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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책 그리고 영화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미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졸업 후 십 년간, 발표가 기약되지 않은 글을 썼다. 2011년 팟캐스트 ‘네시이십분 라디오’를 만들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그러나 가치 있는 책과 작가를 소개해왔다. 그러다가 소설 리뷰 웹진 ‘소설리스트’에서 소설을 리뷰하고, EBS [지식채널 e]에서 대본을 쓰게 되었다. 작가와 독자를 잇는 낭독회, ‘개와 고양이의 라디오 워크숍’ ‘지금 이곳에서 시작하는 글쓰기’와 같은 창작워크숍을 지속해왔다. 2017년, 문학동네 시 부문 신인상을 받았고 이듬해 사랑, 기억, 이미지를 테마로 홀로 써온 글들을 묶어 『사랑의 잔상들』, 이름 없는 민주화운동가였던 아버지와 가족의 삶에 대해 쓴 소설 『진주』, 그리고 시집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를 펴냈다. 앞으로도 특정 장르에 속하기보다 새로운 공간을 개척하는 글을 쓰고자 한다.

작가의 추천

  • 이 책은 화성 사는 도요새 님, 가덕도 사는 반딧불이 님, 경주 핵발전소 앞바다 사는 물살이 님을 대신해 말하려는 이야기다. 시를 써서 새가 되고, AI 번역기도 못 듣는 새의 말을 새가 되어 통역하려는, 자격증 하나 없는 인터프리터의 이야기. 이것은 애초 불가능이다. 그럼에도 왜 듣고 또 말하려 하는가? 이미 본 자는 눈을 감고도 보기 때문이다. 기어코 먼 바다를 건너가는 도요새들처럼. 불가능의 바다 같은 백지 위로 여덟 명의 시인들이 날아간다. 내려앉을 땅은 어디에도 없고 사랑은 불가능이리라. 그러나 새를 중지할 수 없듯이 사랑을 중지할 수는 없다. 사랑은 가려고 한다. 결코 내일을 모르는 새처럼. 지저귀면서. 너에게로.
  • 1966년 9월의 어느 봄, 마흔여섯의 리스펙토르는 우울과 불면 속에서 불 붙은 담배를 손에 쥔 채로 잠에 들었다. 깨어났을 때 그녀의 글은 불타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늘 그러했듯이, 글을 구해야만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따라 그녀는 불 속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하여 세 달이나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큰 화상을 입었고 그 아름다운 손을 영원히 잃었다. 우리 앞에 온 이 책의 원고 대부분은 그녀의 손이 불탄 이후에 쓰인 것이다. 독자들이 종이 신문을 찾아 읽으며 그에 간절히 응답하고자 했던 시대, 그리하여 독자가 작가를 찾아와 초인종을 누르고 꽃다발을 건넬 수도 있었던 놀랍고도 위대한 시대에. 가장 강력한 위대함은 돌이킬 수 없음의 영원한 불타버림이고, 불타버려 돌이킬 수 없음으로 그 시절이 위대하게 남아 있음을 나는 보았다.
  • 두 개의 큰 귀는 사방의 소리를 향해 열린 듯 쫑긋 서 있다. 뭉툭한 검은 코는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고 있다. 짧고, 부드럽고 촘촘한 잿빛 털이 온몸을 회오리치듯 뒤덮고 있다. 마지막으로, 맑고 검고 깊은 두 눈, 두 눈이 이편을 지그시 응시한다. 오래전 사진가가 서 있었을 바로 그 자리에서 뒤늦게 나는 이 미지의 생명을 마주 본다. (중략) 그래서 사진가는 광주의 골목에 이끌렸을 것이다. 그녀에게 표현이란 세계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고, 응답받지 못한다 해도 보내고 마는 한 통의 편지였으므로. 또한 그래서 사진가는 고라니에 이끌렸을 것이다. 작고 하찮은, 보잘것없는, 없어져도 그만인, 존재하지만 거의 보이지 않는 그 짐승들의 우주가, 언젠가 그녀가 광주에서 마주한 인간들의 우주와 다를 바 없이 대등함을 알았기에. 깊은 밤, 숲에 고라니가 있다. 바람결에 숲이 흔들린다. 그 기척에 일순 고라니가 멈춘다. 고라니가, 고라니 안의 누군가가 바라본다. 웅덩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듯도 하다. 그 상(像)을 내가 볼 수 있다면, 지금 나는 무덤 속인가, 내 살은 썩었는가. 썩어서 흙이 되었는가. 그의 두 눈은 그래서 슬펐는가. 그의 눈길이 마침내 가닿은 곳에는 나 아닌 인간의 시원(始元)이 있었다. 바라봄으로, 그는 내 안의 시원을 나타나게 했다. 그것은 내가 영영 몰랐던 나의 영혼처럼 광활한 대륙이었다. 펄럭이는 나의 영혼은 나를 대신하여 그를 향해 응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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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인터뷰

읽다
장혜령 시인의 작업실 -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
장르를 횡단하며 여성적 글쓰기를 실험해 온 장혜령 시인의 『여자는 왜 모래로 쓰는가』 작업 이야기.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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