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뜨락애서 꿈을 보다
이 나이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또는 다른 이에게 더러 묻습니다, 만일 다시 사는 삶이 허용된다면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하고.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가, 나는? 대답 속엔 늘 나의 유년이 있는데, 양조장이 있고 과수원이 있던 그때랍니다. 동생들과 사과나무에 오르내리고 술이 익어가던 발효실에 몰래 들어가 숨바꼭질한 그때, 내 인생에서 먹고 노는 일에만 열중해도 되던, 그러니까 아무 근심도 욕심도 사랑도 질투도 없던 그때, 눈만 뜨면 나가서 놀다가 해거름에 집에 돌아가도 사는 일에 아무 지장을 받지 않았던 그 시절이랍니다.
그런데 그날, 태평양을 건너고 북미대륙을 가로지르던 비행기 속에서 〈꿈뜨락애〉의 작품들을 펼쳤을 때 아, 그 속에서 나는 소설인지 수필인지 장르조차도 모호하던 짧은 몇 문장 앞에서 나름 진지했던 그 나이의 김외숙을 보았답니다. 그것은 비록 근심도 욕심도 그리고 첫사랑과 질투도 없지 않았던 시간의 기억들이었지만 만일 누군가가 다시 내게 묻는다면 ‘내게도 그때가 있었어요, 돌아가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싶던, 눈물 핑 돌게 하던, 그리움이었습니다. 그 그리움의 때를 이제야 깨달은 이유는, 이미 꿈이 실현되었음에도 내 무의식은 여전히 미숙했던 때의 기억을 깊이 감춰두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여섯 명 학생들의 작품을 통해 나는 보았습니다, 소설을 통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가야 하고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읽는 재미를 부여하는가를 아는 작가적 소질을. 같은 나이에, 손바닥만하던 글 안고 씨름한 경험을 둔 나는 여섯 꿈뜨락애 학생들의 창작 능력에 그래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한 가지, 먼저 이 길을 걸어오고 있는 선배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늘 작가의 시선, 즉 관심과 애정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사물이나 사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과 우주에 산재한 모든 것이 문학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에게 소재는 광산에 묻힌 원석입니다. 소재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없듯 원석 또한 보석은 아닙니다. 깎아내고 다듬어 불순물을 제거하는 장인의 지난한 수고로 보석이 될 수 있지요. 문학 작품 또한 그러합니다. 문장을 갈고 다듬는 작가의 끈기와 성실함, 그리고 좋은 문장을 알아보는 안목에 의해 좋은 작품은 빚어집니다. 안목은 좋은 작품들을 많이 대할 때 비롯될 수 있습니다.
“기억을 담은 향수” 발간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지도 선생님과 여섯 명의 예비 작가님들, 참으로 수고하셨습니다. 이 작품들이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뿐 아니라 다른 길을 가려는 학생들에게 꿈에의 도전, 품고 있을 각자의 재능 발굴을 위한 구체적인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기억을 담은 향수” 발간을 축하하며
캐나다 Niagara On The Lake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