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Exclusive ticket sales for domestic and international pop artists

Global yesticket

검색

어깨배너

이달의 혜택 모음
슈퍼특가
1/6

빠른분야찾기


현재위치 웰컴

국내작가

중앙대 예술대학 공연영상창작학부 사진전공 교수로 재직 하고 있다. 2000년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예술사학(사진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작품보존관리 심의위원과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심의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사진은 무엇을 재현하는가》, 《현대 사진미학의 이해》, 《사진과 움직임》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사진적 행위》와 《현대 조형사진론》이 있다.

작가의 추천

  • 평생 막사발만 만들어 장터에 내다 팔아 온 산속 도공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내려와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도공의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도공은 급히 집으로 달려가 그나마 아직 타지 않은 물건을 꺼내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가 한 아름 손에 들고나온 것은 방 안에 있던 땅문서나 비싼 옷가지들이 아니라 가마 옆에 있던 막사발들이었다. 단 몇 푼에 살 수 있는 이것들이 그에게 과연 무슨 가치가 있었을까? 그러나 그것들은 적어도 그에게는 삶의 분신이었을 것이다. 찻잔에 옹달샘이 보인다는 일본의 국보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원래 일본에 끌려온 조선 도공이 만든 막사발이었다. 막사발은 사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와 같이 정형화된 것이 아니라 당시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보여 주는 도기였다. 말하자면 막사발의 미학은 단순한 외형을 넘어 도기에 투영된 삶의 애환과 그 정신에 있는 것이다. 사진 역시 막사발과 같이 촬영자 자신의 삶이 투영된 흔적이 될 수 있다. 필립 뒤봐(Philippe Dubois)는 사진의 진정한 메시지는 사진 그 자체의 장면이 아니라 “그 장면을 있게 한 원인적인 것에 있다”고 했다. 여기서 원인적인 것은 막사발을 만드는 도공의 무의식적 충동과 같은 것이다. 바로 이 충동의 세계는 우리가 현악기의 현(絃)을 울릴 때 각자에게 전달되는 소리의 공명(共鳴)처럼 오로지 대상과 주체 사이에 발생되는 극히 주관적인 내적 의미의 연관(聯關) 말하자면 인식 영역 밖에 존재하는 공명의 세계를 말한다. 이때 우리의 유한한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을 색(色)이라고 하면 인지할 수 없는 거대한 공명의 세계를 공(空)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감각으로 공의 세계를 직접 드러내는 재현 매체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그림이다. 사진 또한 지시적 방식으로 인간의 초감각적인 존재를 암시하는 특별한 매체가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촬영은 언뜻 기계적 복제로 보이지만 촬영 순간 자신의 충동이 대상으로 전이(轉移)되는 일종의 심리적 연극이며, 또한 그 충동의 실체는 결코 색의 세계에 직접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장면을 통해 우회적으로 암시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진에는 아주 작은 간격(hiatus)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간격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의 단절이 아니라 전혀 움직임이 없는 대상에서 오히려 느낌의 결정적 찰나(刹那)를 흔적으로 드러내는 특별한 순간이 된다. 그래서 이미지로 드러난 사진의 진정한 메시지는 셔터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간격 바로 직전에 생성된 촬영자의 내적 충동(空)에 있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 작가 김건환의 사진들은 적어도 촬영 순간 삶의 여운을 드러내는 또 다른 결정적 순간으로 이해된다. 달리 말해 사진 읽기의 개종이 필요한 셈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작가의 의도로서 무엇을 의미하느냐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무엇을 환기시키느냐가 된다. 이럴 경우 사진은 단순한 대상의 진술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기억으로부터 전이된 여운으로 일종의 연극적 독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장면이 던지는 메시지는 응시자 각자의 환유적인 상상에 달려있게 된다. 첫눈에 대상의 표면을 큰 구도로 보여 주는 사진들은 예견치 못한 형상으로부터 자연의 신비와 그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탐구로 나타난다. 사실 작가는 오래전부터 발밑에 뒹구는 나뭇잎, 이슬 맺힌 풀, 초겨울 땅 위 서릿발 등을 시작으로 허름한 나무 창고에 얼기설기 붙은 판자, 긴 세월을 이겨낸 큰 나무옹이, 소금창고 벽에 붙은 소금꽃과 갈라진 피부처럼 바닥에 덕지덕지 붙은 소금 덩이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의 표면을 다루기 힘든 4x5inch로 촬영해 왔다. 이러한 근접 촬영은 20세기 초 인간의 눈을 뛰어넘어 렌즈의 눈으로 사물의 즉물적 특징을 보여 주는 에드워드 웨스턴과 F64 그룹의 신즉물주의에서부터 대자연의 위대함과 신비를 보여 주는 안셀 애덤스의 흑백 풍경까지 위대한 사진가들의 작품들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작가가 전국 유명 염전을 돌아다니면서 촬영한 소금창고 표면 시리즈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흑백의 어두운 콘트라스트는 짙은 목탄으로 그린 드로잉 습작이나 19세기 인상주의 클로드 모네의 수련 또는 1950년대 미국의 잭슨 폴록과 같은 추상표현주의를 생각하게 하면서 사진의 리얼리즘이 추상으로 진화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사진들은 표면의 신비를 넘어 어딘지 모르게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허공에 던지고 있다. 과연 작가는 오랫동안 이러한 표면의 밀착 작업에 몰두하면서 단순히 대상의 미적 탐구만 고집해 왔을까? 프랑스의 위대한 사진가 으젠 앗제는 처음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주문에 따라 인적이 드문 새벽 파리 시내 골목 곳곳에서 창과 창살, 대문, 뜰, 담장, 지붕 등을 찍었다. 한마디로 돈벌이 목적으로 그것도 책자로 만들기 위해 유형별로 찍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언제나 사람이 빠진 텅 빈 골목을 찍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주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아침마다 혼자 들기도 힘든 육중한 대형 카메라를 끌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공원 구석구석을 찍었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죽었다. 결국 그에게 촬영은 처음 돈벌이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후 그는 막사발 도공의 직감으로 그리고 자기만족의 충동으로 그 대상으로부터 은닉된 비현실적인 조짐(aura)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작가의 소금창고 바닥 사진에서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사진들은 단순히 결과로서 흔히 대자연의 신비를 예찬하는 심미주의나 형식주의를 넘어, 사진의 진행 과정에서 셔터가 움직이기 이전에 이미 형성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나 알 수 없는 내면의 욕구를 암시하고 있다. 예컨대 각질이 벗겨져 얼핏 속살이 보이는 소금 덩이들과 그 사이로 갈라진 균열과 틈은 바다를 떠다니는 거대한 남극 대륙의 빙하들을 생각하게 하고, 소금창고 바닥 찌꺼기들이 만든 기이한 형상들은 항공사진의 거대한 삼각주나 주름진 땅을 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상들은 단순히 자연 예찬을 위한 심미적 재현이 아니라 이미지로 출현한 어떤 감정의 흔적들로 이해된다. 게다가 작가는 오래전 자신의 노트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의 끝자락, 그 미세한 여명의 흔들림이 작가의 시각을 멈추게 하고, 어둠의 잔영이 윤곽을 드러내기 전, 나의 무념과 무신, 자연의 영상은 회색 톤으로 아름다운 속살이 보이며 되살아난다”라고 적고 있다. 이는 곧 촬영의 실질적인 대상이 삶의 침전으로서 내적 충동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렌즈를 통해 은밀히 드러나는 소금 자국들은 장면을 위한 심미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삶의 편린에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의 진실이나 모호한 기억의 단편들을 지시한다. 작가가 삶의 굴곡과 물질의 유혹을 지나 홀연히 깨달은 것, 삶의 육중한 갑옷을 던져 버리고 어두운 암실에서 스스로의 만족과 희열을 발견한 것, 그것이 바로 소금일 것이다. 말하자면 그에게 소금 덩이는 삶의 여정에서 침전된 일종의 감정의 잔여물로서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담을 쓰듯이 적어도 삶의 회한과 아쉬움이 투영된 삶의 잔영(殘影)이나 자화상적인 무언극이 된다. 또한 흑백 톤으로 은은히 드러나는 소금 자국들은 갑자기 우리로 하여금 가던 길을 멈추게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그 음악에 대하여 아무런 이유를 달지 않듯이, 우리가 시를 읽을 때 그 시를 구성하는 단어의 조합으로만 읽지 않듯이, 보여진 장면은 관객 자신의 경우로 다시 재구성된다. 그것은 말없는 연극과 같이 슬며시 응시자 각자에게 불현듯 잊혀진 기억을 호출하는 일종의 자극-신호(stimuli-signaux)가 된다. 그래서 그의 소금 사진들은 또 다른 결정적 찰나로서 사진으로 전이된 신호의 순수 서정시임과 동시에 막사발 도공의 충동과 같이 잃어버린 우리 모두의 피안(彼岸)의 장소가 될 수 있다.

작가에게 한마디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
회원님들께서 0건의 코멘트를 남겨주셨습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예스이십사(주)
대표 : 김석환, 최세라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이메일 : yes24help@yes24.com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EQUUS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