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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영화처방사. 영화를 곁에 두고 글을 쓰며, 여전히 이야기의 힘을 믿고 있다. 20대의 끝자락에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 3년을 보냈고, 돌아온 후엔 2년간 ‘영화책방 35mm’를 운영했다. 지금은 망원동에서 ‘작업책방 씀’을 동료와 함께 꾸려가고 있다. 드라마 [나기의 휴식]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집으로 데려가 영화를 틀어주는 것으로 조용히 그들을 응원하는 미도리 할머니를 보면서, 오래오래 영화를 권하는 미화리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삶의 어느 순간은 영화 같아서》, 《영화관에 가지 않는 날에도》, 《수어》, 《베를린 다이어리》 등을 썼다.

가까운 길도 빙 돌아가거나 길을 찾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체력을 낭비할 정도로 방향에 약하다. 삶의 방향도 마찬가지. 그럴 때마다 내비게이션이 되어준 건 영화였다. 회사를 그만둘 때, 베를린으로 떠날 때, 다시 돌아와 책방 문을 열 때도, 영화는 내게 인생에 여러 갈래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물론 그 길엔 아스팔트 대신 자갈밭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계속 걸어갈 수 있었던 건 나처럼 평범하고 지질한, 영화 속 등장인물들 덕분이었다.

베를린에서 보낸 시간을 담은 에세이 『베를린 다이어리』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촬영지를 기록한 영화 여행 에세이 『당신이 나와 같은 시간 속에 있기를』을 썼다. 현재 영화와 책을 잇는 영화책방35mm를 운영하며,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영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의 추천

  • 죄책감을 짊어진 아이는 또래보다 일찍 철 이 들기 마련이고, 어른아이를 제 나이로 돌려놓을 수 있는 건 또래의 존재들밖에 없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방에 틀어박힌 아이에게,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품고 사는 아이에게, 상상력을 놓아 버린 아이에겐 어른이 아닌 친구가 필요하다. 은호는 작은곰의 버킷 리스트를 이루어 주기 위해 골몰하느라 자신을 장악하고 있던 감정을 잠시 잊는다. 닫혀 있던 방문을 열고 나와 움직이기 시작한다. 작은곰의 도둑질을 돕기 위해 도토리묵을 배달하고, 쑥떡을 만들어 주기 위해 직접 마당에 나가 쑥을 캐고 반죽을 한다. (중략) 나는 은호의 웃는 얼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작은곰을 귀찮아할 수는 있어도 직은곰의 말썽을 가만두지 못하고 뛰어다니던 은호의 얼굴은 분명 웃고 있을 거라고 멋대로 상상했다.
  •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작은 존재들을 떠올린다. 별이와 누렁이와 달콤이와 뻬뻬를. 사랑을 원 없이 나눠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존재들. 꾸슈랄라의 멈머들로부터 증오를 이기는 건 언제나 사랑이라는 것, 무엇보다 상실을 채우는 것도 사랑이라는 사실을 배운다. 이 슬픈 세상에서 기쁘게 우는 방법을 찾아 반갑다.
  • 오늘이 쌓이면 뭐가 될지, 뭐가 되긴 되는 건지 불씨 형제(불안이랑 불만이)가 불쑥 솟아나려 할 때 고개를 조금만 돌려 옆자리를 바라본다. 거기엔 늘 혜은이 앉아 있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언제든 뒤돌아볼 준비가 되어 있는, 시답잖은 얘기에도 곧장 몰입해 버렸다가 다시 작업으로 돌아가는 혜은의 뒤통수를 보아온 지도 4년 차. 맞아. 오늘이 쌓이면 혜은이 되지. 혜은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날들에도 매일 써 내려가던 일기가 그의 첫 책이 되고, 소설 읽는 마음에서 소설 쓰는 마음이 되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에서 부르기 쉬운 노랫말을 써 내려가게 된 오늘이 되기까지. 혜은의 매일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이 쌓이면 내일이 된다는 시시한 말의 증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제목인 ‘매일을 쌓는 마음’이 내게는 지망생의 마음으로 읽힌다. 그건 무언가가 되지 못한 상태로써의 의미가 아니라 혜은이 지망생의 마음으로 매일을 대하기 때문이다. 되고 싶은 나에 가까워지기 위해 애쓸 오늘의 지망생.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을 내일의 지망생. 그러니까 내 삶의 지망생. 혜은은 가수를, 소설가를, 작사가를 지망하고 있지 않을 때도 꼭 그런 마음으로 매일을 쌓는다. 그 기록을 따라가다 보면 지망생이었던 적이 없는 나도 실은 내 삶의 지망생이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늘 천재를 부러워하는 나는 우리가 성실듀오가 아닌 천재듀오였다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그럼 쌓는 마음 같은 건 모르고 살아도 될 텐데. 쌓는 동안 자주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 같은 것도 모를 수 있을 텐데. 그런 꼬깃꼬깃한 마음이 들면 이제는 혜은을 부르는 대신 이 책을 펼치면 되겠지. 밤새 조용히 내려앉은 눈처럼 소복이 쌓인 혜은의 오늘에 가장 먼저 손자국을 내는 사람의 마음으로. 물론 혜은은 언제든 뒤돌아 내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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