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의 시에는 숲과 비와 꽃들이 활발하다. “녹색 영혼을 가진” 모든 나뭇잎이 사각거리는 속에 파묻히는 그는 나무는 “낙엽 한 장을 버릴 때에도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거기서 나는 냄새가 영혼의 냄새라 한다. 그는 스며든다. 사물에 스며들어 깊이 들어간다. “숲길을 걸으면 나는 식물처럼 조용해”진다며 마음을 고요하게 할 줄 안다.(「녹색 영혼을 가진 이들에게」) 또 비가 오면 그는 “얼른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가/비설거지를 한다”(「빗살무늬토기의 추억」), “나는 빗소리 따라 흘러간다” “신부 같은 미래를 맞으러/밖으로 나가리”(「비 오는 날의 감정」). 박홍은 물의 습성을 가졌다.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시인이다. “채송화 백일홍 양국과 달리아가 모여 마당을/둥글게 둥글게 만들고”(「샤갈의 기억」) “노랑하늘타리는 아기 주먹만 한 하늘을 주렁주렁 걸어 놓을 것이다”(「여름 숲」). 그는 꽃을 좋아한다.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위로, 이런 일상적인 사고를 떠나 그는 눈으로 꽃을 먹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이 꽃임을 말하고 싶어 한다. 마음은 공간을 닮는다. 그가 있는 공간은 바로 그 자신이다. 숲이 빗소리가 꽃이 바로 박홍 시인 그 자신이다.
그는 한세상을 자기식으로 살아왔다. “나는 가끔 내가 싫어지고 미워진다”고 말한다(「나는 가끔 내가 싫어지고 미워진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나는 나대로 산다”(「싸리나무는 불온한가?」). 그는 제물포에서 43년 살면서 자기식으로 보고, 자기식으로 걷고, 자기식으로 밥상을 차린다. “사람들은 내 소설이 불온하다고 한다/그러든가 말든가”(「싸리나무는 불온한가?」)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지”(「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그의 자기식이란 고집스러움보다는 자유로움이다. 그 자유 속에서 그는 자기식으로 시를 쓴다. 그는 고상한 척, 우아한 척하는 지극히 속물적인 걸 내친다. 속물적인 것은 “소리가 말로 전달되지 않고 완강한 유리 벽 속에/갇힌 듯하다” “교양 있는 척 점잔 떠는 게 싫고/그런 내가 더러워진다”라고 쓴소리한다(「나는 가끔 내가 싫어지고 미워진다」). 이런 껍데기만 요란한 공허를 싫어한다. 그는 허위의식을 싫어하는 맑은 시인이다. 그의 방 벽에는 빛바랜 신문 조각이나, 몇 달 전, 몇 년 전의 기사들 그리고 좋아하는 시들이 붙어 있다. 박홍 시인의 곁에서는 시간이 너무나 천천히 흘렀다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우리는 문장을 써내는 시인이지만 박홍 시인은 문장을 살아 내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