5세에 시학(始學)하여 양사재(분원)에 취학 한문수학. 사서삼경을 비롯 유가 및 제서 섭렵, 불서·성경·고신도·음양·복술서 등 연구.
1882. 금강산, 구월산, 지리산, 묘향산 등 명산대찰 주유
1883~1893 자하도(紫霞島) 방문. 광주 무등산 증심사에서 잠심 명상. 교육사업에 종사. 계룡산 등을 주유하고 상경
1894. 탁지부주사(능주세무관), 보성·장흥 동학교도 수백 명 구출
1897.?능주세무서 사직. 중국 북경·천진·산동 등 유람.
1898~1902?도일하여 일본과 세계대세를 통찰하며 일본에 망명 중인 손병희·오세창·권동진의 권유로 동학에 입교하고 사생결맹(死生結盟)함.
1903.?‘진보회’ 결성. 부문(?文) 기초 손병희 명의로 정부에 제출
1904. 손병희 등 제씨와 ‘보국안민지책’, ‘진보회’ 4대강령 민중운동 제기
1905. 이준 등과 ‘헌정연구회’ 조직. <황성신문>에 ‘헌정요의’ 연재
1906~1907. ‘헌정연구회’를 ‘대한자강회’로, 다시 ‘대한협회’로 개편. 헤이그밀사 이준의 여비 변출. ‘국채보상운동’. 천도교 서북삼도교구관장
1908~1918. 천도교총부 현기과장, 법도사, 직무도사, 진리과장에 취임. 천도교교서 수권 저술. ‘이재명의사 이완용저격사건’ 교사혐의 피체 4개월 옥고. ‘사범강습소’ 개설. 보성전문중학·동덕여학교 등 경영. 교육진흥과 배일사상 고취. 경주 성지순례. ‘교리강습소’ 개설 배일사상과 애국정신함양. 호남학회 임시의장. 잠시 귀향 휴양. 노령·만주·중국·미주의 해외우국동지와 연락
1918. 손병희 선생과 밀의 독립준비를 정인보 외 3인에게 위촉
1919. 민족대표 33인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서대문 감옥에서 암살(향년 58세). 서울 수철리 공동묘지 안장
1922. 천도교 주관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덕리 달구산으로 반장
1962.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