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 나탈리아여!
‘집단주의:개인주의’, ‘남성중심 사회:여성중심 사회’ 문화권을 보는 두 가지 잣대의 모습이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아직 40이 안 된 그녀는 집단주의와 남성 중심의 틀에 갇힌 세상에서 눌린 연탄 같은 인생으로 신음한다. 제 몸 살라 태우고도 거추장스럽다고 버려질, 누군가가 걷어차 버릴 연탄재 같은 인생 말이다.
‘47년생 이현숙’의 영화를 상상해 본다. 김지영의 큰어머니 같은, 순종을 미덕으로 배우고,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죽어도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고 배운 사람이다. 해방 직후에 태어나 전후의 황폐하고 어수선한 시기에도 꿈 많은 소녀로 따뜻한 세끼를 챙겨먹고 자랐다. 명문여고를 다녔던 복되고 깨우친 여성이었다.
‘월남에서 돌아온 김 해병’을 만나서 이 꿈 많은 아가씨, 이현숙의 인생은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빈한한 집안의 맏며느리에 시집살이부터 꿈은 박살이 난다. 상이용사로 전쟁의 트라우마에 고통을 겪는, 남편이라는 애처롭고도 용서하기 어려운 큰 짐을 지고 살았다. 돌이켜보면 가난과 아픈 남편, 세 아이라는 삼각파도를 헤쳐 나온 것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연결되어 질기고 질긴 생명의 사랑 줄 때문이었으리라.
구 남매의 가운데인 나는 팔순의 큰누님이 계신다. 보릿고개를 잘 아는 우리는 ‘82년생 김지영’의 엄마가 그랬듯이 그렇게 자랐다. 아들인 나는 단지, 자매들의 희생으로 일어선 사람이다. ‘47년생 이현숙’은 오랜 기간을 함께한 스승이자 누님이시다. 틈틈이, 짬짬이, 일기처럼 기록해 온 누님의 글을 받아 나름대로 다듬어 보기로 했다. 순수하고 진실하여 원문 그대로가 좋겠다 싶어 가필이나 정정은 안 했다. 아니, 몰래 한 인생의 일대기를 훑어보았다.
인생은 희망으로 사는 것이라고 했던가? 작은 것이라도 이루어 보려는 목표가 있으면 즐겁다. 그런데 결혼 후 상당 기간은 첩첩산중에 오리무중의 산길을 이고 지고 오르는 삶이었다. 어떻게 희망을 이야기하겠는가? 지쳐 쓰러져도 포기하지 않고 험산을 넘은 이현숙은 작은 거인이다. 꿈과 의지, 사랑과 신념, 정의가 살아있는 사람이다. 재능과 끼가 넘치는 사람이다. 냉철한 두뇌에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다.
득도(得道)와 경지(境地)를 생각한다. 돈오(頓悟)인지 해오(解悟)인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수많은 고통과 절규, 참담(慘憺)과 암울(暗鬱) 속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아내와 엄마의 임무를 감당해 오던 어느 날, 문득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 과정은 험난함이 맞다. 욥과 같이 인내하였다. 울다가 기도하셨다. 마침내 그 끝이 창대(昌大)하다. 혀로 뼈를 깎아내듯이 살아온 인생, 스스로 긍정의 힘을 깨닫고 실천한 여인, 시련과 고통으로 가득한 인생이 불가마에서 구워지며 단단해진 옹기(甕器)처럼 영생하게 된 것이다. 되돌아보니 생각나는 말씀, “보이는 시련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믿음으로 일어나라 하셨더라!” “야곱아!(나탈리아여!)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할 수 있을까? 딸 같은 주인공 ‘82년생 김지영’을 보면서 이 땅의 딸들이 힘들지 않고 살 수 있기를 빌고 또 빌었다. ‘47년생 이현숙’의 삶을 들여다보며 어찌 저리도 힘든 인고(忍苦)의 시기를 잘 견뎌 내었는지 경탄(敬歎)과 울분(鬱憤)이 교차한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받은 ‘인간 김 해병’의 인생도 승리했다. 고진감래(苦盡甘來)였고 기·승·전 - 처복이다. 알고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 인생을 사는 방법은 사랑하고 간구(懇求)하는 것이라 한다. “사랑하였느냐? 진심으로 사랑하였더냐?” 하느님께서 응답하셨다.
세속에서 기도드립니다. “누님, 나탈리아여! 언제나 주님을 섬기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영원한 천상 가정에 들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