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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실천문학》에 단편소설 「모두의 안녕」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작고 귀엽고 통제 가능한》, 앤솔로지 《무성음악》, 《전두엽 브레이커》, 《폴더명_울새》가 있다. 제14회 현진건 문학상 추천작에 선정되었다.

작품 밑줄긋기

r********8 2026.07.29.
p.37
도일은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우유를 부어놓은 것처럼 불투명하고 짙은 안개가 창문 앞까지 급습해 있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높이감이 없어져 4층인지 40층인지 알 수 없었다. 허공에서 위도 아래도 없이 붕 뜬 것 같았다. 도일은 창문을 열고 흰 벽 같은 허공을 향해 소 리를 질렀다. 나 여기 있다. 잠시 후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 려왔다. 나 여기 있다. 나도 여기 있다. 나도. 나 여기 있다. 그렇게 소리들은 새떼의 군무처럼 건물들을 오래오래 휘감 았다.
r********8 2026.07.29.
p.84
나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다리가 부서졌는지 일어날 수가 없다. 엄마가 떠올랐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을 잃을 텐데. 시간이 없다. 어떻게든 기억을, 기억을 해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잊기 전에 오늘을 기록해야 한다. 엄마가 준 책과 연필을 꺼냈다. 부은 손으로 연필을 쥐고 종이에 나는 쓰기 시작했다. 나흘 전 아침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흘 전 잠에서 깬 시각. 그때를 아침이라 부르기로 하자.
z******2 2026.06.01.
p.101
비가 온 다음 날 시멘트 바닥에 말라붙어 죽은 지렁이를 발견하고 햄스터는 기쁨에 차 냉큼 달려들었다.
r********8 2026.07.29.
p.149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건 힘든 일이었다.그렇게 부대끼며 살던 때에도 나우는 늘 혼자라고 느꼈다.일생의 한 시기를 빼고는 그랬다.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나우의 방에서 함께 살고 함께 아이를 낳은 여자였다. 세 명이 함께 있었지만 좁다고 느끼지 않았다.아이는 자신의 복제품처럼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아이가 아프면 자신도 고통이 느껴졌고, 아이가 기뻐하면 동시에 미소가 지어졌다.처음으로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감염병이 돌기 전까지는. 아파트를 흐르는 상수 도관이 오염되었고 나우가 멀리 조사를 나간 동안 좁은 방 으로 가득 찬 건물은 격리되었다.그것이 마지막이었다.여자와 아이는 감염되었고 사체조차 접촉이 불가했다. 어렴풋 한 기억으로 남은 그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그는 늘 혼자였다.
r********8 2026.07.29.
p.77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건장한 사람을 납치하여 뇌를 디 지털화하는 범죄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기술로는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수명 연장 기술은 지속적으로 발달해 영생에 가까운 삶이 가능해졌지만, 돈이 되지 않는 환자의 치료는 여전히 거부되는 것이 현실이다. 살아 있는 인간의 유기 뇌를 디지 털 뇌로 대체하여 로봇처럼 만든다는 것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는 사건이다. 그런 일이 용납될 리 없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인간성이 지상 최대의 가치로 추앙받던 시대는 지났다. 지구는 심각한 자원 부족에 시달리는 죽어가는 행성일 뿐 이었다. 그저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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