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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대 불어과와 동 대학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파리 13대학에서 언어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금은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나의 페르시아어 수업』, 『라플란드의 밤』, 『내 손 놓지 마』, 『로맨틱 블랑제리』, 『내 욕망의 리스트』, 『생각 정리의 기술』, 『요리의 거장 에스코피에』 등이 있다.

작품 밑줄긋기

R****D 2024.05.21.
p.60
나는 글을 쓸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설명을 잘했는지 모르겠다. 잉크는 구매할 수 있으나 가벼움을 파는 상점은 없다. 가벼움이 오거나 안 오는 건 때에 따라 다르다. 설령 오지 않을 때라도, 가벼움은 그곳에 있다. 이해가 가는가?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 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 풀잎을 씹듯 수천 번 중얼거린 이름에, 쥐라 산맥의 구불구불한 도로에서 모퉁이를 돌아가는 빛의 요정 안에, 슈베르트의 소나타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가난 속에, 저녁마다 덧창을 느릿느릿 닫는 의식에, 청색, 연청색, 청자색을 입히는 섬세한 붓질에, 갓난아기의 눈꺼풀 위에, 기다리던 편지를 읽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다 열어 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땅바닥에서 '팡'하고 터지는 밤껍질 소리에, 꽁꽁 언 호수에서 미끄러지는 개의 서투른 걸음에. 이 정도로 해두겠다. 당신도 볼 수 있듯,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R****D 2024.05.21.
p.55
한낮과 저녁의 몇 시간을, 나는 마치 그곳에 사는 다른 모든 이처럼 밖에서 보낸다. 공을 차고 드넓은 운동장을 달릴 때 나는 보이지 않고,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수많은 파도들 속에서 파도 하나를 알아보기 힘든 것처럼, 수십 명의 다른 아이들 사이에 있는 아이를 알아보기란 불가능하다. 어린 시절은 떠들썩한 수많은 웅성거림을 등에 업고 멀리 달아나는 파도처럼 모든 차이를 덮어 버린다.
p*********4 2024.05.04.
p.16
나는 불행과 죽음을 잉태했고, 그 둘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 사실이 미세하게 떨리는 손과 행동으로 드러났다. 깨진 유리, 읽지도 않고 페이지를 넘기던 책. 회답하려고 썼으나 부치지 않은 편지들. 나 자신에게도, 가까운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커져만 갔던 무례함. 사람들은 나를 기껏 변덕스럽다고만 생각했다.
R****D 2024.05.18.
p.43
가출은 인생과 닮았다. 나타나고 사라지는 일은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내가 어디로 갔는지 물을 때 기꺼이 거짓말을 한다. 나는 그들에게 적군을 피해 몸을 숨겼다고 얘기해 주었다. 이 표현은 술에 취해 영웅심에 들뜬 조련사 아저씨가 했던 스페인 전쟁 이야기에서 알게 됐다. 사실 그게 얻던 전쟁인지도 모르고 전혀 이해도 못한다. 하지만 때로 흐르는 매 순간은 죽음의 시간이 되거나,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다음 순간까지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순전한 기쁨을 맛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나는 매 순간을 이처럼 활용하기를 결심한다. 아니, 활용이라는 말은 적절한 단어가 아니다. 나는 한 바위에서 다른 바위로 폴짝 뛰어 깊은 강을 건너듯 한 순간에서 다른 순간으로 가겠다고 결심한다. 물이 튀고 몸은 서늘해져도 결코 빠져 죽지 않는다.
p**********e 2024.05.08.
p.86
아가야,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이야. 누구도 너한테서 즐거움을 빼앗아가지 못하게 해라.즐겁게 삽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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