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의 『신을 기다리며』를 다시 손에 든다. 설레면서 두렵다. 평생 책을 벗 삼아 살아오면서 매혹하고 사랑하게 하고, 존경하고 감탄하게 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작가와 사상가와 예술가들을 만났지만, 베유를 읽는 것은 언제나 특별한 일이며 내밀하고 개인적인 ‘사건’이다. 베유를 처음 만난 것은 오래전 일이지만, 가끔씩 그녀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여전히 새롭게 출발점에 서는 체험을 한다. 티 나지 않게 관성과 안위에 따라 살 수 있도록 공들여 축조해 놓은 안전장치들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진리를 향한 여정을 감행하고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내면의 부름에 사로잡힌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문턱이었던 겨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던 시기에 베유의 급우인 시몬 페트르망이 쓴 『불꽃의 여자, 시몬 베유』를 통해 그녀를 만났다. 자주 새벽을 넘겨 책을 읽던 그 겨울에 베유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를 만났고,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서로 닮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지만, 그들 모두는 한 소년에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간의 고통, 신의 사랑, 은총의 현존이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그 겨울을 보내고, 인생이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느꼈다고 기억한다.
베유가 남긴 방대한 유고 가운데 『신을 기다리며』에 실린 편지들만큼 직접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독자의 마음에 다가오는 글은 없을 것이다. 지성의 명료함과 의지의 결연함이 그녀의 사유와 행동을 관통했지만, 이 편지들을 통해서 사실 그 밑에는 깊은 사랑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주의력’과 ‘기다림’으로 신의 사랑에 응답하는 사람만이 자기중심주의와 불의함과 감정의 열광에서 자유로워져, 온전하고 순수한 사랑과 우정을 타인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베유를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옮긴이가 마음을 다해 공들여 번역하고 정갈하게 해설한 『신을 기다리며』를 새해의 시작에 만난 것은 큰 기쁨이다. 베유는 물질주의와 권력욕과 전체주의가 인간을 타락시킨다고 보았다. 그녀의 통찰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와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절실한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만나고, 새롭게 출발점에 서는 체험을 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