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의 시는 세계에 속삭이는 겹겹의 귓속말이다. 이 귓속말은 작고 여리게 들리지만, 이미지로 연결된 시어들이 주변의 사물과 만나며 에코처럼 연쇄적인 목소리를 얻는다. 어둑한 구석의 사물이 어떤 빛 하나에 비틀거리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에서 구멍이 생기고, 때로 그 구멍들에 숨이 가빠 오기도 하는 세계. 최윤정은 그 안에서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려 현혹시키기보다 주변의 대상들에게서 간극의 이미지를 가져와 작은 맥박들을 그러모은다. 그 미미한 맥박들이 시인의 목소리를 입으면서 오래도록 사계절을 물들이는 메아리로 변화한다. “반투명에서 불투명”으로(「은점까지 사라지기 전에」), “숨기는 것”이 “숨겨지는 것”이 되기도 하는(「빛의 곡면」), 그 변화를 감지하는 눈과 손길이 시 속에 가득하다. 이렇듯 자신의 감각을 미세한 파동으로 끌어올려 사물에게 귓속말을 건네는 시인. 시인의 문장이 덧씌워짐에 따라 그늘에 놓여 있던 사물들이 햇살과 바람에 출렁이고, “말을 걸면/답을 하는” 사물들이 생긴다(「슬픔의 생략」). 그럼에도 세계는 ‘나’와 대상들의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일치할 수 없는 것이 이 세계의 슬픔이자 그것을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는 ‘나’와 거리를 둔 채 존재한다. 시집의 제목처럼 “세 뼘 옆에서 책을 읽”거나 질문을 해도 대답하지 않고, 먼 곳에서 이쪽을 건너볼 뿐이다. “시공의 비약이 필요”한 때에도 ‘그’는 ‘나’와 화합하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그는 세 뼘 옆에서 책을 읽습니다」) 서로는 ‘사이’의 시공간에서 파동으로 서로에게 현존한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서 주파수를 맞출 뿐이지만, 이것은 또 다른 문장이 빈방에서 태어남을 의미한다. “사백 년째 백지 앞에서/사백 년째 방이 된 사람”처럼 최윤정에게는 끝의 자리에서 다시금 시작하는 일이 시를 쓰는 일이 아닐까. “신념으로 가득 찬 방”과 “숨소리마저 희미해진 공포”가 자라는 방에서 한 줄의 문장을 다시금 ‘그’에게 건네는 일.(「방이 된 사람」) 또한 대답이 없음에도 상자를 두들기고 흔들어 보는 사람의 나직한 혼잣말은 “죽음을 반복하는 삶의 형식”을 닮았다(「열쇠꽃」). 그러한 의미에서 최윤정은 “금세 사라질지도 모를 날개”로(「그는 세 뼘 옆에서 책을 읽습니다」) 군무를 추는 새처럼 스스로 아름다움에 중독된 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