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로서 제자의 연구를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늘 특별한 경험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처음부터 더 특별했다.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큰 조직을 이끄는 최고 경영자로서 이미 산업 현장에서 검증된 경력을 쌓아온 그가, 38년의 실전 경험을 학문적 언어로 승화시키고자 교수-제자의 연을 맺기를 청했을 때가 떠오른다. 평범한 교수로서 이토록 과분한 제자를 지도하는 일은 실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박사 과정을 지도하면서 저자가 써 낼 글은 단순한 경영서가 아닐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영서는 현장의 경험을 검증 없이 나열하거나, 반대로 이론의 늪에 갇혀 현실과 멀어지는 두 가지 함정 중 하나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경영학의 여러 이론과 모델들을 단순히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종합상사’라는 고유한 기업 맥락 위에서 그 이론들을 재구성하고, 자신이 몸소 겪은 거래와 투자, 사업 운영의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이론의 유효성을 검증하고 있다. 이는 오랜 실전 경험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며, 동시에 치열한 학문적 훈련 없이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의 결과물이다. 매우 드물지만 학문과 실무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는 경영서들이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의 핵심 통찰은 명쾌하다. 연결의 총량이 경쟁력이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폴리크라이시스(Polycrisis)로 대표되는 복합 위기의 시대에 한국형 종합상사의 다음 경쟁력은 병목이 형성되는 지점을 남보다 먼저 읽고 그 위에 규칙 · 자본 · 운영의 구조를 설계하는 데서 나온다. 저자는 이 명제를 단지 선언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LEAP×3S〉라는 정교한 전략 프레임워크로 구체화했다. 최고 경영자로서의 중책과 연구자로서의 엄격한 학문적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박사 학위 논문과 이 귀한 책을 완성해 낸저자의 지적 성실함과 집요함이 이 책의 모든 페이지에 녹아 있다. 한국 산업이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 경쟁력을 압축적으로 만들어 온 역사를 저자만큼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역사의 다음 장을 어떻게 써 나가야 하는지를 이렇게 체계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 책은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의 전략가와 실무자에게는 즉각 활용 가능한 인사이트를,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을 연구하는 학자와 연구자들에게는 이론과 현장이 교차하는 풍부한 사유의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부디 이 특별한 책이 경영계를 넘어 더 넓은 독자와 만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